Page 99 - 인천대 문학상 작품집
P. 99
했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은 부모님의 번호를 지우는 일이었
다. 두 번째는 번호를 바꾸는 일. 마지막 미련으로 여동생에
게는 문자 한 통을 남겨 두었다. 새 번호였다. 지금도 가끔 그
애한테 문자가 왔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엔 답을 주지 않는다
는 걸 알게 된 뒤로, 제 딴엔 중대한 사안을 골라 보내는 거였
다. 나는 그것을 몇 시간 내리 무시하다 깊은 밤이 다 되어서
야 짧은 답장을 남겼다. 그게 요 2년 사이의 일이었다. 나는
허벅지에 얹은 손을 힐끔 바라보았다. 꽉 움켜쥔 핸드폰은 여
전히 잠잠했다. 그 누구로부터의 연락도 없었다. 엄마도, 동생
도. 내가 모르는 그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
럼 태연하게 굴었다. 버스는 이른 오후의 텅 빈 도로 위를 쾌
속으로 질주했고, 과속 방지턱을 뛰어넘을 때마다 크게 덜컹
거렸다. 토기가 올라왔다. 멀미 때문은 아니었다. 집에 가까워
져 올수록 점점 커지는 압박감 탓이었다.
그 사람이 엄마일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문자를 읽자마
자 느껴지던 싸한 긴장감. 근 2년 만에 처음으로 느껴보던 낯
익은 감각. 스무 살 이후로 나의 삶은 그 감각으로부터의 도
피였다. 고향은 언제나 낯선 울림이고, 익숙하게 목을 죄는
공간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뒤, 집으로 향하는 언덕배기를 오
를 때까지도 나는 그 확신이 부디 빗나가길 빌었다. 아주 간
고혜윤
고혜윤 | 무리심중 無理心中 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