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5 - 인천대 문학상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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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열한 시를 조금 넘겨서. 유리는 특유의 덤덤한 투로 말했
다. 집에 누가 찾아왔어. 언니 엄마라고 하던데? 자신은 이 일
에서 완전한 외부인임을 보여주는 양 두 발짝 물러서 있었다.
항상 거슬리던 태도였다. 그러나 예민한 성정도 이 순간만큼
은 잠시 접어두어야 했다. 읽어 내린 활자가 머릿속에서 빠져
나갔다. 귀에서 이명이 울렸다. 나는 투박한 두 문장을 영원
처럼 곱씹었다. 엄마가 나를 찾아왔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유리의 문자를 확인한 건 점심시간이 다 끝나갈 무렵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새하얀 변기 뚜껑 위에 앉아 있었다. 굽
낮은 구두는 이미 타일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치마 지퍼
를 손가락 두 마디만큼 내렸다. 이제야 조금 숨쉬기 수월해졌
다. 나는 살구색 스타킹 아래 갇힌 발가락을 꼼질거리며 쿰쿰
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체하기 직전의 짧은 휴식이었다. 몸을
옥죄는 유니폼은 만성적인 소화불량을 안겨주었고, 보다 더
본격적인 이유는 얻어먹는 눈칫밥에 있었다. 열댓 명 남짓 일
하고 있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또래 남자라곤 30대 초반 사원
하나가 전부였다. 매일 아침 환기를 시키고 탈취제를 뿌려 홀
아비 냄새를 조금이라도 가리는 게 업무의 시작이었다. 몇 없
는 여사원들은 죄 계약직이었고, 그나마도 교류가 없었다. 기
고혜윤
고혜윤 | 무리심중 無理心中 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