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미래의 희망 로스쿨(LAW SCHOOL)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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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interview editor. 박소희
세 시간 가량 이어진 인터뷰가 마무리 될 무렵, 장기홍 변호사는 오래 품고 있었던 진중한 생각을 드러냈다. “정당에 몸담은 일원인
만큼, 우리 당이 추진하려고 하는 정책들이 국민들로부터 더 사랑받고 더 많은 지지를 받게끔 만들고 싶어요.”
“국회는 사회적 필요성과
민심의 동향이 더 중요한 ‘여론의 법정’”
장기홍 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운영 전문위원(변호사)
직장 생활을 하다가 로스쿨에 진학했다. 진학 계기는 무 주로 수행했는데, 법대 출신은 금융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
엇이었나? 져 반쪽짜리라는 말을 들었다. 극복을 하려면 내 스스로 공
‘8개월 인턴 기간 종료 후 평가에 따라 50% 정규직 전 부를 해야했다. 신혼 때부터 야간과 주말에 자비로 대학원
환’. 나의 첫 직장의 채용조건이었다. 뒤늦게 사회생활을 시 을 다녔다.
작하려는 실패한 고시생으로서는 어렵사리 구한 소중한 기 새로운 분야를 공부도 하고, 직장에서의 경험도 쌓이다
회였다. 하지만 동기 20명 중 절반이 인턴기간 종료 후 실제 보니, 입법의 무게추가 정부입법에서 의원입법으로 넘어가
로 짐을 쌌다. 그렇게 살아남아 3년차 회사원이 되었을 때, 는 흐름이 보였다. 변호사 자격이 있으면 나중에 국회에서
회사는 업황이 안 좋다며 구조조정을 했다. 수십 명의 가장 보좌진으로 직접 일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들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었다.
세상은 혹독한 곳이었다. 더 늦으면 입학 자체가 어렵겠다는 판단에 37살에 로스
쿨 입학원서를 냈고, 다행히 내 포부를 좋게 봐주신 서강대
회사를 관두고 로스쿨에 입학한 것인가? 로스쿨에 7기로 입학할 수 있었다. 최고령이었다. 회사에서
다니던 회사는 금융권 한 협회였다. 법령 개선을 건의하 는 전례대로 사표를 쓰라 했지만, 마침 셋째아이도 태어났
기 위해 나름의 논리를 만들고 개정안을 만들어내는 업무를 던지라 무작정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남자직원 최초의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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