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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고 약 한 번 먹기 힘든 시대였어요. 그때에 그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봉사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의학의 의(醫)가 아닌 인의의 의(義)를 행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노동자들에게 야학도 같이 하고,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그래서 졸업
하자마자 서울로 올라와서 국내 의료봉사팀을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의료봉사를 시작하신 거군요?
A 지금도 시골에 봉사활동을 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정기적으로 운영
될 수 있는 팀을 만들고자 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은 장소에서 진료
할 수 있도록. 당시에는 그런 봉사팀이 거의 없었죠. 그래서 왕진 의료봉
사팀도 꾸려서 어르신들을 찾아뵈었는데, 금호동의 할머니 한 분은 우리
가 가면 꼭 소주를 한 잔 같이 해야 했어요.(웃음) 침놓는 게 중요한 게 아
니라 일주일에 한 번씩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그
런 봉사를 했어요.
20년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곳에서 활동하던 분들과 함께 협동체가 만
들어졌죠. 그뿐 아니라 다른 지역을 가게 되기도 하고, 다른 봉사팀이 만
들어지기도 하면서 후배들로 활동이 이어졌고 제가 돈을 벌게 되면서 후
배들에게 돈을 보태줄 수도 있었어요. 약은 다른 단체에서 후원을 받더
라도 자체적으로 후원금이 마련된 셈이죠.
국내 봉사에서 해외봉사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아요.
A 지금은 어느 시골에 가더라도 한의원이 다 있고, 누구나 치료를 받을 수
가 있잖아요. 물론 소외된 사람이 있지만 제도보다는 필요한 사람이 받
이춘재 _ 의(義)를 행하는 삶, 해외의료봉사 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