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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고, 이 부분은 국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어요. 철
수하면서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 새로운 봉사활동을 하자고 이야기
했는데 결국 실패했죠. 당시 정신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어요. 권태
기가 와서 다시는 한의학을 하고 싶지도 않아 10개월 정도 쉬는 기간을
가졌어요. 그때 선배 한 분이 ‘놀고 있느니 해외봉사라도 가라.’고 제의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따라갔는데, 하루 종일 침만 놓고 왔어요. 예전에 시
골에 가거나 노동자들 대상으로 봉사를 할 때처럼 진료를 받지 못해 온
종일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때 다녀오고 나서는 마
음이 아파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가는 것이 쉽지 않았어
요. 그래도 한 번씩 따라가다 보니 내가 몸을 바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
죠. 우리나라는 잘 살고 있지만, 외국은 아직 의료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
았으니 큰마음 먹고 KOMSTA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죠. 일 년에 적어도
한 번씩은 가자고.
매번 시간을 내어 봉사활동하기가 쉽지 않은데, 대단하십니다.
A 제가 비록 실력이 있고 잘난 한의사는 아니지만, 30년간 한의사로 살면서 사
회적으로 공헌을 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봉사를 했다는 점이라고 생
각합니다. 제일 외롭고 힘들 때 하던 일이 봉사활동이었고,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최고의 활동이 봉사예요.
봉사란 것이 반드시 기술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단장님께 가장 기억이 남는 봉사지가 있나요?
A 작년에 다녀온 네팔 봉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컴퓨터 바탕화면을 가리
키며) 여기 사진에 있는 곳인데, 그렇게 힘들 줄은 몰랐죠. 의료봉사 중에
82 한의원 밖으로 나간 한의사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