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2022 코리안리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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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맥주가 이 세상에 없다면 소주를 먹겠다는 사람들
맥주가 주는 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하게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또 다른 기쁨은? 생각한다. 물론 맥주가 없다면 다른 주류인 소주나 와인 막
걸리를 먹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각각의 주류들은 저마다
의 매력들이 있다. 잠들기 전 분위기를 잡고 와인 한잔을 곁들
맥주가 없다면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기쁨이 반감될 수 있다. 이고 싶은 날도 있고, 좀 세게 속상한 날이면 변변치 않은 안주
여행을 떠나면 일차적으로 눈에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는 에 눈물처럼 맑은 소주를 기울이고 싶은 날도 있다. 그렇지만,
것에서 새로움을 느낀다. 여행지에서 시각 다음으로 풍부한 맥주는 이런 특별한 친구들이 아니다. 마치 할 말이 있어도 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 미각인데 나는 새로운 음식과 로 이야기 나눌 필요도 없이 서로 통하는 오랜 친구 같은 존재
새로운 맥주를 맛보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도 영국에서 다. 무슨 특별한 감정의 변화나 이벤트가 없어도 가볍게 만
처음 맛보았던 ‘기네스 생흑맥주’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날 수 있는 가볍게 기분 좋은 사이랄까. 그래서 만약 이
내 기준에서는 마치 한약처럼 쌉싸름하면서도 바디감은 쑥 세상에 맥주가 없다면 그 맥주를 대체할 만한 다른
빠진 밍숭맹숭한 맛이었다. 그래서 편의점에서 절대 흑맥주를 주종은 없을 것 같다. 비알코올 분야로 가도
고르지 않았는데 기네스의 본고장에서 피쉬앤칩스를 먹으며 마찬가지다. 콜라는 달고, 탄산수
기네스 생흑맥주를 안 먹어볼 수는 없었다. 무작정 기네스 는 싱겁다.
생흑맥주를 주문했고, 그간 내가 알던 흑맥주와는 완전
다른 맛을 느꼈다. 미식가가 아니니 몇 년 전 그 절묘했던
맛은 지금 글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아무튼 눈이 번쩍
뜨일만큼 맛있었다. 내가 제대로 잉글랜드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다.(더블린에 못 가본 것이 아직도
아쉽다.) 네덜란드에 갔을 때는 ‘하이네켄’ 공장에서
하이네켄을 맛볼 수 있었는데 공장을 방문했던 시간이
아직도 내게는 아드레날린이 샘솟았던 기억이다.
하이네켄 공장에 입장할 때 받은 색색의 코인과
교환해 하이네켄을 맛볼 수 있는데 그 공장을 나올
때즘이면 제정신인 사람이 없었다. 다들 행복한 맥주를 대체할 그 무언가, 부담스럽지
모습으로 얼굴이 무르익었다. “인생 참 재미지구만!” 과연 있을까? 않으면서, 꽤나 시원스러운 위로가 되
하고 느낌표 열개를 일기장에 끄적였었다. 맥주가 는 존재. 갑자기 맥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없었더라면, 그 나라만의 문화를 즐겨보기에 한참 그러나 어쩌면 그건 너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부족한 여행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아직 40년
도 채 되지 않았는데 기원전 3400년 경부터 발견
된 맥주의 지위를 넘보기에는 한참 애송이다.
손쉽게 맥주를 접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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