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2022 코리안리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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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를 품은 에세이
만약
이 세상에 일단 많은 음식이 그 풍미를 제대로 못 살릴 것
같다. 아니, 그냥 단언하겠다, 못 살린다. 맥주가
맥주
맥주가 없는 세상에서는 ‘치맥’, ‘피맥’, ‘라맥’ 이라는
없다면? 것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치킨, 피자, 라면을
먹는 효용이 엄청 떨어질 것이다. 치킨만도
맛있지만, 치맥은 더 맛있고, 피자도
맛있지만 사실상 맥주를 마시려고 피자를
먹는 사람도 있다(바로 나다). 이렇게
몇몇 음식들은 그 음식 곁에 반드시
맥주를 곁들여야만 느끼함이나 심심함
등 음식의 아쉬운 부분이 순식간에
날아가고, 그 맥주 한 방이 음식 맛
전체를 완성해준다. 맥주가 없다면
나는 맥주라면 생맥주, 병맥주, 캔맥주 가리지 않고 다 그 음식들은 평생 그냥 미완성일
좋아한다. 어떤 순간이든 냉장고에서 막 꺼낸 얼린 잔과 수밖에 없다. 음식 맛을 살려주는 그 뿐인가, 맥주가 없다면 소위 말하는 ‘육퇴
시원한 맥주와 함께라면, 일단 기분이 좋다. 기포가 보글보글 고맙고도 고마운 맥주 되시겠다.
(육아 퇴근)’를 할 수가 없다. 워킹맘이라면 회
올라오는 그 맥주잔에 담긴 황금색 맥주를 보고 있노라면
사에서 집으로 퇴근을 한 다음에 애들 숙제 봐
세상 근심이 그냥 사라진다. 아들내미들이 숙제를 좀 안
주며 씻기고 재운 뒤 자정쯤 하는 두 번째 퇴
했어도? 그럴 수도 있지. 남편이 일주일 내내 늦게 들어와도?
근인 육퇴가 있다. 이 육퇴는 짧은 시간! 농축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맥주도 냉장고에 없는데 초등학생
해서! 최대한 신나게! 시간을 보내고 30분에서
아들은 학습지를 안 하고 미루고 있다면? 바로 호통이
1시간 후에는 나도 취침해야 한다. 그래서 무
나간다. 아니면 시원하게 딱 한입 먹으려고 했는데 애들
엇이 되었든 길게 할 수가 없다. 제일 좋은 것
뒤치다꺼리하다가 결국 따라 놓은 맥주를 한 모금도 못
이 ‘편의점 캔맥주에 꽃게랑 즐기기’다. 애들을
먹고 미적지근하게 식어 탄산이 증발해버렸다? 그날 남편이
다 재우고(하필이면 또) <금쪽같은 내 새끼>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오면 세모눈을 한 배우자의 눈치를 매우
를 넷플릭스로 ‘두둥’ 틀어 두고 네 캔에 만 천
살피며 조심스레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맥주는 그냥
원인 칭따오를 하나 치직! 까서 꽃게랑을 와사
다 너무 좋다. 그런데 사실 지금보다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삭! 씹어 먹으면 그날은 성공한 워킹맘이다. 세
생(生)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생생함 때문에 늘 선택의 순간이
상에 별로 부러울 게 없다. 애들은 자고, 맥주
있다면 병맥주보다는 ‘생맥’을 고르곤 했다. 그러나 내 취향은
는 시원하고, 꽃게랑은 너무 맛있거든.
사실상 거품을 싫어하는 쪽이었고 생맥주는 늘 따르다 보면
원수에게 맥주 한 잔을 대접하듯 거품이 반 이상이 생겨 30대
write. 배지연 기자 기획실
후반쯤 돼서야 사실상 병맥주나 캔맥주 쪽이 더 입에 맞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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