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실업급여 수급자를 위한 취업희망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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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선박의 출입이 잦았다. 일찍부터 이들 선박에 급식을 하고 남은
        소의 잡뼈와 양지머리 같은 재료를 푹 고아 육수를 만들었기 때문에

        동치미 국물에 말아내던 평양냉면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였다. 고명
        으로 쇠고기가 쓰였음은 물론이다.

          둘째는 ‘인천냉면’은 풍부한 얼음으로 여름에도 차가운 냉면을 손님
        앞에 내놓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인천은 일본인에 의한 것이었지만,

        당시 서해 어업의 전진기지였던 까닭에 어선을 위한 냉동용 얼음공장
        이 여럿 중구 일대에 세워졌다. 귀하게만 여겨지던 얼음이 중구에 풍부

        해지면서 주로 겨울철 음식이던 평양냉면을 여름에도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전천후 음식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2) 원조 인천냉면의 명성

          근대 개항의 중심지인 인천 개항장, 곧 중구지역에서 탄생한 ‘인천
        냉면’은 인천항의 외지인 손님들로 해서 활황을 이어가며 정착하였

        다. 그에 따라 유명한 냉면집들이 생겨났는데, 대표적인 업소가 중구
        용동의 평양관과 경인관, 경동의 신경관, 인천관, 답동의 사정옥, 그리

        고 동구 금곡동의 복영루 등으로 크게 번창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뛰어난 육수 맛으로 해서 ‘인천냉면’은 널리 서울에까지 소문이

        났다고 한다.







       10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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