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실업급여 수급자를 위한 취업희망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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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노리는 많은 사람들, 이른바 미두꾼들 또한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이렇게 노동자, 상인들, 미두꾼 등 외지 인구가 늘어나면서, 자연적
으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외식업이 인천에, 특히 중구에 집중되어 발전
하게 되면서 그 당시 외식 메뉴의 한 종류였던 누들의 판매가 중구를
본거지로 시작되었다.
당시 서울에는 종로에 몇 군데 설렁탕집이 있을 뿐 이러
한 규모는 아니었다. 근대식 외식업소도 역시 인천이 효시
이고 서울에 생긴 것은 조선박람회(1925년)부터였다.
이 글은 인천의 원로 의사로서 음식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가졌던
신태범(愼兌範, 1912∼2001)의 저서 『개항 후의 인천 풍경』에 기록되
어 당시 서울보다 앞선 인천 외식업의 발전을 읽을 수 있다.
당시 인천의 주요 외식 누들 음식의 하나가 냉면이었다. 본래는 평양
냉면을 표방해 출발했으나, 인천 땅에 와서 애초의 평양식 냉면에서 크
게 발전한 별개의 ‘인천냉면’으로 재탄생해 인천, 그리고 중구의 향토
누들음식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짜장면 역시 1910년을 전후한 시기에 청국조계지를 중심으로 산동
반도를 통해 건너온 청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탄생하였다. 이것이 인천
에 퍼지고 다른 도시에도 전파되어 인천 중구는 오늘날 전 국민이 즐
겨 먹는 한국식 짜장면의 발상지가 되었던 것이다.
8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