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실업급여 수급자를 위한 취업희망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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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상업시설 건축 등이 늘어났다. 거기에 이어서 공공시설 건축, 해안
        매립, 축항건설 등의 큰 공사도 벌어졌다.

          이런 방대한 공사는 조계지에 사는 자기네 인력만으로는 다 이룰 수
        없었고, 결국은 이 일이 전국 각지의 조선인 노동자들을 불러 모으는

        한 계기가 되었다. 더구나 개항 초기부터 일본은 자기 나라의 부족한
        쌀을 충당하기 위해 질 좋은 조선 쌀을 수입해 감으로써 인천항은 조

        선의 쌀 수출항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인근의 경기, 충청, 황해도

        의 쌀이 모였다.
          선박으로 쌀을 운반해야 했기 때문에 부두에서 쌀가마를 운반하는

        노동자들도 절대 필요했는데, 이 또한 전국의 조선인 노동 인력을 끌
        어들인 것은 물론이다. 개항 초기에 벌써 인천항 부두에서 노동을 하는

        조선인 인구가 천여 명을 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여기서 전국에서 모여든 가난한 조선인 노동자들은 모두 가족을 두

        고 단신으로 모였기 때문에 식사를 외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서 생겨난 것이 외식업소, 즉 식당이었다. 더구나 일본이 조선 쌀을 수

        입해 가면서 도매업자이자 유통업자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인 객주(客
        主)들 또한 다수 이곳에 모여들었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쌀을 헐값에 마음대로 가져가기 위해 19세기 말

        쯤에는 미두취인소(米豆取引所)라는 쌀 선물거래(先物去來)를 위주로
        하는 투기시설도 세웠다. 일본의 책략에 휘말려 투기를 통해 일확천금




 6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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