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5 - 세명대3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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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 것이었다. 대학의 입시업무는 빠져나가는 합격생 대신 추가합격자로 채우는 일이 중심이 되었다. 입
제1편
학 경쟁률이 높아도 합격자가 얼마나 빠져나갈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대학의 경쟁 대학의 역사_
30년의 발자취
을 유도한 것이 아니라 부당한 경쟁질서 속에 대학의 서열화를 부추기고 강화시키는 부작용으로 작용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다행스러웠던 것은 우리 대학교의 재정기반이 탄탄하고 조직의 경쟁력이 우수했다
는 점이다. 다른 대학이 방만한 대학의 구조조정을 고민할 때에 우리 대학교는 위기를 발전의 계기로 만들
제2편
기 위한 개혁에 착수할 수 있었다. 설립자는 1998년 신년사에서 인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천명하고, 경 교육활동
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혁을 주문했다.
개혁을 위한 조치가 곧 이어졌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김엽 총장을 보좌하면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대원공대에서 대학개혁의 경험을 축적한 염재선 학장을 부총장으로 임명하여 실무적인 책임을 맡겼다. 뒤 제3편
이어 설립자가 직접 제3대 총장으로 취임하여 교육행정의 일선에 나섰다. 총장 취임식은 1999년 2월 2일 연구활동
교직원들만 모인 자리에서 간소하게 치러졌다. 권영우 총장은 첨단교육환경을 위한 인프라 구축, 외국 우
수대학과의 교류를 통한 세계 속의 대학으로 발전, 한의학·디자인·관광 등의 분야를 집중적으로 강화하여
지역사회에도 이바지하는 대학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재직기간 중의 보수 전부를 장학금으로 내놓겠다 제4편
학생기구 및
는 방침을 밝히고 이를 실천에 옮겨 우리 대학교의 기초를 더욱 든든하게 다지는 일에 앞장섰다.
학생활동과 지도
제4대 총장은 오랫동안 대학개혁의 실무를 담당했던 염재선 부총장이 이어받았다. 2003년 9월 1일에
취임한 염재선 총장은 ‘세명대 비전 2010 발전모델’을 제시하고, ‘특성화’, ‘차별화’, ‘선택과 집중’을 강조
하면서 표적시장을 선정하여 신입생 고객의 신규수요를 창출하는 시장 확장 및 시장 개척을 위한 포지티 제5편
대외교류·협력과
브 썸게임의 마케팅믹스전략을 실천해가겠다고 천명했다. 경영전문가로서 대학에 경영의 원리를 더욱 철 지역사회 활동
저하게 적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제6편
2. 입시제도의 변화와 학생 유치 활동
교육행정,
이 시기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신입생을 안정적으로 유치하는 것이었다. 1995년 이래 특차와 정시로 나 재정 및 시설
누어 학생을 선발하는 것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점차 전형유형이 특기자/만학도/교장추천/고시장학생
등으로 다양해졌다. 2002년부터는 수시입학전형이 시작되었고, 수시도 1, 2차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제7편
신입생의 복수지원제도가 확대되면서 우리 대학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입시 관련 부서를 강화하 대학원 및
고, 홍보활동을 더욱 강화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2000년대 초까지 우리 대학교는 다른 학교에서 대학 부속기관
부러워할 만큼, 100%에 가까운 충원율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100% 충원에 따른 문제도 적지 않았
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까지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두고두고 부담이 되었고, 대외적으로 저평가 받
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5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할 때에는 모두가 걱정하던 대규모 미
달 사태가 나타났다. 그때의 충원율이 84.7%였다. 그나마도 다른 대학에서는 부러워할 만한 수준이었지
만, 항상 100% 충원을 목표로 삼아왔던 우리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교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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