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2 - 세명대3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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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학문화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것은 학생자치기구인 총학생회가 출범한 것이다. 1992년에 처음으로 임시총학
생회가 발족한 이후, 1992년 말에 재학생들의 직접선거에 의한 총학생회가 처음으로 출범했다. 투표율이
SEMYUNG UNIVERSITY 30th ANNIVERSARY
72.6%에 이를 만큼 재학생들의 많은 관심 속에서 총학생회가 출범했다. 이 무렵 약사의 한약 조제권 허용
문제를 둘러싼 논란의 과정에서 시작되어 수업거부로까지 치달았던 한의예과 사태는 총학생회와 별다른
교감이 없는 가운데 진행됐지만, 학생들에게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의욕적으로 출범한 총학생회는 1995년을 거치면서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문민정부 수립
이후 탈정치화 경향을 보였던 대다수 학생과 총학생회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었는데, 특히 한총련(한국대
학총학생회연합) 가입 여부를 놓고 한동안 갈등을 겪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총학생회에 대한 관심이 점차
낮아졌고, 참여의 척도인 투표율 또한 점차 낮아졌다. 그 결과, 1996년도 총학생회를 구성할 때는 투표율
이 38.7%로 낮아지더니, 1997년도 총학생회는 단독후보 출마에 15.6%의 낮은 투표율 속에서 초라하게
출범했다. 학생들의 관심이 사회보다는 개인적 문제로 급격히 기울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런 상황에
서 총학생회가 한총련과 결별을 선언한 것(1997.05.30.)은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한편, 대학 규모의 확대와 함께 대학의 문화도 점차 변화했다. 동아리 수가 늘어났고, 5월 22일 개교기념
무렵 사흘 동안 개최되는 청룡체전이 1992년부터 정착했고, 가을에 열리는 청룡축전도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축제 기간에 강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아예 등교하지 않
는 등, 참여율이 낮아서 행사 진행에 많은 어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이처럼 축제에 대한 참여가 저조하자
자연히 구성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이벤트’가 많아졌다. 1994년 청룡축전 전야제에 맞추어 인기가수 권
인하가 출연한 것을 계기로 학교 축제에는 으레 인기가수를 초청하는 것이 관행이 되다시피 했다. 이로써
대학축제에 대한 관심은 다소 높아졌으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
개교하던 첫해에 이미 시작된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은 이후에도 별다른 부침 없이 지속적으로 펼쳐졌
다. 1994년에 동아리연합회가 처음으
로 구성되었고, 학생들의 수가 많이 늘
어나면서 동아리 수가 50% 가까이 늘
어났으며, 주로 청룡축전 기간을 통해
전시활동을 하는 등 꾸준한 노력을 기
울였다. 그러나 동아리 활동을 위한 조
건은 그다지 양호하지 않았다. 예컨대
동아리 등록을 매학기 갱신하도록 규정
한 당시의 학칙은 동아리 활동을 제약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1992.4.14 임시 총학생회장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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