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한장 연탄한장 밥상공동체종합사회복지관 연탄한장 밥상공동체종합사회복지관 22개의 연탄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안 보이는 세상이 없다. 두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세상의 안경이 연탄이다. 연탄은 모나고 거친 삶을 동그랗게 볼 수 있게 해 준다. 혼자 타지 않고 항상 차가운 연탄을 따뜻하게 해 주는 마음을 닮고 싶다. 시간을 잘 맞춰 갈아 줘야 오래도록 집을 따뜻하게 해 주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렇다. 어려운 이웃에게는 당장 오늘이 삶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그때를 잘 맞추는 것도 우리의 할 일이다. 연탄은행은 오늘도, 내일도 차가운 바닥에 따스함을 선물한다. 연탄, 은행이 되다 CONTENTS 연탄이 된 석탄 연꽃을 닮은 연탄의 역사와 우리의 삶 따뜻함과 안타까움의 ‘쌍곡선’ 사재기하고 야간통행증 발급 ‘연탄 난리’ 숲을 지키기 위한 대안 ‘연탄’ 연탄구멍 개수의 변화에 따른 별칭 연도별 연탄의 변화 06 『연탄 한 장』은 SDGs 1번 ‘모든 형태의 빈곤 종식’과 SDGs 2번 ‘기아종식’, SDGs 3번 ‘모든 연령층을 위한 건 강한 삶 보장과 복지 증진’, SDGs 8번 ‘모두를 위한 양질 의 일자리와 경제성장’, SDGs
9번 ‘회복력 있는 사회기 반시설 구축,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산업화 증진과 혁 신 도모’, SDGs 10번 ‘불평등 완화’를 위해 제작했습니다. 연탄지기 일은 가난하게 해야 한다 연탄 나르는 남자 연탄봉사의 현장에서 만난 천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연탄! 후원기업 이야기 후원자 문학이 사랑한 ‘연탄’ 밥이 된 연탄 밥상공동체종합사회복지관 연탄 불을 피우다(연혁) 연탄 기네스북 연도별 사업 성과 후원부터 나눔까지 연탄은행의 시작, 원주 Q&A 알려주세요! 사진으로 보는 재개식 18 52 연탄이된석탄1 연탄 한 장 8 연탄이 된 석탄 본격적인 추위에 앞서 뉴스에서는 연일 연탄 나눔 봉사활동에 나선 사람들이 전파를 탑 니다. 추위가 절정에 이르는 추운 겨울날 가장 먼저 생각나는 활동이 연탄 나눔봉사입니다. 기름보일러와 심야전기, 도시가스가 주 연료인 시대이지만 아직도 연탄으로 난방하는 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름보일러나 도시가스 시설이 없는 가구의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는 연탄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보급되었을까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탄이 난방용으로 가정에 보급되던 시기는 지난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100 여 년
동안 고위층부터 서민층까지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연료였습니다. 그 연탄의 주 원료는 바로 석탄이었습니다. “평양 석탄과 일본 석탄을 많이 무역하여 서울 용산 제물포에 지점을 벌이고 큰 장사를 하는데(…) 올해는 일본 석탄이 작년보다 비싼 고로 미리 주문하면 싸게 살 터이요. 평양 무연탄도 풍범선으로 많이 실어다가 파니 누구든지 겨울에 쓸 석탄을 미리 와서 주문하시면 상등 석탄을 싸게 살 터이니 속히 와서 주문하시오.” 독립신문 1897년 9월 11일 자, 관제(官製) 연탄 광고 석탄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19세기 말로 추정됩니다. 일본에서 수입하기도 했고 1896년 무렵 평양 근처에서 처음으로 채굴했다고 합니다. 조선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 는 내장원이라는 관청이 기비레라는 프랑스 기술자와 매년 3,000원(元)을 주고 평양 무연 탄 3,000톤을 채굴하는 5년짜리 계약을 체결했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황성신문 1903년 9 월 12일 자). 매년 3,000톤이면 그때도 석탄 사용량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입니다. 즉 대한 연꽃을 닮은 연탄의 역사와 우리의 삶 연탄 한 장 9 연탄이 된 석탄 제국기 프랑스 자본과 기술을 이용해 평양지역의 무연탄을
채굴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평양의 무연탄은 질이 좋아 일본 도 눈독을 들일 정도였다고 합니다. 강제 병합 이후에는 조선총독부가 생산과 이용처를 철저히 통제하며 수탈을 본격화하 기 시작합니다. 광해관리공단에 따르면 당시에는 석탄(무연탄)을 가공하지 않고 가정이나 대장간에서 그대로 불을 붙여 썼고 화물선 연 료 등 동력원으로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일제는 평양 탄광(사동 탄광) 채굴권을 조선 정부에서 빼앗은 뒤 평양 광업소를 설 치해 캐낸 석탄을 주로 일본 해군 연료로 사용했습니다. 이후 1923년에는 조선총독부가 지질 조사를 시작해 1936년 강원 도 태백 지역(현 장성광업소)에서 처음 탄광을 열었습니다. 연탄 한 장 10 연탄이 된 석탄 연탄의 보급 따뜻함과 안타까움의 ‘쌍곡선’ 연탄 한 장 11 연탄이 된 석탄 한 역사 교사는 연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따뜻함 과 안타까움의 쌍곡선’이라고 말입니다. 부엌이나 창고에 연 탄이 들어와 쌓이는 걸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겨울나기 의 필수품이었습니다. 때로는 온 가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로 다가올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연탄은 따뜻 함을 상징합니다. ‘연탄 한 장의 온기가 세상을 바꾼다’거나
‘올겨울 누군가에게 따뜻한 연탄이 되자’는 구호를 가슴속 깊이 받아들일 수 있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강한 연대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연탄이 보급된 시기는 일제강점기입니다. 동그란 몸통에 구멍 9개가 뚫린 이른바 ‘구공탄’이 처음 도입됐습 니다. 주로 산업용으로 사용되거나 일본인들의 집에서 사용 했습니다. 한국인에게 판매한 연탄은 평양 광업소에서 제 작한 것이었는데,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직육면체에 2~3개의 구멍이 뚫린 형태였습니다. 1932년 신문에 실린 광고를 보면 동그란 연탄과 네모난 연탄이 함 께 그려져 있는데, 대부분 서울이나 평양 등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상품이었습니다. 일반 서민용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난방용 연료보다 취사용 연료로 사용됐기 때문에 크기도 지금의 연탄보다 더 작았습니다. 1947년 대구에서 국내 최초의 자주적 연탄 회사(대성산업공사) 가 설립되는 등 우리나라에서 연탄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광복 이후였습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 는 연료 문제를 고민하다 1953년 채굴된 무연탄을 생활 연 료로 활용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1950년 중반 연탄은 가정용 난방 연료로 시중에
판매되며 대중화되 기 시작했습니다. 연료난으로 석탄을 구하기 어려웠지만, 항 구 지역인 부산에서는 비교적 석탄을 구하기 쉬웠다고 합 니다. 1950년 임시 수도 부산에서 누군가 석탄과 물을 섞어 연탄을 만들어 사용하며 전국적으로 수타식 연탄이 확산 됩니다. 당시 부산 사람들은 가정용 연탄 제조 틀을 이용해 석탄과 흙을 섞어 수제 연탄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 모습 이 전쟁 당시 부산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의 눈에 들어왔고, 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광산과 철도 개발, 그리고 정부의 연 료 전환 정책과 함께 연탄이 개량되면서 서민용 난방 연료 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1953년 6월 4일 정부는 내무부 농림부 양 장관 공동명의로 서 울, 부산, 대구, 인천, 대전, 광주, 전주 등 9개 도시에 장작 반 입 금지령을 내리면서 토탄(土炭)과 무연탄을 대용 연료로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나설 정도였습니다. 1956년 태백선 등 철도 개통을 계기로 석탄 생산량이 크게 늘면 서 정책적으로 가정까지 연탄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1960년 대 시작된 산림녹화 5개년 계획으로 연탄의 수요는 폭발적 으로 늘어 당시 서울의 가정 90%가 연탄을 사용할 정도였 습니다. 1백여 개의 연탄공장이
성업하였고 전국적으로 4백 여 개의 연탄공장이 있었습니다. 1958년 정부는 아궁이 개조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합 니다. 장작을 쓰지 않고 연탄 사용이 가능해질 것이리라 생 각한 것입니다. 1958년 10월 연탄 가격이 폭등하자, 1959년 1월 정부는 무연탄을 전년 대비 47% 증산하고 가정용 연탄 판매량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960년 연탄 사용의 증가는 동시에 연탄가스 중독 사망 사고라 는 아픔을 가져옵니다. 단칸방에 살던 일가족이 모두 사망 하는 경우가 신문에 종종 등장하곤 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 한 해 일반용으로 제공하는 민수용 연탄 은 약 600만 톤에 13억 2,000만 개가 만들어졌습니다. 11 월부터 2월까지 서울 시내에서만 하루 300만 개가 소비될 정도였습니다. 1964년 서울에는 447개의 연탄공장이 있었 지만, 정부의 가격 인상 억제 정책 등으로 1965년 9월 190 여 개로 줄어들었습니다. 광복 이후 1950년대까지 소비 증가가 지속되던 장작과 볏짚, 건초 등의 초목 연료는 1965년을 기점으로 연탄 소비 량에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연탄 한 장 12 연탄이 된 석탄 1960년대 말까지는 연탄의
전성기였습니다. 난방 연료 로 연탄 사용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탄 공 급량은 언제나 부족했습니다. 연탄공장에서는 밤새 연탄 을 생산해도 연탄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웃돈을 주거나 미리 사재기를 하는 집들이 많아졌고, 집 이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있으면 배달조차 어려웠습니다. 겨우 배달을 해서 연탄을 받아도 웃돈을 붙여줘야 했 습니다. 1965년 말에는 고지대에서 돈을 주고도 연탄을 살 수조차 없을 정도로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연탄 수송 차량에 야간 통행증을 발급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신문에 서는 연일 연탄이 모자라 ‘연탄 난리’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1966년 가을에도 어김없이 연탄 품귀 파동이 일어났고 연탄 한 개에 13원을 주고도 살 수가 없었습니다. 1964년 9월 7일 경제기획원에서 열린 ‘물가분석위원회’에서 겨울 동안 연탄값을 7원으로 묶기로 결정한 지 2년여 사이에 거 의 2배로 치솟은 겁니다. 귀한 연탄은 부르는 게 값이 되었 고, 최고 17원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1966년 1차 연탄 파동을 겪으면서 주부들은 핸드백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연탄이 몇 장 밖에 남아 있지 않으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는 하소연까지
나올 지경이었다고 합 니다. 여기에 더해 연탄가스 중독 사망자도 급증하고 있었 습니다. 1968년 11월 서울시는 학계와 연구자들의 분발을 호소하면서 연탄가스의 완전 제독제를 발명한 사람에게 1,000만 원의 현상금을 내걸 정도였습니다. 이때부터 정 부의 에너지 정책 중심이 석탄에서 석유로 옮겨지기 시작 했습니다. 1969년에는 석유가 전체 에너지 소비의 37.4% 를 차지해 처음으로 석탄을 추월하기도 했습니다. 1973년 석유파동을 겪으며 1974년에도 연탄 부족 사태가 예상된 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여름 연탄을 사재기해 품귀 현상 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연탄의 소비 감소 추세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으로 농촌까지 연탄보일러가 보급되면서 연탄은 가정 연료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며 1980년대 중반까지 전 국민의 연료로 사랑받았습니다. 1988년 조사에서 대한민국 가정의 약 78%가 가정 연료로 연탄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이후 1993년 약 33%, 2000년대 약 2%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사재기하고 야간통행증 발급 ‘연탄난리’ ’ 돈이 많아도 연탄이 없으면 불안 숲을 지키기 위한 대안 ‘연탄’ 연꽃 열매를 닮아 연탄이라고 불려
연탄의 주재료는 석탄입니다. 서양에서는 기원전 315년의 그리스 서적에 석탄을 대장간의 연료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동양에서는 삼국지로 유명한 중국 삼국시대에 석탄과 관련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연탄과 비슷하게 만들어 석탄을 이용한 기록은 10세기경 독일, 940년경 중국 송나라 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선에서는 영조 6년에 기록이 나옵니다. 석탄은 발화점이 높아 불이 잘 붙지 않는 단점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나무나 숯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나무로 숯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산의 나무들 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숲이 민둥산으로 변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 로 연탄입니다. 19세기 말 일본 규슈(九州) 지방 모지시(門司市)에서 주먹만 한 석탄에 구멍을 뚫어 목탄 대신 불 이 잘 붙도록 사용한 것을 연탄의 시초라고 합니다. 이 모습이 연꽃 열매를 닮아 ‘연꽃 연탄(蓮炭)’, 또 는 ‘연꽃 구멍탄’, ‘통풍탄(通風炭)’으로 불렀는데 오늘날 연탄의 기원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07년 연탄은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로 발전합니다. 일본 해군이 석탄 가루를 점토 등과 섞어 일 정한 크기와 모양의 석탄 덩어리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조개탄입니다. 선박용 연료로 사용한 것 입니다. 이것을 일본식 화로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연탄 제조기까지 만들었습니다. 석탄 가루를 점 토와 섞어 동그랗게 만들고 중간에 구멍을 뚫은 것입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연탄을 생산하기 시 작했고, 우리나라에서는 평양광업소가 제조한 관제(官製) 연탄이 서울과 평양 등 대도시에 처음 보 급됐습니다. 연탄 한 장 13 연탄이 된 석탄 연탄 한 장 14 연탄이 된 석탄 연탄구멍 개수의 변화에 따른 별칭 연탄은 구멍 개수에 따라 불리는 별칭이 있습니다. 1955 년 생산된 ‘19공탄’이 주를 이루었고 지역에 따라 구멍의 숫자가 다른 연탄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연탄은 표준 화되지 않아 정해진 규정은 없었지만, 생산업자들은 대부 분 규격을 맞추어서 생산하였고, 1970년대 이전까지 생산 되던 19공탄은 22공탄이나 25공탄으로 바뀌었습니다. 1989년에 와서 산업표준에 의해 1~5호까지의 연탄 규 격이 정해졌고, 그중 흔히 사용되던 가정용 연탄은 지름 15.8cm, 높이 15.2cm의 2호 연탄이었습니다. 연탄의 크기 와 구멍의 숫자는 화력과 관계가 깊습니다. 1957년 만들어 진 31공탄과 49공탄 등의
대형 연탄은 영업용으로 널리 쓰 였습니다. 연탄의 편리함은 난방의 용도뿐만 아니라 부엌 아궁이 앞에서 끼니마다 장작불을 지펴 음식을 해야 했던 여성들에게 ‘여성해방’의 상징이었습니다. 장작불보다 관리 연탄 한 장 14 연탄이 된 석탄 연탄 한 장 15 연탄이 된 석탄 하기 편하고 꺼지지 않고 일정한 열량을 유지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편리했습니다. 커다란 솥에 물을 담아 얹어 놓으 면 더운물도 넉넉히 사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 가장 흔히 쓰이는 ‘22공탄’은 구멍이 22개 뚫려있 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1978년에 22공탄으로 통일되었다 가 다시 22공탄, 25공탄으로 분리되었습니다. 따라서 1970 년대 이전에는 주로 19공탄을 썼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19공탄으로 사용되던 연탄구멍수가 1970년대 늘어난 이유는 석탄 가공 기술의 발전으로 구멍수가 늘어났다는 설도 있지만, 화력을 높이기 위한 사용자들의 요구에 따 라 자연스럽게 늘어났다는 의견이 유력합니다. 현재 국내 대부분 지역에서는 22공탄을 사용하지만, 경남과 전남에 는 25공탄을 쓰는 지역도 있습니다. 과거 남부 지방 (전남 화순)에서 생산된 석탄은 흑연 함량이 높아 불이 잘 붙지 않았으므로
연탄불이 붙는 온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높 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산업자가 불이 잘 붙도록 하기 위해 구멍 개수를 늘렸던 것입니다. 석탄 정제기술의 향 상과 수입탄의 영향으로 지금은 25공탄을 생산할 필요 가 없습니다. 22공탄 연탄 1장에 소요되는 무연탄 양은 약 2.5kg입니 다. 처음 생산했을 때 22공탄 연탄 한 장의 무게는 3.65kg 인데, 건조한 뒤에는 3.3kg으로 줄어듭니다. 연탄 만드는 것으로 생계를 꾸리는 집에서는 19공탄을 찍는 수타식 장 비를 갖췄는데, 초기의 수타식 연탄 찍기 장비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쇠로 만든 수타식 장비가 등장했습니다. 연탄을 만드는 수타식 장비는 태백석탄박 물관에 작업하는 사람과 함께 그 모형이 전시되어 있고, 사북석탄문화제 행사 때도 체험행사 단골 프로그램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1955~1970년대 이전 19공탄 22공탄 22공탄, 25공탄 1978년 1978년 연탄 한 장 15 연탄이 된 석탄 연탄 한 장 16 연탄이 된 석탄 연도별 연탄의 변화 300 100 200 400 단위: 1000톤 연탄 사용량 서울 강원 2007 2008 2009 2016 2017 2018 2019 298
300 259 192 176 143 105 261 299 272 186 167 150 101 연탄 한 장 17 연탄이 된 석탄 2007 2008 2009 2016 2017 2018 2019 2007 2008 2009 2016 2017 2018 2019 1000 400 15 100 5 200 10 600 800 단위: 원 단위: 개 연탄가격 연탄공장 수 3 350 400 500 600 700 800 800 2 2 2 2 2 2 11 11 11 10 11 12 12 밥이된연탄2 연탄 한 장 20 밥이 된 연탄 밥상공동체종합사회복지관 2012년 ‘1만원으로 행복센터 짓기’ 후원캠페인이 시작되면서 밥상공동체의 도움을 받았던 어르신들의 후원을 시작으로 지역사회도 힘을 모았다. 순수 민간 자본, 지역사회의 후원금으로 건립된 행복센터는 지역주민의 다양한 욕구를 기반으로 2013년 7월 1일 밥상공동체종합사회복지관으로 개관했다. 우리 복지관은 3대 기능사업인 사례관리, 서비스제공, 조직화사업과 더불어 지역사회통합돌봄, 마을관리소(국민건강보험공단 1호점) 끊임없는 새로운 변화와 도전으로 2023년 개관 10주년을 맞이했다. 만원의 감동, 순수 민간모금으로 건립된 연탄 한 장
21 밥이 된 연탄 운영법인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복지재단 기관개요 관장: 허기복 개관일: 2013. 7. 1. 주소: 강원도 원주시 일산로 81-2 직원: 총 55명 관장 부관장 부장 팀장 주임 사회 복지사 조리사 기타 생활 지원사 1명 1명 1명 2명 2명 9명 1명 2명 36명 사명 MISSION 기독교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최상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여 희망과 감동을 선사하는 이웃사랑 복지공동체 구현 미래상 VISION 생명존중, 사람 중심의 휴먼서비스를 실천한다. 지역사회 내 복지 중심센터로서 선도적 역할을 한다. 주민참여와 자원개발로 봉사와 나눔의 리더가 된다. 연구지향적 복지실천가 양성을 위한 직원 역량강화에 힘쓴다. 1 2 3 4 기독교 봉사정신과 밥상공동체 설립자의 이타정신에 의거 배고픔과 추위가 없는 따뜻한 세상을 구현하고자 한다. 또한 어려운 이웃과 주민들에게 통합적 사회복지서비스와 자활을 통하여 희망을 갖게 하고, 지역주민의 적극적 참여를 통한 나눔과 봉사의 리더가 되고자 한다. 연탄 한 장 22 밥이 된 연탄 관장 허기복 부관장 하태화 운영위원회 인사위원회 고충처리위원회 연탄은행ㆍ에너지센터 노인맞춤팀 복지사업팀 급식팀 지역복지팀 기관조직
•연탄은행 •에너지종합센터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안전지원, 사회참여, 생활 교육, 가사지원, 활동지원) •경로식당 •재가도시락 •사례관리 •원인동 마을관리소 •단구동 마을관리소 •미디어복지 •ICT돌봄 •가치돌봄프로젝트 •홍보사업 •재무회계 •총무행정 •직원교육 •무료급식 •후원ㆍ봉사 •교육문화 •기부은행 •기획행사 연탄 한 장 22 밥이 된 연탄 연탄 한 장 23 밥이 된 연탄 주요사업 밥상공동체종합사회복지관은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스마트복지관, 미디어복지, 마을관리소, 사례관 리, 에너지지원센터, 연탄은행 등 다양한 복지사업을 수행하며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역 복지팀 사례관리 지역조직화 복지 사업팀 지역조직화 서비스제공 연탄은행 에너지센터 사례관리 사례발굴, 개입, 서비스연계, 결연후원, 위기지원 마을관리소 국민건강보험공단 후원 강원도1호 마을관리소, 동네사랑방, 공구 대여, 주민고충처리, 주민문화행사, 마을축제, 마을활동가 양성 등 미디어복지 BS영상센터(지역주민, 어르신들이 함께 만드는 방송) ICT돌봄 ICT돌봄 효돌, 보듬이 지원,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 가치돌봄프로젝트 마을리더 양성을 통한 지역사회통합돌봄 후원,
봉사, 홍보 후원, 봉사 모집 및 관리, 홍보 출판 등 돌봄공동체사업 지역사회보호사업(취약노인 돌봄 지원), 무료급식, 재가노인식사 배달사업, 김장 및 일상생활지원 교육문화사업 교육 문화(건강체조, 장구교실 등) 주민문화사업 명절나눔행사, 어버이날, 건강한 여름나기, 기타 절기 행사 사회공헌활동 기부은행 지역어르신과 돌봄봉사자 연계, 돌봄사각 예방 연탄사용 가구조사 지역 내 실제 연탄사용 가구 조사를 통한 사각지대 발굴, 지원 연탄지원 원주지역 내 봉사자, 후원자 연계를 통한 연탄 무료 지원 연탄나눔활동 지역사회 내 개인 및 기관 등 사회공헌활동 봉사자 모집을 통한 연탄지원 에너지지원센터 에너지빈곤층 맞춤형 난방지원(난방유, 도시가스, 냉·난방용품 등) 연탄 한 장 23 밥이 된 연탄 연탄 한 장 24 밥이 된 연탄 연탄 불을 피우다 연탄은행 2002 12. 전국 최초 에너지빈곤층과 영세노인 등을 위한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설립 (밥상공동체복지재단) 십시일반 모은 정성 2013 10. ‘우리 함께해요’ 밥상연탄은행 재개식 11. 사랑의 연탄 150만 장 나눔 연합모금 협약식 (강원사회복지공동모금회) 12. 사랑의 연탄 150만 장 보내기-모금특별생방송
(CJ헬로비전 영서방송) 2014 02. 사회지도층인사 사회공헌의 날 시작 (원창묵 원주시장) 10. ‘연탄1장으로 300만 장의 큰 기적을’ 밥상연탄은행 재개식 11. 사랑의 연탄 150만 장 나눔 연합모금 협약식 (강원사회복지공동모금회) 12. 사랑의 연탄 150만 장 보내기-모금특별생방송 (CJ헬로비전) 2015 10. ‘연탄1장으로 큰 기적을’ 밥상연탄은행 재개식 12. 사랑의 연탄 30만 장 보내기-모금특별생방송 (CJ헬로비전) 2016 10. ‘따뜻한 대한민국 만들기’ 밥상연탄은행 재개식 12. 사랑의 연탄 300만 장 보내기–모금특별생방송 (CJ헬로비전) 연탄 한 장 24 밥이 된 연탄 연탄 한 장 25 밥이 된 연탄 누구도 소외되지 않은 2017 10. ‘따뜻한 대한민국 만들기’ 밥상연탄은행 재개식 12. 도시가스 체납세대 지원사업 진행 2018 01. 참빛원주도시가스 ‘에너지빈곤층 통합지원서비스 구축’ 업무협약 체결 08. 대명원 마을만들기사업 ‘마을 소통공간 만들기’ 정자 준공식 09. ‘에너지빈곤층 통합지원서비스 구축’을 위한 에너지종합지원센터 개소 10. 원주지역 ‘사랑의 연탄 40만 장 보내기’ 밥상연탄은행 재개식 행복한 사랑의 불꽃
2019 10. 서민연료, 연탄가격동결관철! 밥상연탄은행 재개식 2020 09. 연탄은행 ‘온택트’ 재개식 2021 10. ‘3일을 책임집시다’ 밥상연탄은행 재개식 2022 10. ‘경제불황, 연탄 밥이되다’ 밥상연탄은행 재개식 연탄 한 장 25 밥이 된 연탄 가장 추웠던 날의 기온 최연소 봉사자 윤수진 그날 겨울들어 가장 춥다는 영하 14도였는데요. 너무 추워서 걱정했는데, 언덕을 몇 번 오르다 보니 땀이 나서 신기했어요. 그날 2kg 체중 감량 효과도 있었답니다. 박지우 5살 아이가 연탄 1장을 손에 들고 어르신 댁에 연 탄을 직접 전달해 주었는데요. 처음에는 신이 나 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좁을 골목을 지났지만 지 쳐서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같이 활동했던 봉사 자분들과 지역 어르신들이 얼마나 아이를 이뻐하 고 기특해하셨는지 어르신 냉장고에 아끼던 요구 르트, 초코파이가 총출동했습니다. -14℃ 5세 가장 많이 들었던 무게 김상섭 고지대 언덕에 있는 집이라 힘들었지만, 연탄을 빠르게 나르기 위해 지게에 16장을 싣고 양손에 연탄 4장을 더해 20장의 연탄을 가지고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 다가 힘이 들어 결국에는 10장으로
연탄 개수를 줄여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답니다. 73kg 연탄 한 장 26 밥이 된 연탄 연탄 기네스북 가장 많이 들었던 무게 가장 더웠던 날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봉사 최고령 봉사자 2015년 6월 19일 장마철을 앞두고 어르신들에게 사랑의 연탄을 전달하기 위해 각 지역에서 오셨습니다. 서로 수 레를 밀며 지게를 짊어지고 손에서 손으로 연탄 을 나르기도 했는데요. 그날 온도는 30도였습니 다. 날이 너무 더워서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팔 토시에도 땀이 쏟아져 축축했지만 서로 웃으면 서 사랑의 연탄을 전달했었습니다. 원주의료고등학교 원주의료고등학교 학생들 260명이 따듯한 마음 을 전달하기 위해 호저면 대명원에 모였습니다. 이 날에는 연탄사용가구 27가구에 150장씩 총 4,050장의 따뜻한 사랑을 전달하였는데요. 따 뜻한 마음을 나누려는 학생들의 손길이 모여 어 르신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달하였던 추억이 있습니다. 권영준 2016년도 연탄은행 재개식 행사 날 도움만 받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참여 의 사 전달 후 연탄나눔활동에 참여했습니다. 나이 가 많아 젊은 사람들처럼 많이는 못 했지만 누군 가에게 나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활 동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