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of Bucheon 부천 시사 富川市史 2023 부천시사편찬위원회 1편 총설│2편 역사│3편 인물과 문화유산 부천 시사 2023 • 부천시사는 총 4권(본권 3권, 부록 1권)으로 구성되었다. 부천시사 1권 1편 2편 3편 총설 역사 인물과 문화유산 2권 4편 5편 6편 정치와 행정 경제와 산업 사회 3권 7편 8편 교육 문화와 생활 사진자료집 1편 2편 3편 4편 5편 부록 부천의 역사 부천의 공간, 파노라마 부천 소통하는 행정, 발전하는 부천 시민의 도시 부천 판타스틱 부천 부천시 연표 • 제1권: 전근대부터 현재까지의 부천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다루고, 부천지역 고유의 인물과 토성, 지명유래 등을 살폈다. • 제2권: 부천의 정치, 경제, 산업, 인구 동향, 도시화 등 정치, 경제, 사회를 분석하여 부천시의 도시화 및 발전과정을 다루었다. • 제3권: 부천의 교육, 문화, 종교, 체육 등 부천 문화의 특징과 시민들의 생활을 다루었다. • 사진자료집: 부천의 발전상을 볼 수 있는 사진자료 및 시정연표를 수록하였다. • 공간적 범위 - 행정구역상 부천시를 원칙으로 하되, 1914년 이전의 경우에는 당시 부천지역에 편제되었던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서술하였으며, 부천지역에 편제되었다가 분리된 지역의 내용도 일부 서술되었다. • 시간적 범위 - 서술시기는 선사시대부터 2022년을 기준으로 일부 내용은 자료기록과 집필시기로 인해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 각종 통계와 도표 활용은 집필 시점의 최신 통계인 2022년을 기준으로 하였으나, 경우에 따라 그 이전과 이후의 내용도 포함시켰다. - 주소 및 장소는 2022년을 기준으로 표기하였으나, 일부 원고는 2024년 1월 1일 구 체제(소사구/원미구/오정구)가 부활함에 따라 구제를 적용한 경우도 있다. • 내용적 범위 - 각 권의 기획 취지와 해당 주제에 맞게 서술 내용의 범위를 설정하여 서술하였다. - 전체적인 체제와 내용의 충실을 위해 필요한 경우 집필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윤문과 첨삭을 가하였다. • 이 책의 저작권은 부천시에 있다. 이 책에서 사용한 도표와 사진 등에는 출처와 원 저작권자를 표기하였으며, 부천시가 제작, 소장하거나 집필자가 제공한 자료는 별도로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집필자가 제공한 자료로 인해 발생하는 저작권 및 관련 문제의 책임은 해당 집필자에게 있다. • 이 책에 수록한 내용과 도표, 사진 등을 이용할
경우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하며,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 또한 별도의 원 저작권자가 있는 자료에 대해서는 해당 저작권자의 동의를 구해야 하며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다. 1. 기획방향과 구성 2. 서술의 범위와 원칙 3. 저작권과 출처 표기 일러두기 축사 다시 뛰는 부천, 시민과 함께 1914년 부천(富川)이라는 지명은 부평(富平)의 부(富)와 인천의 천(川)자를 합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부천의 사람들은 부천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고강동의 청동기 유적부터 고구려의 주부토군(主夫吐郡), 고려시대의 수주(樹州), 조선시대의 부평도호부, 일제강점기 부평군에 이르기까지 부천 사람들은 오 랜 기간 부천의 역사적 토대를 쌓아왔습니다. 복사꽃이 만개한 작은 농촌이었던 부천지역은 1899년 경인선 소사역(素沙驛)이 개통되 면서 급속한 도시화 과정을 겪었습니다. 도시화 이후 수도권 규제와 부족한 땅으로 인한 정체기가 찾아왔으나 문화로 극복해냈습니다. 지금 부천은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비보 이 등 다양한 국제축제를 보유한 유네스코 지정 문학창의도시이자 4차 산업혁명에 대응 하는 5대 특화산업이 꽃피는 도시로
도약했습니다. 2021년부터 3년의 준비 끝에 드디어 『부천시사』가 발간되었습니다. 시 승격 50주년을 맞이하여 약 20년 만에 발간된 『부천시사』는 50명이 넘는 분야별 전문가들이 참여해 3 권에 걸쳐 거의 모든 분야의 부천 역사를 총망라하였습니다. 특히 부천시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문화콘텐츠 분야를 각 장으로 세분화하여 부천의 정체성을 담았으며, 누구나 쉽 게 부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집을 별도의 단행본으로 구성했습니다. 『부천시사 』는 시 승격 이후의 50년 역사는 물론 그 이전의 역사도 포함하였습니다. 전근 대 부천이 등장하기 전에도, 시 승격 후 경기도의 대도시로 발전할 때도, 부천 역사의 주 역은 항상 부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천 사람들의 삶과 발전사를 기록으로 남긴 『부천 시사』를 통해 부천 시민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부천을 이해하고 미래의 부천을 만들 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더불어 『부천시사』가 발간될 수 있도록 힘써 주신 편찬위원과 집필위원, 그리고 관계자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누구보다 『부천시사』 편찬에 많은 관심과 도 움을 주신 시민 여러분께도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3년 10월 부천시장 조 용 익 부천의 새로운 100년을 향하여 축사 부천시의 역사와 문화유산,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와 발전상을 고스란히 담은 『부천시 사』가 많은 분의 정성과 노력으로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이번 『부천시사』는 2002년 발간 이후 21년 만의 작업이면서, 부천시의 향토문화와 변화 상을 보다 체계적으로 반영하고 정리했다는 점에서 80만 부천시민에게 더욱더 뜻깊게 다가올 거 같습니다. 지역 곳곳을 누비며 흩어진 기억을 모아 가치 있는 기록으로 만들어주신 부천시사편찬 위원회와 문화예술과 직원 여러분, 소중한 자료를 기증해주신 시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 씀을 드립니다. 편찬에 많은 관심과 도움을 주신 여러분 덕분에 짜임새 있고 완성도 높은 『부천시사 』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천시사 』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이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지난날의 기록은 우리가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보여주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또한, 지역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꼼꼼하게 기록된 부천시의 역사는 부천시민 으로서의 정체성과 지역문화의 우수성을
일깨우고, 부천시의 새로운 미래 100년을 향한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부천시에 대한 모든 것이 담긴 『부천시사』가 부천시를 알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유용한 참고자료로 널리 읽히고, 부천시의 역사와 문화를 추억하고 세대를 연결하는 값진 자산 으로 보존되기를 바랍니다. 2023년 10월 부천시의회 의장 최 성 운 발간사 『부천시사 』를 발간하면서 『논어(論語) 』의 「위정(爲政)」 편에는 “옛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것을 익힌다(溫故而知新)”라 고 하였으며, 영국의 역사가 카(E. H. Carr)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의 지속적 상호 작용의 과정이자, 현재와 과거, 나아가서는 미래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는 더 나은 미래를 그리기 위한 거울입니다. 지금까지 편찬된 『부천시사 』의 편찬 목적도 이에 기초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천시는 시의 역사를 오래 전부터 꾸준히 편찬하고 있습니다. 1982년 『부천의 흐름<내 고장 전통 가꾸기>』 라는 이름으로 시사의 성격을 가진 책이 처음으로 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1988년 시사라는 이름으로는 처음으로, 두 번째의 『부천시사』가 발간되었습니다. 2002년 부천시 승격 30주년을
맞아 ‘시민과 함께 한다’는 편사정신(編史精神)으로 우리 시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비롯하여 여러 분야의 현황과 시민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담 고자 세 번째 『부천시사』가 출간되었습니다. 2002년 편찬된 『부천시사』는 부천 고유의 지방문화를 발견하고자 하였던 점, 기존 정치사 위주의 시사에서 시민들의 삶을 대상으 로 시사를 서술해 나간 점 등 여느 시사와는 차별화된 체제로 편찬되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 네 번째 『부천시사』가 편찬되었습니다. ‘부천 50년의 두드림, 미래 100년 의 큰 열림’ 이라는 시 승격 50주년의 슬로건처럼 이번 『부천시사』도 ‘다가올 100년의 큰 열림’의 일환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졌습니다. 이번 시사는 지금까지의 시사를 기본 체제 로 하여, 2002년 시사편찬 이후 20년간의 역사를 정리하여 앞으로 부천시가 지향할 미래 를 제시하려 노력했습니다. 특별히 문화, 영화, 애니매이션, 박물관 등 부천시가 강점으로 가지고 있는 ‘문화’를 별도의 권으로 만들어 부천시의 정체성을 부각하고자 하였습니다. 아울러 누구나 쉽게 부천 역사에 다가갈 수 있도록 사진집을 더해 시민들의 편의성과 접 근성을 높였습니다. 항상 그러하듯, 마무리하는
과정에서는 다소 부족하고 미흡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 니다. 시간적 제약이 있기는 하였으나 좀 더 세밀하게 검토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고, 부천 시사편찬위원회의 집필기준에 따라 미수록된 원고도 있어 더욱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 러한 여러 사항에 대해서는 시사편찬위원회의 책임임을 말씀드리며, 다음 『부천시사』를 편찬할 때는 이러한 부분들을 보완하여 더 좋은 시사가 발간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부천시사 』 발간에 힘써주신 각 분과장님과 위원님들 및 집필위원님들, 그리고 부천시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외국에 가셔서도 지속적으로 교정·교열 을 해주신 이희용 서울신학대학교 교수님, 멋진 사진집을 기획해 주신 가톨릭대학교 기 경량 교수님과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연구원님들, 사진자료를 제공해 주신 부천문화원, 부천시박물관, 부천시 기록관 관계자 분들과 부천시 역사의 주역이 되어 주신 여러 시민 들께 큰 고마움을 전합니다. 2023년 9월 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김 희 태 편찬위원회 위원장 김희태(부천문화원 부천학연구소 연구위원) 편찬위원 방기철(선문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이상민(가톨릭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이수형(부천상공회의소 사무국장)
권순호(부천문화원장) 채경진(한국문화재정책연구소 정책실장) 오시명(부천시 문화경제국장) 최현규(동국대학교 외래교수) 이희용(서울신학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김기석(부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김용연(부천교육지원청 경영지원팀장) 간사 박은정 문화예술과장(전임 김동익) 서기 용영희 문화종무팀장(전임 조민자·박인숙) 연구원 황희순(전임 정세영) 편집진 교정·교열 총괄 김희태 이희용 황희순 사진 및 자료조사 김희태 황희순 기경량(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강인준 고현아 김성훈 김은진 박원우(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디자인·제작 ㈜디자인인트로, 임학래, 서성규, 김효진, 김슬기 집필위원 강미선(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외래교수) 고현주(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 권민석(국립농업박물관 학예연구사) 김기흥(건국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김대중(부천시립박물관 관장) 김명환(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김선미(만화영상진흥원 만화영상사업실 실장) 김선실(평생학습센터장) 김수연(강원연구원 균형발전연구실 책임연구원) 김승균((전)부천시 도로교통과장) 김준종(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회 사무국장) 김형석(아태인구연구원 원장) 김희태(부천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박경필((전)부천시
편집기획팀장) 박일영(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명예교수) 방기철(선문대학교 사학과 교수) 배기동(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서채환(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 교수) 신동민(공정거래위원회 대변인실 서기관) 엄승혜(부천불교연합회 회원) 여효성(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역경제분석센터 센터장) 유재균(한국산업기술원 의회운영연구소 소장) 윤혜민(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이상민(가톨릭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이세영(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연구위원) 이수형(부천상공회의소 사무국장) 이재희(별빛마루도서관 관장) 이정은(순천대학교 사학과 교수) 이화윤(부천대학교 아동보육과 교수) 이희용(서울신학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장인화(부천시체육회 경영지원팀장) 전광섭(호남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전예목(한양대학교 건강과사회연구소 연구원) 전정희(심원중학교 수석교사) 조도자(부천여성회관 관장) 조의행(서울신학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주성돈(명지전문대학교 행정과 교수) 채경진(한국문화재정책연구원 정책실장) 채웅석(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 최은규(kbs1FM 라디오 진행자) 최종복(부천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최진우(부천YMCA 회원) 편성철((사)지역문화연구소 연구원)
황지해(국립문화재연구원 학예연구관) 제1편 총설 제1장 연혁 018 제2편 역사 제1장 선사시대 040 제2장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056 제3장 고려시대 068 제4장 조선시대 082 제5장 대한제국기 100 제6장 일제강점기 1 10 제7장 현대 130 제3편 인물과 문화유산 제1장 성씨와 인물 166 제2장 문화 및 자연유산 240 제3장 민속 276 제4장 지명유래 294 목차 1권 제4편 정치와 행정 제1장 정치 014 제2장 행정 050 제5편 경제와 산업 제1장 경제 개관 088 제2장 농림축산업 102 제3장 공업 128 제4장 상업 144 제6편 사회 제1장 인구동향 160 제2장 도시환경 186 제3장 보건복지 268 제4장 시민사회운동 312 제7편 교육 제1장 초·중·고등학교 012 제2장 대학 026 제3장 평생교육 046 제8편 문화와 생활 제1장 문화 064 제2장 종교 236 제3장 체육 292 2권 3권 총설 1편 부천시사 History of Bucheon 1973 제1장 연혁 2 0 2 3 ● 원미구 ▲ 소사구 ◆ 오정구 부천시 현황 (2022.1.1. 기준, 지도에 2024년 1월 적용되는 구 체제를 적용함) 서울특별시
김포시 인천시 시흥시 광명시 ◆ 오정동 ◆ 신흥동 ◆ 원종1동 ◆ 고강1동 ◆ ◆ 고강본동 원종2동 ◆ 성곡동 ● 도당동 ● 춘의동 ● 약대동 ● 중4동 ● 중3동 ● 상3동 ● 상2동 ● 중1동 ● 중2동 ● 원미2동 ● 소사동 ● 원미1동 ● 상1동 ● 상동 ● 중동 ● 역곡1동 ● 역곡2동 ● 심곡1동 ● 심곡2동 ▲ 송내1동 ▲ 송내2동 ▲ 심곡본1동 ▲ 심곡본동 ▲ 소사본동 ▲ 괴안동 ▲ 범박동 ▲ 역곡3동 ▲ 소사본3동 ● 심곡 3동 소사구 원미구 오정구 016 부천시 면적 부천시 53.5㎢ 347,024세대 61,147개소 806,607명 297,595명 15,080명/㎢ 개발제한구역 15.92㎢ 1실 6국 47과 26팀 1,118명 본청 직속 사업소 광역동 의회 공무원 10동 50과 152팀 912명 28.21% 32.24% 64.48% 3보건소 4과 26팀 134명 8팀 43명 4사업소 18과 80팀 421명 2,628명 (정원) 인구 인구밀도 행정조직 사업체 및 종사자 학교 행정구역 개발제한구역 경기도 10,198.4㎢ 부천시 53.5㎢ 총 133개교 99,760명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기타학교 대학교 5.4% 4.3% 10 개동 718
개통 5,141 개반 017 부천시사 History of Bucheon 1 연혁 제1장 1.1. 근대 이전의 부천 020 1.2. 근·현대의 부천 025 1.3. 현재의 부천 033 1.1. 근대 이전의 부천 부천시의 연혁을 살펴보려면 한강유역의 자연환경과 고고학, 역사학 등과 연계해 각 시대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천(富川)이라는 지명은 1914년 3월 1일 부평군 일원과 인천부 및 강화군과 남양군의 일부를 통 합하면서 처음 등장하였다. 이름의 유래는 부평의 부 (富)와 인천의 천(川)을 취한 것으로 , 이 때부터 부천은 행 정구역 명칭인 부천군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시기상으로 붙여진 명칭만을 따라 1914년부터 부천의 연혁을 정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천의 역사는 바로 이 지역을 기반으로 선사시 대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부천시의 영역을 중심으로 선사시대의 유 물·유적과 역사시대의 여러 자료들을 토대로 행정구역 의 연혁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부천에는 언제부터 사 람이 살기 시작했을까? 1988년에 발간된 『부천시사』는 부천의 연혁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우리 고장 부천(富川)은
삼한시대(三韓時代) 마한(馬 韓) 54국(國)중 1국에 속한 이후 고구려(高句麗)의 주 부토군(主夫吐郡), 통일신라 때 장제(長堤)라 하였다. 고려 초에 수주(樹州)로 고쳤고, 안남도호부(安南都護 府),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를 거쳐, 충렬왕 때는 길 주목(吉州牧)으로 승격하였다. 충선왕2년(1310) 여러 목을 없앨 때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가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부평도호부에 속하여 발전해 오다가…1914 년 부천군이 탄생한 이후 복숭아 향기 그윽한 복사골 로 전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1 1988년 『부천시사』는 부천군 탄생 이전의 부천지역, 즉 부평의 역사를 대체로 고구려시대(高句麗時代) 때부터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시대 이전의 역사도 부천 이 위치한 한강유역의 역사적 추이로 미루어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유 물 및 학술연구를 통해 부천의 연혁은 선사시대까지 거 슬러 올라간다. 1.1.1. 선사시대의 부천 1995년 여름 홍수가 난 후 부천시 오정구 고강본동과 작동 뒷산 일대에서 마제석기 등이 주민들에 의해 발견 되었고, 이듬해부터 고강동과 작동 지역에서 7차례의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것이
현재 고강동 선사 유 적이다. 도시화가 상당히 진행된 부천에 대규모 청동기 시대 취락유적지가 남아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 지 못한 상황에서 발견된 고강동 선사유적은 고고학적 성과인 동시에 부천의 역사를 청동기 시대까지 끌어 올 리는 쾌거를 올렸다. 특히 청동기시대 전기-중기의 수 혈주거로 구성된 마을과 함께 원형점토대토기문화 시 고강동 선사유적 우휴모탁국 부평도호부 부천 시 승격 50년 고강동-작동유적 항공사진 1 부천시사편찬위원회(1988), 『부천시사』 , 경인일보사, 발간사. 020 1. 총설 기에 해당하는 후기의 의례용 환구(環溝)가 확인된 고강 동 유적은 고고학계에서 그 가치를 높게 인정받고 있 다. 환구유적의 등장 시기는 청원 대율리 유적의 환호 가 등장하는 시기와 비슷한 기원전 13~12세기로 볼 수 있다.2 부천에서 구석기시대나 신석기시대 유적이 아직 까지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월동유적과 범박동 유적에서 구석기문화층인 고토양층이 확인된 바 있고, 고강동 선사유적의 7차 발굴조사에서 다각면원구 등의 구석기가 수습된 것으로 보아 구석기시대에 사람이 살 았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범박동 유적 발굴조사 당시 빗살무늬토기편이 수습된 바
있어 그곳에 신석기 시대 취락 또는 주거지 등의 생활유적이 있었음을 유추 해 볼 수 있다. 한강 하류의 신석기시대 유적이 해안가 혹은 강변 충적지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 점으로 미 루어 볼 때, 한강 본류와 지류 하천 충적지가 발달한 부 천시 지역 또한 대·소규모의 취락과 주거유적이 다수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3 1.1.2. 고대의 부천 (삼한~통일신라) 삼한시기 부평도호부의 영역은 마한(馬韓)의 54국 중 우 휴모탁국(優休牟涿國)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 휴모탁국은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 에 보이는 마한 50여 소국 중 하나이다. 우휴모탁국은 마한연맹체의 일원로 맹주국과 여러 가지 형태의 결속 관계를 성립한 채, 토착적인 세력기반을 유지하면서 독 립적인 성장을 지속하다가 백제에 흡수된 것으로 보 인다. 부천지역은 처음 백제의 영역에 속하였으나, 고구 려 장수왕 63년(475) 9월 고구려가 백제를 침공하여 도 읍인 한성(漢城)을 함락시키고 한강유역을 편입했을 때, 부천지역은 주부토군(主夫吐郡)에 편성되었다.4 그 이후 한강유역을 두고 벌어진 삼국의 각축전을 거쳐 신라의 영토로 흡수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인 경덕왕 16년(757년)에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주부토군은 장제 군(長堤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장제는 고구려 때의 명 칭인 주부토(主夫吐)를 한자화한 것으로 한강 하류에 속 하는 이 지역의 형세를 반영하여 긴 제방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1.1.3. 고려시대의 부천 고려 태조 23년(940)에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장제를 수주(樹州)로 고치고 수안현(守安縣), 김포현(金浦縣), 동성현 (童城縣) , 통진현(通津縣) 등 4개 현을 영현(領縣)으로 하였 다. 성종 14년(995)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목종(穆宗) 8년(1005)에 이를 폐지하였으며, 현종 9년(1018)에 지주 사(知州事)로 고쳤다. 의종 4년(1150) 수주에 안남도호부가 설치되었다.5 안남도호부의 안남(安南)은 지명이라기보 다는 도호부의 이름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 경주(慶州) 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 해주(海州)에 안서도호부(安西都 護府) , 전주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 안주(安州)에 안북도 호부(安北都護府) 등 네 곳의 도호부를 두었다가 얼마 후 경주와 전주의 것을 없앴다. 그 뒤 등주(登州)에 안변도 호부(安邊都護府), 수주(樹州)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
안동 (安東)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새로 설치하였다 . 이 때 안남도호부에는 금천(衿川)·동성(童城)·통진(通津)·공암(孔 巖) ·김포(金浦) ·수안(守安)을 영현(領縣 )으로 하였다 . 안남 (安南)은 고려의 서울인 개경(開京)의 남쪽을 안정시킨다 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안남도호부는 고종 2년(1215)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 로 바뀌었다. 계양도호부의 계양(桂陽)은 계양산(桂陽山)에 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 輿地勝覽)』의 ‘계양산(桂陽山)은 부에서 북쪽으로 2리에 있 다. 진산(鎭山)으로 달리 안남산(安南山)이라고 불렸다.’는 설명을 통해 이를 추측할 수 있다. 2 한양대학교 박물관· 문화인류학과(1996-2005), 『고강동 선사유적 발굴조사 (1-7차) 보고서』, 부천시. 3 고려문화재연구원(2009), 『부천 여월동유적–부천 여월 택지개발지구 문화유적 발굴조사』; 기호문화재연구원(2021), 『부천 범박·계수동유적– 계수·범박 구역 주택재개발 사업부지내유적』; 한울문화재연구원(2011), 『부천 범박동유적 –부천 범박 국민임대주택단지 문화재발굴조사-』; 부천문화원(2022), 『고대 역사속의
부천과 우휴모탁국 학술대회』, 등의 자료를 참고하여 요약하였다. 4 이하 역사서는 국사편찬위 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인용하였다. 5 고려에서 안남도호부가 설 치된 것은 수주가 처음이 아 니다. 처음에는 고려 태조19 년(936)에 후백제(後百濟) 의 신검(神劍)을 토평(討平) 으로 한 뒤 전주(全州)에 안 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설 치하였고, 현종(顯宗) 9년 (1018년)에 안남대도호부(安 南大都護府)로 승격하였다 가 같은 왕 13년(1022년)에 전주목(全州牧)으로 개칭하 였다. 이후 안남도호부는 고 부와 영암 등으로 이전하였 다가 1150년에 수주로 옮겨 온 것이다. 『삼국지』 「위서」 권30 동이전에 표기되어 있는 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장. 연혁 021 니, 조(趙)·유(柳)·윤(尹)이다. 없어진 황어향(黃魚鄕, 고려 때 향(鄕)·소(所)·부곡(部曲)의 향)의 망성(亡姓) 이 1이니, 손(孫)이요, 망래성(亡來姓)이 1이니, 정(鄭)이 며, 속성(續姓)이 1이니, 김(金)이다.(지금은 향리(鄕吏) 가 되었다.)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되며, 기후 는 바다가 가까워서 일찍 더워진다. 간전(墾田)이 5천
2백 96결(結)이요,(논과 밭이 반반이다.) 토의(土宜)는 오곡과 조·팥·녹두·뽕나무·삼(마-麻)이며, 약재(藥 材)는 사자발쑥(썩 좋다.)·삿갓나물(조휴, 皂休)이다. 어량(魚梁)이 1소(所)이고,(참치·민어·조기·가오리 (가화어-加火魚)·미네굴(토화, 土花)·청해(靑蟹)가 난 다.) 염소(鹽所)가 7이다. 역(驛)이 1이니, 금수(金輸)요, 봉화가 1곳이니, 싸리곶이(축곶-[杻串]로서, 부(府) 서 쪽에 있다.(남쪽으로 인천(仁川) 성산(城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김포(金浦) 백석산(白石山)에 응한다.) 관할 은 도호부(都護府)가 1이니, 강화(江華)요, 군(郡)이 2이 니, 인천(仁川)·해풍(海豐)이며, 현(縣)이 4이니, 김포 (金浦)·교동(喬桐)·양천(陽川)·통진(通津)이다.’6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제9권 부평도호부 에 그 영역을 ‘동쪽으로 금천현(衿川縣) 경계까지 34리, 양천현(陽川縣) 경계까지 15리, 남쪽으로 안산군(安山郡) 경 계까지 48리, 인천부(仁川府) 경계까지 15리, 서쪽으로 큰 바다까지 14리, 북쪽으로 김포현(金浦縣) 경계까지 17 리, 통진현(通津縣) 경계까지 36리, 서울까지 55리이다.’7 라는 서술로
미루어, 현재 부천시 영역의 대부분이 바 로 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