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컨시립중앙도서관 0098825 ^부 현 서 사 편 한 위 원 회 지교로 보는 부천 纖 j t . 置 3 m i P1 富 川 市 发 지*료로 보는 부천 ^천시립중앙도서관동록 . 38825 2002. 9:25" ^ 부현八1사편한위원호I 일러두기 1. 자료집의 구성 1) 이자료집은기본적으로본책의 집필자료로삼기 위해 실시한광범한문헌 및현장조사를통해 얻 어진자료들을모은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수록된자료들중 지도편은내용특성상해당분야의 전 문가에게 집필의뢰하여 작성한것이며, 일부자료의 경우는추가로뒤늦게 조사되어 본책관련 부 분에 언급되지 못한 것도 있다. 시기적으로는주로 전근대 부천지역 관련자료들이 여기에 수록되 었는데, 문헌조사시에는부천 현대사에 기본자료가 되는신문자료와시민사회운동사관련자료도 정리되었지만부득이한사정으로여기에수록하지 못하게 되었음을밝혀둔다. 2) 자료집은제1편지도와제2편문헌 및금석문그리고부록으로구성되어 있다. • 지도편에서는우리나라고지도 연구현황,고지도속의부천지역 그리고근현대 부천지도의 내용 을자세히 서술하였다. • 문헌 및금석문편에서는 가내 소장문헌, 금석문,행장류,지방사자료[邑誌] , 한말〜일제강점기 신문기사등을사진과함께수록하였다. •
부록에는연표로본부천과부천지역사연구현황을수록하였다. 2. 수록 범위와 서술체계 1) 가내 소장문헌은 소장자가 제공한문헌자료 모두를 대상으로 자료해제와함께 목록을 소개하였 다. 여기에는문헌조사와마을지 집필을위한조사시에 모은작동의 여흥 민씨가 . 청주한씨가 ■ 해주정씨가등 3개가문과삼정동 _ 내동밀양박씨가소장문헌그리고부천문화원소장덕수이 씨가문헌을수록하였다. 2) 금석문은부천에 소재하는비문중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판단되는 변종인신도비, 한언묘표, 한 준 신도비,민승묘비, 귀인풍양조씨 묘표 등 5개를탁본하고 이를원문 • 번역문과함께 수록하 였다. 3) 행장류는부천의 인물사자료로손변 열전,황인점 행장, 화유옹주유사, 황기옥유사등의 원문과 번역문(또 는 현대어역)을수록하였다. 4) 지방사자료는부천의 역사를서술하는데 사용될 기본적인자료인읍지(邑認 중에서 대표적인 r여 지도서』의 「부평도호부」와 「경기읍지』의 「부평부읍지」의내용을번역하고원문을영인하여수록하 였다. 5) 한말〜일제강점기 신문기사는 이시기에 발행된 신문인 r한성순보」,r독립신문」,「황성신문」, 『대 한매일신보」,「동아일보_! 등에 있는부천지역관련기사내용을축약하여 수록하였다. 6) 부록의 연표로본부천은부천의
역사를연표로정리한것으로,시승격 이전까지는사건이나사실 의 발생 순으로, 시승격 이후부터는 정치 • 행정, 경제, 사회 • 복지, 문화. 교육• 예술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그리고 부천지역사 연구 현황은 1999년까지의 지역사관련문헌을단행본, 석 • 박사 학위논문, 발굴보고서, 학술지 • 잡지기사로나누어수록하였다. 5 부 천 시 사 자료로 보는 부천 제 I 편 지 도 제1장 우리 나라 고지도 연구 현황 • 3 제1절 고지도의 개념 . 3 제2절 회화식 군현지도의 종류와 현황 • 5 1. 읍지의 부도로서의 군현지도-5 2. 18세기 군현지도집 편찬 • 7 3. 1872년지방지도 편찬-7 제3절 기호식 군현지도의 편찬 • 8 1. 비변사의 도별 군현지도집 -8 2. 신경준의『여지 ^와 방격법에 의한 군현지도들 • 9 제4절 조선전도의 발달 . 10 제2장 고지도 속의 부천지역 . 11 제 1절 전국지도 중의 부평지역 • 11 1. 계양산(桂陽山) 자락의 전 국토 안에서의 위상 • 11 2. 관할지역 . 17 3. 도로망과 육상교통시설 ■ 18 4. 인접 군현과 연결되는 주요 간선도로 • 19 제2절 회화식 군현지도 . 23 1. 회화식 군현지도의 특징 • 23 2.
읍치의 부도로서의 부평지도 • 2크 1) r여지도서(輿地圖書)j 의 「부평부지도(富平府地圖)」■ 23 2) r경기지(京幾誌)j 의 「부평지도」■ 27 3) 1■경기읍지(京幾邑誌)j 의 「부평지도」• 29 4) 1872년 「부평지도」. 31 5 )『기전읍지(幾甸邑誌)」의 「부평지도」• 32 6) r부평군읍지j 의 「부평지도」• 34 7) r부평부읍지j 의 「부평지도」■ 34 3. 회화식 군현지도집의 부평지도 . 37 1) (■해동지도j 의 「부평지도」• 37 2 )「광여도擴輿圖)j 의 「부평지도」• 39 저13절 기호식 부평지도 ' 41 제 3장 근 현 대 부 천 지 도 .45 제 1절 한말 • 일제강점기의 지도제작 • 45 1. 한국인에 의해 간행된 경위도를 가진 최초의 조선전도 • 45 2. 일본 육군참모국의「조선전도」• 47 3. 측량에 의한 지도제작 ■ 47 제2절 근현대 부천지도 해설 . 49 1. 1916〜 1918년경의 부평지역 • 50 1)「김포(金浦)」• 50 2 )「군포장(軍浦場)」■ 54 3 )「경성(京 棚 」• 57 2. 1925〜 1926년의 부천지도 . 60 1)「양천(陽川)」• 60 2 )「소사(素砂)」• 62 3. 1927년
경인지역 지도 • 63 4. 일본인이 그린 부천시가도 • 65 제2편 문현 및 금석문 제1장 가내 소장문헌 69 제 1 절 작동 여흥 민씨가 소장 문헌 ' 71 1. 자료 소개와 가계-71 2. 자료 해제 • 72 제2절 작동 청주 한씨가 소장 문헌 • 89 1. 자료 소개와 가계 . 89 2. 자료 해제 • 90 저13절 작동 해주정씨가 소장 문헌 • 95 1. 자료 소개와 가계 • 95 2. 자료 해제 ■ 96 제4절 삼정동 밀양 박씨가 소장 문헌 • 100 1. 자료 소개와 가계 . 100 2. 삼정동 소장 자료 해제 • 102 3. 내동 소장 자료 해제 . 104 제5절 부천문화원 소장 덕수 이씨가 문헌 . 114 1. 자료 소개와 가계 • 114 2. 자료 해제 • 116 제2장 금석문 • 127 제 1절 변종인 신도비 . 127 제2절 한언 묘표 • 133 제3절 한준 신도비 . 137 제4절 민승 묘비 . 144 저15절 귀인 풍양 조씨 묘표 • 148 1. 손변 열전. 153 2. 황인점 행장 • 155 3. 화유옹주 유사 . 167 4. 황기옥 유사 ■ 175 제4장 지방사자료〔묻!志〕• 187 저U절 『여지도서』「부평도호부」- 188
저12절 『경기읍지』「부평부읍지」• 210 제5장 한말〜일제강점기 신문기사 • 267 1. 한성순보(1883〜 1884) -267 2. 독립신문(1896〜 1897) • 269 3. 황성신문(1898〜 1904) -272 4. 대한매일신보(1904〜 1910) ■ 280 5. 동아일보(1922〜 1940) -291 ■ ^••3 0 7 연표로 본 부천 ■ 307 부천지역사 연구 현황 • 479 편집후기 ᅵ 489 부천시사 주요목차 제1권 부천의 역사와 문화유산 제2권 부천의 자치와 경제 제3권 부천의 성장과 발전 제4권 부천시민의 생활 부 천 의 역 사 와 문 호 h유 산 제 1편 삶의 터전 제1장 연혁 제2장 자연환경 제3장풍수지리 제 2편 역사 제1장 선사시기 제2장 삼국 및 통일신라시기 제3장고려시기 제4장 조선시기 제5장 개항기(대한제국기) 제6장 일제강점기 제7장 해방 이후 2 부 천 의 자 치 와 경 제 제3편 인물과 문화재 제1장 성씨 제2장 전근대 인물 저13장근현대 인물 제4장 문화재 제4편 생활방식과 이야기 제1장 생활방식 제2장지명유래 북 역대 지방관 및 주요인물 일람 역대 부천지역 단체장 및 선출직 의원 일람 현장조사카드 저u 편 정치
저13장 사업소 행정 제1장 지방자치시대의 전개 제4장구 ■ 동행정 제2장 정치조직 저防장 지역행정의 특징과 전망 제3장 선거 제6장 각급 유관기관 제 2편 행정 제7장 정부투자기관 저 장 주요행정 현황 제3편 경제 저12장국 ■ 실 ■ 과행정 제1장 경제 개관 저12장 생명산업 제3장 공업 제4장 상업 • 금융 서비스업 제5장 지식정보.문화산업 제1편 도시환경 제1장도시개발 제2장 도시기반시설 제2편 국제교류 • 통상 제1장 국제교류 제2장국제통상 제3편 사회 제1장 인구구조의 변화 제2장 산업화와 계급 • 계층구조의 변화 제3장 도시화와 공간구조 • 공간기능의 변화 제4장 가족 • 친족제도 및 기층사회조직 제5장 사회복지 제4편 교육 제1장 부천지역 교육의 변천 제2장 부천의 교육행정과 학교 현황 제5편 문화• 예술 ■ 제1장예술개관 저12장문학 제3장 미술 제4장음악 제5장 국악 제6장 사진 제7장 연극 제8장 영화 제9장 무용 제10장 연예 제11장 만화 제12장 체육 제6편 매스미디어 제1장 언론 제2장 출판 저 V7 편 종교 제1장 종교개관 제2장 개신교 제3장 천주교 제4장 불교 제5장기타종교 4 부천시민의 생활 저11편 생활환경 제 1장
시민의식 제2장 사회문제 제2편 시민사회운동 제1장 부천 시민사회운동의 어제와 오늘 제2장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의 사회운동 一부천지역의 새마을운동제3장 1980년대 시민사회운동과 연대기구 제4장 노 동 • 청년. 학생운동 제5장 문화 • 교육운동 제6장 주거주민• 생활협동조합• 환경운동 제7장 여성운동 제8장 종교운동 제3편 시민의 삶 제1장 가족생활-민경흥 • 정해춘 가족이야기저12장 교육생활 제3장 노동조합생활 제4장 마을지 I - 구도시제5장 마을지 I -신도시 - 편찬위원회 위 원 장 강희대 재단법인부천육영재단 이사장 감수위원 김^ ^ 서울대 사범대 역사교육과교수 자문교수 이범직 건국대 인문학부사학전공 교수 편찬위원 강정순 한국 걸스카웃경기남부연맹 부연맹장 송승영 부천문화원 원장 우재극 부천시의회 의원 이병기 유한대 교양과교수 장경내 한국예총부천지부고문 상임위원 정학수(전임 김광묵) 연 구 원 방기철 건국대 박사과정 간 사 강덕면 문화예술과장(전임 임형택 ■ 임성운 ᅵ송옥자) 서 기 금학수 문화관광팀장(전임 유광호 ■' 신경동 • 허모) 전 산 원 김나영(전임 염옥자) 편집진 편 집 ■교정 총괄 정학수 • 방기철 편집위원 강희대 •' 이범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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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중동신문기자 배기동 한양대 교수 정^ ^ 건국대 박사과정 수료 배우성 서울시립대 교수 조관제 부천만화정보센터 소장 백선기 부천연합 의장 조명래 단국대 교수 백수현 부천문화원 사무국장 조윤성 한국국악협회 부전지부 지부장 변^•흠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조현연 가톨릭대 교수 변호광 건국대 교수 주 혁 한양대 강사 서무송 전 아주대 교수 차문석 성균관대 강사 성기정 건국대 석사과정 수료 차선혜 경희대 강사 소현숙 한양대 박사과정 채응석 가톨릭대 교수 송우경 서울시 정개발연구원 연구원 천경화 부천대 교수 신성식 21세기생협연대 사무총장 최병택 서울대 박사과정 신승철 경기도향토사연구협 의회 회원 최승철 단국대 강사 신종철 부천경실련 집행부위원장 최영묵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신철영 경실련 사무총장 최영미 부천여 성노동자회 정책실장 심우섭 한국예총 부천지부 지부장 최운식 이화여대 교수 오은령 한국무용협회 부천지부 지부장 최원석 성신여대 강사 오환일 유한대 교수 최형수 서울역사박물관 학예 연구사 윤봉구 한국연극협회 부천지부 명예회장 ^■상도 건국대 교수 이동헌 한양대 석사과정 수료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이범석 전 복^많문화센터 문화사업본부장 허재영 서울대 강사
이범직 건국대 교수 허홍범 경희대 강사 이상덕 한국예총 부천지부 상임고문 홍갑표 부천스포피 아 부관장 이상록 한양대 박사과정 홍영의 부천대 강사 이시재 가톨릭대 교수 홍홍표 부천상공회의소 사무국장 이용기 서올대 강사 황병주 한양대 강사 이용우 교육평론가 제 I 편 지도 제 1장 우리나라고지도 연구현황 제2장 고지도속의 부천지역 제3장 근현대 부천지도 제1장 우리 나라 고지도 연구 현황 제1절고지도의 개념 고지도는 근대적 방식에 의해 제작된 지도와는 구별되는 전통시대의 지도를 말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고지도 제작과 근대지도 제작의 분기점은 1900년 혹은 1910년대로서,이 시기에 와서야 비로소 근대적 측량에 의해 지도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한국 고지도에 대한 연구는 일 제강점기에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본 지도학사를 정리할목적에서 진 행된 그들의 연구는 원 형 「천하도庆下圖)」•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IIS R 國都之圖)」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등 특징적인 몇몇 사례에 집중되었다. 홍이섭(洪以變)의 『조선과학사』(1946)로 시작된 우리 학계에서의 연구는 1960년대에 전상 운(全相M)과 이병도(李丙壽)에 의해 계승되었다.
홍이섭과 전상운은 과학사의 일부로서 지도 제작 기술과 관련된 문제에 주목했다. 이병도는 정상기激尙駿 1678〜1752)와 그 의 「동국지 도(東國地圖)」가 가진 실학적 특징을 지적함으로써「대동여지도( * 東輿地圖)」로 이어지는 한 국 고지도의 발달과정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1960년대의 연구 는 고지도의 전체적인 현황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의 것이어서 본격적인 단계로 접어들지 못하 고 있었다. 이찬(李® 의 연구는 고지도를 지리학적 안목과 시각에 의해 정리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 다. 이찬은 1968년에『한국지리학사』를 서술한 이후 1977년에는『한국고지도』를, 1991년에는 1980년대 이래의 연구성과를 보완하여『한국의 고지도』를 각각 간행했다. 이를 통해 여말선 초 이회(李蒼)의 「팔도지도(A il地圖)」로부터『동국여지승람』의 「동람도(纖 圖 )」와 정상기 가 문 의 「동국지도」를 거쳐 김정호의「대동여지도」에 이르기까지의 조선전도. 도지도•군현지 도의 발달과정 그리고 원형「천하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곤여만국전도」등의 내용과 특징 등이 정리됨으로써 한국 고지도 발달사가 체계화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분야별 로
더욱 세분된 심층적인 연구들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지리학적 시야에 의해 포괄되는 많은 연구성과들은 개별 지도들을 편 년하고 그 계보를 밝힘으로써 한국 고지도 발달사를 시기 구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고지도는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검토를 필요로 하고 있다. 기존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중시되지 못했던 부분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사상사적 • 문화사적 관점으로부터의 접근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존 연구들 은 동아시아지도를 포함한 외국지도나 세계지도로부터 조선시기의 지리적 시야의 확대를 확 인했고,우리 나라 지도를 통해 국토의 모습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얼마나 사실에 가깝게 묘사 될 수 있었는가를 밝혀냈다. 그러나 객관세계에 대한 정보와는 별개로 독자적인 천하관을 형 성하고 있었던 문화적 중화관의 의의에 주목하지 못했고,조선지도에 반영된 국토에 대한 주 관적 태도의 의미를 올바로 평가하지 못했다. 고지도는 국토공간의 사실적 표현이라는 본질적인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사실성에 대한 인식의 정도’ 외에 당대인들의 가치관 • 사상 • 공간에 대한 주관적 인식태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중국이나 일본에서의 고지도 연구도 과학성 과 합리성에 초점이 두어져 왔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지도를 땅의 합리적 묘사라는 측면에 서 이해해 온 전통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강하지 않았다. 이는 지리적 사고나 세계에 대한 시야가 넓지 못했다기보다는 한국 고지도에 반영된 인문적 관점이 상대적으로 강 하게 작용하고 있었음을뜻한다. 둘째,위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지만 개별 지도자료의 성격에 대한 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지 지 못했다. 개별 지도에 대해 그 제작 시기를 추정하고 계보를 정리하는 일이 중요하게 다루어 져 왔지만,지도 편찬의 전후 맥락이 고려되지 못했고 문헌자료와의 비교 • 검토가 충분치 못 했다. 따라서 지도가 누구에 의해 어떠한 목적하에 제작 • 활용되었으며, 그것에 담겨 있는 문 제의식을 어떻게 해석해 낼 것인가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중시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지도가 당대의 사회현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설 명되어야 할 것이다. 고지도가 역사 연구의 일환으로써 검토되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 료의 영인출판 사례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서 적극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하겠다. 이러한
작 업이 선행된 뒤에 비로소 지명과 지역을 추정하는 작업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제2절 회화식 군현지도의 종류와 현황 1■ 읍지의 부도로서의 군현지도 전통시대의 지도는 지역 지방관이 개인 차원에서 제작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대부분의 경우 지도제작의 주체는 국가였으며 국가는 지도를 지역파악과 통치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국가의 군현지도 편찬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가 다수 확인되는 것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였 다. 국가는 변동하는 지역 현실을 시의적절하게 파악하기 위해 조선 전기에 편찬된『동국여지 승람』을 개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 작업은 1679년(숙종 5)에 숙종이 김석주(쇼I易胃 1634 ~1684)로 하여금『동국여지승람』을 개정하도록 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김석주가 정치적 격 변에 휘말리면서 지체되던 작업은 1699년(숙종 25)에 좌의정 최석정(崔錫i f 1646~1715)의 건의에 따라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700년(숙종 26) 3월경에는 각 군현의 읍지들이 대부분 중앙으로 수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석정의 정치적 부침과 함께 숙종대 『동국여지승람』의 개정작업은 결말을 보지 못했다. 『동국여지승람』개정 문제는
결국 영조대에 이르러『여지도서(輿地圖書)』라는 결실을 맺었 다. 『동국여지승람』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한 사람은 홍양한(洪良漢 1724〜1802)이었다. 그는 1757년(영조 33)에 『동국여지승람』이후로 전국적인 지리지와 지도 제작이 공식적으로 시도 된 적이 없었음을 논하고,우선 지리지 파악을 위해 홍문관의 주관하에 팔도에 지지를 올려보 내게 할 것을 청하여 허락받았다. 『여지도서』의 편찬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었다. 1757년 홍양한의 발의에 의해 군현지도가 첨부된 읍지가 각 군현에서 수합되기 시작했다 (戊寅本). 필사본과 인쇄본이 섞여 있는 각 지역의 무인본 읍지는 홍문관을 거치면서『여지도 서』라는 제목으로 왕에게 올려졌다. 그러나 홍문관에서는 1759년(영조 35)에 항목과 지침을 수정하여 재차 읍지를 편찬해 올리라는 관문을 내렸고,이 관문에 의해 각 군현에서는 지도와 함께 어람용 • 감영보관용 • 홍문관용의 3종류의 읍지를 작성했다. 홍문관에서는 각 군현으로 부터 올라온 어람용과 홍문관용의 두 종류 가운데 어람용을『여지도서』라는 이름으로 다시 책 으로 묶어서 왕에게 올렸다. 현재 전해지는『여지도서』는 1760년본에 가장 가까운 것이지만, 전국 모든 군현이
포괄된 완성된 책자로 만들어지지는 못했다. 불세출의 학자군주 정조도 자신의 통치 이념에 걸맞은 완성된 전국지리지를 필요로 하고 있 었다. 정조는 영조대의 관찬 백과전서인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를 개정하는 한편 새로 운 전국지리지 편찬을 시도했다. 일명『해동여지통재(海 東 輿 動 』라고 불리는『해동읍지 (海東邑誌)』가 그것이다. 『해동읍지』편찬작업은 1788년(정조 12)에 읍지를 올려보내도록 하 는 규장각의 지침이 전국 각 군현에 하달되면서 시작되었다. 정조는 1789년(정조 13)부터 규 장각의 신진기예들을 동원하여『해동읍지』편찬을 독려했다. 그 결과 1790년경에는 40책이, 1796년경에는 60책의『해동읍지』가 편찬될 수 있었다. 그러나 1800년(정조 24)에 정조가 급 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이 책은 끝내 완성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비록 완성되지는 못 했지만, 정조는『해동읍지』를 통 해 『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의 형식이 가진 장점들을 모 두 취합함과 동시에『삼보황도(三輔黃圖)』의 체제에 따름으로써 자신의 통치이념에 맞는 정리 된 전국지리지 편찬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18세기가 전국지리지 편찬이 추구된 시대였다면 19세기는 도별
지리지(도지) 편찬이 시도 된 시대였다. 경기도의 도지만 보더라도 1842〜1843년 3책의『경기지谅幾誌)』,18기년 6책 의 r경기읍지(京幾邑誌)』그리고 1894년 3책의『기전읍지(幾甸邑誌)』가 각각 편찬되었다. 『경기지』는 『여지도서』에 비해 시문 • 문장 • 인물 • 과거합격자 • 선생안 등 지역 내 인문적 요소가 강조된 반면 군현의 재정 기능에 대한 기록은 소략해진 특징을 가지고 있 다 .『경기읍 지』는 대원군 정권이 군사적인 목적하에서 지도와 지지 편찬을 시도한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었다. 신미양요로 인한 군사적 필요성 때문에 만들어진 이 읍지에는 군사적 • 재정적 내용이 상세하다. 『경기읍지』단계에서 읍지는 더 이상 인문지리서로서의 종합적 체제가 강조되지 않았다. 이 런 경향은 1894년에 편찬된『기전읍지』로 이어졌다. 읍 사례가 강조된『기전읍지』는 읍지의 성격이 지방재정 자료집으로 변화되어 갔음을 보여준다. 조선왕조 최후의 도지 편찬은 1899 년에 시도되었다. 1899년에 편찬된 도지는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그 일부를 이루었을 개별 읍지로서의『부평부읍지(富平府邑誌)』가 현재 규장각에 전한다. 조선 전기의『동국여지승람』을 개정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조선 후기 지리지 편찬은『여지도 서』와 『해동읍지』를 거쳐 19세기 도지 편찬으로 이어졌다. 주목할 사실은『동국여지승람』을 개정한 최초의 성과물인『여지도서』에서부터 읍지의 부도(附圖)로서 군현지도가 수록되기 시 작했다는 점이다. r여지도서』는 이런 관행을 만든 매우 중요한 저작인 셈이다. 『해동읍지』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여지도서』체제를 참고해 만들어진『해동읍지』역시 군현지도에 관한 한 『여지도서』의 전례를 따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19세기의 도별 지리지인『경기지』• 『경기읍지』• 『기전읍지』• 『부평부읍지』(1899) 등에서도 이런 경향은 일관되게 계승되었다. 『여지도서』이후 군현지도가 읍지의 부도로 들어가게 된 것은 국가의 지역 파악에 있어 중 요한 진전이었다. 그러나 읍지 속의 지도는 어디까지나 읍지에 부속된 간략한 도면일 뿐이어 서 지역의 공간적 파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읍지에 부속된 간략한 군현지 도와는 별도로, 지도를 중심에 두고 간략한 지지를 덧붙인 새로운 군현지도집(전국 • 도별)을 편찬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군현지도집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730년대부터였다. 조선 후기 국정의 중심에 있던 비변사는
이때 지역별 전담제인 팔도구관당상제를 활성화시켰고,그 과정에서 새로운 지 도집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회화식으로 그려진 비변사의 지도들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지도들을 원도로 활 용한 전국 군현지도집이 남아 있어서 그 윤곽을 짐작할 수 있다. 1750〜1751년(영조 26〜27) 경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해동지도(海東地圖)』가 그것이다. 홍문관에서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해동지도』는 지지의 부도로서 소략한 지도를 싣던 읍지와는 달리 지도를 중심에 두 고 간략한 주기(注記)를 첨가한, 명실상부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이 지도책자에는 조선전도 . 도별도 • 군현지도뿐만 아니라「천하도」. 「북경궁궐도(北京宮 闕圖」■「요계관방도(遼莉關防圖」• 「관 서 일 로 영 애 ( 關 西 一 등 을 비롯하여 당대까지 제 작되었던 각종 지도형태가 모두 망라되어 있다. 그러나『해동지도』의 자료들에는 책자가 편집 된 시점의 지역 상황이 시의적절하게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특히 8도의 도지도와 군현지도, 각종 설명문들은 서로 다른 시기적 내용을 담고 있어서 자료의 활용에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그러나 전국을 망라한 공시성을 갖추고 있으며,도로망이 비교적 상세히
기재되어 있는 이 지 도집은 현재 전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