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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저희가 알려지지 않아서 환자가 며칠
                동안 안 왔는데 이때 많이 힘들었죠. 다행히 저희 협회 회장님이 많이 노

                력하셔서 진료실도 옮기고 3~4일 지나면서 환자분들도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마지막에는 전체 폴리 클리닉에서 상위권일 만큼 정말 많이
                왔죠.



                    IOC에서 주관하는 올림픽 경기에서 처음으로 한의 진료가 들어갔는

                  데, 다음 올림픽에도 한의사들이 진료소를 할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
                  고 봐도 될까요?


              A    이제 가능성은 열렸는데, 저희가 한의사로 들어갔다기보단 침 치료가 허
                용된 사례를 만들었다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시안게임에서는 지
                리적으로 유리하고 비슷한 문화권이 많아서 좀 쉬웠는데, 동계 올림픽

                은 특히 북유럽 쪽이 많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이해시키기에 좀 어
                려웠다고 들었어요. 저희 학회 회장님이 오래전에 IOC 산하 메디컬 회

                의에 한의사로서 최초로 의무전문위원에 들어가셔서 오랜 기간 동안 지
                속적인 회의를 해서 얻어낸 결과라고 보시면 돼요. 갑자기 ‘자 모여라!’ 한

                게 아니고 굉장히 오랫동안 준비를 많이 해왔어요. 이제 침 치료가 허용
                된 사례가 만들어져서 다른 곳에서도 침 치료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

                된 거죠.



                  평창 올림픽에서의 경험을 한마디로 요약하신다면요?
              A    세 마디로 요약해볼게요. 초반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고통스러운 시
                간이었고요. 중반에는 점점 진료소가 안정돼가는 상황이 굉장히 뿌듯했

                어요. 후반에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게 너무 아쉬웠고요. 종합



              266                                       한의원 밖으로 나간 한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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