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인천대 문학상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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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어머니 가게에서 카운터를 보고 있으면
꼭 지팡이를 문 옆에 세워 두곤
소주 한 병을 사 가던 노인이 있었다
노인이 가게 문을 여는 그 순간부터 시간이 느리게 갔다
소리도 나지 않는 발걸음과 심하게 떨리는 손
그리고 겨우 꺼내든 천 원권 지폐 한 장, 동전 몇 개와
겨울철이면 꼭 코에 흐르고 있었던 노인의 콧물까지도
모든 것이 나의 시간마저 느리게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노인의 반경 오십 센티미터까지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손을 뻗어 일부로 깨트리지 않는 한 그랬다
노인의 가족은 모두 단골손님이었기에 그의 부고를 들을 수
있었다
오늘 길 가다 마주친 늙은 신사의 자전거 바퀴마저도
느리게 굴러가고 있었다 데굴데굴 데구루루 하고
소녀가 제 손가락만 한 달팽이 눈을 찌르고 까르르 웃었다
노인의 시간에 손을 뻗은 건 누구였을까
42 인천대 문학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