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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Ⅱ. 법에도 감정이 있는가?                                               면, 그래서 이기주의가 공정의 윤리에 의해
 법과 문학에 대한 단상
                                                                          겨우 억눌러지고 있다고 한다면, 기존의 사
               나는 학생들에게 <레미제라블> 전 5권(번역서 기준)을 꼼꼼히 읽어보라                    회의 틀 안에서 상품을 팔고 법률행위를 하
            고 권할 때가 있다. 이 책은 번역서 기준으로 3,000쪽에 달한다. 당신이 만약                 면서 동시에 사랑을 실천하는 길을 발견해
            법을 공부하는 이라면, 혹은 로스쿨 생이라면,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돌덩이                    내는 것은 과연 가능하냐고. 프롬은 나름의
            같이 무겁고 두껍고 단단한 법서를 읽기도 힘든데, 이런 걸 왜 읽어야 하나?                    답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그는 사랑을 매
            뮤지컬 영화 한 편 보면 될 것을. 그건 맞는 얘기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법 해                 우 개인주의적인 주변적 현상이 아니라 사
            석을 머리로만 할 수 있는가? 법은 이성의 질서이기도 하지만 뭇 생명의 삶과                    회적 현상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사
            고통에 공감하는 정념의 질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소설을 읽음                     회구조의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
            으로써 더 열려있고, 인간적이며, 환경과 생태의 변화에 마음 아파하는 법률                     았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
            가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만, 자본주의 원리가 사랑의 원리와 양립하
               물론 소설을 읽는다고 당장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 체험                   지 않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본주의 그 자
            하지 않고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도 얼마나 많은가. 그럴 때는 직접 몸으로                    체는 복잡하고, 그 구조는 끊임없이 변한
 Ⅰ. 법과 문학이란?  살아보는 수밖에 없지만, 누구나가 난민이 될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에리히                  다. 그 안에서 어떤 이들은 이 체제에 동조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읽고 난민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지극                      (同調)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나
 나는 별다른 취미활동을 하지 않는다. 남는 시간에 소설 한 줄 읽을   한 마음으로 추체험해본 판사라면 ‘난민인정 거부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판단  가기도 한다. 소설을 읽으며, 특히 우리가
 수 있으면 행복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때부턴가 법과 문학에 자연스럽  도 다르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법률가가 굳이 시간을 내서 소  ‘고전’이라 부르는 소설을 읽으며 나는 그런
 게 관심이 갔다.   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 법에도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판사들                    이단자들의 모습 혹은 반면교사의 사례를
 법과 문학은 ‘문학의 법’(=법적 규율 대상으로서의 문학, Law   보라고 <개선문>이 법원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이다.   자주 만나게 된다. 고전이 왜 달리 고전이
 건국 대학교   of Literature), ‘문학으로서의 법’(Law as Literature), ‘문학 속의           겠는가!
 법학전문대학원
 법’(Law in Literature)을 다룬다.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안 그레이의   Ⅲ. 공정과 사랑
 초상>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책이란 존                                    Ⅳ. 정치적 계몽주의 프로젝트로서의 고전
 이계수 교수
 재하지 않는다. 책은 잘 썼든지, 잘못 썼든지 둘 중 하나다. 단지 그뿐이  이제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에 작용하여 변화를 일으키는 그 무언가를 무  읽기
 다.” 그러나 작가의 도덕적 세계관이나 예술표현을 (형)법으로 재단하  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한다. 지난 몇 년 ‘우리’를 사로잡은 말, 공
 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것의 온당함을 따지는 일을 ‘문학의 법’이 담  정만 해도 그렇다. 이 말이 가진 힘은 공정의 이성에도 있고, 공정의 감성에도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르네상스, 즉 고
 당한다. ‘문학의 법’에서는 문학의 도덕성과 비도덕성, 검열, 포르노그  있다. 특히 후자를 잘 요리한 이들은 정동(情動, Affect)의 정치에서 승리했  대의 재생은 1500년경의 이탈리아에서 시
 래피의 문제, 여러 형태의 출판물 범죄(모욕죄나 명예훼손죄, 선동죄,   다. 그러나 온갖 소란이 지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공정이란 무엇인  작한다. 그러나 사실 근대 유럽에서 고대의
 혐오범죄)를 다루는 헌법과 형법 외에 저자의 권리, 지식재산권을 다루  가’를 물어야 한다.                      정치적 사회적 재생은 18세기에 일어난 현
 는 민법적 논의를 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우리가 말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종              상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유럽 정치
 와일드는 저 글을 쓰고 얼마 안 가 ‘도덕 재판’을 받고, 영어(囹圄)의   교적 이상을 수없이 되풀이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관계는 기껏해야 공정의 원  사>를 쓴 아르투어 로젠베르크는 부르주아
 몸이 되었다. 와일드 재판은 그때나 지금이나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도  리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공정은 상품과 용역의 교환에서, 그리  사회가 성장하면서 고대의 정치적 사회적
 덕적 엄숙주의를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한다(‘문학 속의 법’). 또한 오스  고 감정의 교환에서 사기와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적   형태(예컨대 공화정)가 현실에서 ‘재생’될
 카가 법정에서 ‘문학(의 문장)으로 법률(문장)의 허구와 위선’을 반박하  재화에서나 사랑에서나 ‘받은 만큼 준다’는 것이 자본주의사회의 보편적인 윤  수 있었다고 말한다. 18세기의 지도적 민중
 는 장면은 ‘문학으로서의 법’의 대상이 된다.   리적 격언이다. 공정 윤리의 발달은 자본주의사회의 특별한 윤리적 공헌이다.    적 정치가 및 국가철학자는 당대의 혁명운
 뭐 어찌 되었건 내가 문학(주로 소설)을 읽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이때 사랑 또는 우정은 공정을 판단하는 요소가 아니다.   동과 고대의 정치사회 형태 사이의 유사성
 일이 법의 근본 문제들, 법 해석의 가능성과 한계를 새롭게 사유하고 점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현대 사회경제조직 전체가 자신의 이익  을 발견했다. 특히 학생시절 고대의 문헌을
 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만을 추구하는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고, 자기중심주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배운 사람들에게 고대는 오늘날보다 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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