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5 - 꿈과 끼를 찾아떠나는 문화유산 여행
P. 165

이런 면이 있구나





                    다산 정약용의 이상이 담긴 강진의 다산초당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8세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랍니다. 부친에게서 학문을 배워 22세 때 과거에 합격한 후
                    정조의 신임을 받아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탐관오리의 부패상을 낱낱이 파헤치기도 하고 수원성을 건설하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하지만 정약용은 천주교를 탄압한 신유박해(1801년)로 인해 멀리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어요. 유배지에서 머무를
                    곳이 없어 옮겨 다니다가 마침내 귤동에 다산초당을 지었어요. 이 집에서 정약용은 10여 년을 지내면서 방대한 학문 연구에
                    힘을 기울였어요. 정약용은 다산초당에 천여 권의 책을 쌓아 놓고 읽으면서 수백 권의 저서를 저술하였어요.

                     정약용에 의하면 자신의 저서가 문집 267권을 포함하여 모두 499권에 이른다고 이야기했어요. 그가 지은 대표적인
                    저서를 살펴보면 대개 시대를 개혁하고 백성들의 삶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강진의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이상 세계를 집필한 한국사에 길이 남을 서재였어요.
                     시대와 백성들의 삶을 바꾸고자 했던 정약용의 꿈을 다산초당에서 만날 수 있었어요. 여러분이 머무는 작은 방은 어떠한
                    이상과 꿈으로 채워지고 있나요? 그리고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나요?


















                                                                            정약용이 이상 세계를 저술 활동으로 펼쳤던
                                                                            다산초당의 현판. 현재의 다산초당은 1957년
                                                                               다산유적보존회에서 재건한 것이다.
                                           다산초당











                               《흠흠신서》                         《경세유표》                         《목민심서》
                          형벌 제도의 개혁을 주장했다.             토지 제도 개혁과 민생 안정, 기술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정약용의 저서.
                                                        발달과 상공업 진흥을 주장했다.          목민관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고 있으며,
                                                                                   관의 입장이 아닌 민의 입장에서 저술하였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165
   160   161   162   163   164   165   166   167   168   169   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