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1 - 꿈과 끼를 찾아떠나는 문화유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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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면이 있구나




                      조선 시대 나무꾼 노비 정초부


                        우리 문화재 속에는 숨은 여러 가지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어요. 임금이 신하를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을 보여 주는
                      문화재도 있고, 하잘것없는 노비의 재주를 아끼는 주인의 따뜻한 사랑 덕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시집도 있어요.
                        조선 정조 시대 노비인 정초부(鄭樵夫, 1714∼1789)는 주인 여춘영의 따뜻한 배려로 노비였음에도 글을 배워 한시
                      작가가 될 수 있었어요. 그가 지은 시 한 수를 감상해 볼까요?



                        시인의 남은 생애는 늙은 나무꾼 신세
                                翰墨餘生老採樵
                                한흑여생노채초
                        지게 위에 쏟아지는 가을빛 쓸쓸하여라.
                                滿肩秋色動蕭蕭
                                만견추색동소소
                        동풍이 장안 대로로 이 몸을 떠다밀어
                                東風吹送長安路
                                동풍취송장안로
                        새벽녘에 걸어가네 동대문 제이교를
                                曉踏靑門第二橋
                                효답청문제이교
                                   <안대회 옮김>
                                                             그의 신분은 천하기 그지없는 나무꾼 노비였어요. 그런 그가
                                                           한시집  《초부유고(樵夫遺稿)》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주인인 여춘영이 그에게 글을 배우게 해 주었기 때문이에요.
                                                           너무도 글이 배우고 싶었던 정초부는 어린 시절 나무를 한 짐 해 놓은
                                                           후에는 주인 자제들의 어깨 너머로 글을 배웠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 여춘영은 그에게 한시를 지을 수 있을 정도로 글을 가르쳤지요.
                                                           여춘영은 노비인 그를 벗으로 삼았고 90여 수의 한시가 들어 있는
                                                           시집 《초부유고》를 간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았어요.
                            《초부유고》 필사본(고려대학교 도서관)          그뿐 아니라 여춘영은 노비 문서를 불태워 그의 신분을 해방시켜

                                                           주었지요. 또 정초부가 1789년 76세를 일기로 눈을 감자 손수 그의
                      장례를 치렀고, 정초부를 추억하는 만시(輓詩) 12수를 지어 자신의 문집에 싣기까지 했답니다.
                        신분을 뛰어넘어 여춘영이 정초부를 아끼고 믿었던 마음은 결국 우리에게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남아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 믿고 아끼는 마음과 사랑이 담긴 마음들은 단지 개인적인 감정들일까요? 또한 그러한 마음들이
                      우리 사회에는 어떠한 모습들로 나타나야 할까요? 서로를 믿고 아끼는 마음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참고: 안대회, <18세기의 노비 시인 정초부>, <<역사비평>> 통권94호(2011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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