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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보건진료소-떼무리바다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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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머리말 떼무리 바다이야기 소무의도는 대무의도와 인도교로 연결되어 있는 작은 섬입니다. 떼무리라고도 불립니다. 떼무리는 떨어져 나간 섬이라는 뜻이 있답니다. 무의라는 지명은 옛날 어부들이 짙은 안개를 뚫고 근처를 지나가다 섬을 바라보면 선녀가 춤추는 모습 같기도 하고 말을 탄 장군이 달려가는 모습같기도 하다 하여 유래된 이름입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어려운 상황에 불구하고 아름답고 정겨운 떼무리 마을 주민의 살아온 인생과 어촌마을의 이야기를 소박하나마 그림책으로 출판하는 결실을 맺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무의보건진료소 기획 무의보건진료소장 김동주 초판 1쇄 2021년 02월 05일 발행 글·그림 유병제, 김동주 발행처 (주) 작가의탄생 | 펴낸이 김용환 | 디자인 구혜리 | 기획 무의보건진료소 김동주 소장. 010-6510-8636 | 출판등록 제 406-2003-005호 | 주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 47길 90(숙명여대 창업센터) | 누 구 나 자 신 만 의 스 토 리 가 있 다 대표전화 1522-3864 | 전자우편 we@zaktan.com | © 작가의탄생 2021 ISBN 979-11-7047-851-5 | 홈페이지

www.zaktan.com | 누 구 나 자 신 만 의 스 토 리 가 있 다 Everyone has thei own stories Everyone has thei own stories Everyone has thei own stories 머리말 떼무리 바다이야기 소무의도는 대무의도와 인도교로 연결되어 있는 작은 섬입니다. 떼무리라고도 불립니다. 떼무리는 떨어져 나간 섬이라는 뜻이 있답니다. 무의라는 지명은 옛날 어부들이 짙은 안개를 뚫고 근처를 지나가다 섬을 바라보면 선녀가 춤추는 모습 같기도 하고 말을 탄 장군이 달려가는 모습같기도 하다 하여 유래된 이름입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어려운 상황에 불구하고 아름답고 정겨운 떼무리 마을 주민의 살아온 인생과 어촌마을의 이야기를 소박하나마 그림책으로 출판하는 결실을 맺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무의보건진료소 기획 무의보건진료소장 김동주 초판 1쇄 2021년 02월 05일 발행 글·그림 유병제, 김동주 발행처 (주) 작가의탄생 | 펴낸이 김용환 | 디자인 구혜리 | 기획 무의보건진료소 김동주 소장. 010-6510-8636 | 출판등록 제 406-2003-005호 | 주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 47길

90(숙명여대 창업센터) | 누 구 나 자 신 만 의 스 토 리 가 있 다 대표전화 1522-3864 | 전자우편 we@zaktan.com | © 작가의탄생 2021 ISBN 979-11-7047-851-5 | 홈페이지 www.zaktan.com | 누 구 나 자 신 만 의 스 토 리 가 있 다 Everyone has thei own stories Everyone has thei own stories Everyone has thei own stories 소무의도 마을소개 내고향은 소무의도 부처깨미(꾸미) 8 바닷가에서 노는게 제일 재미있어 18 몽여해수욕장 9 명아주 뜯기 20 몽여 10 김구선생 오신일 22 명사의 해변 11 사당 24 장군바위 12 가정을 꾸리다 26 당산과 안산 13 보리앙금으로 허기를 달래던 시절 28 서쪽마을과 동쪽마을 14 새마을 가꾸기 사업 30 소무의도 연도교 15 모예재 전설 32 소무의도 마을소개 내고향은 소무의도 부처깨미(꾸미) 8 바닷가에서 노는게 제일 재미있어 18 몽여해수욕장 9 명아주 뜯기 20 몽여 10 김구선생 오신일 22 명사의 해변 11 사당 24 장군바위 12 가정을 꾸리다 26 당산과 안산 13

보리앙금으로 허기를 달래던 시절 28 서쪽마을과 동쪽마을 14 새마을 가꾸기 사업 30 소무의도 연도교 15 모예재 전설 32 소무의도는 면적 1.22㎢의 작은 섬으로 대무의도와 함께 무의도라고 불렸습니다. 소무의도는 “떼무리”라고도 합니다. 조선 말기에 간행된 “조선지지자료”에 떼무리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어요. 300여 년 전 박동기 씨가 처음 딸 3명과 함께 들어와 섬을 개척한 후 기계 유씨 청년을 데릴사위로 삼으면서 유씨 집성촌이 형성되었고 소무의도 마을소개 지금은 주민 50여 명이 오순도순 정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새우를 많이 잡았고, 어선이 40여 척이 있을 정도로 부유했다고 합니다. 소무의도는 해안절벽과 기암괴석 등 자연경관이 뛰어난 바다의 보물 같은 섬이랍니다. 소무의도에서 바라보면 동쪽으로는 팔미도, 월미도, 인천대교, 송도국제도시가 보이구요. 서남쪽으로 영흥도, 자월도, 덕적도가, 북쪽으로는 강화도,인천국제공항이 보입니다. 맑은 날에는 서울 북한산이 보일 정도로 주변전망이 뛰어난 섬마을입니다. 우럭, 농어, 놀래미, 광어, 민어 등이 많이 잡혀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해요. 7 소무의도는 면적 1.22㎢의 작은 섬으로

대무의도와 함께 무의도라고 불렸습니다. 소무의도는 “떼무리”라고도 합니다. 조선 말기에 간행된 “조선지지자료”에 떼무리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어요. 300여 년 전 박동기 씨가 처음 딸 3명과 함께 들어와 섬을 개척한 후 기계 유씨 청년을 데릴사위로 삼으면서 유씨 집성촌이 형성되었고 소무의도 마을소개 지금은 주민 50여 명이 오순도순 정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새우를 많이 잡았고, 어선이 40여 척이 있을 정도로 부유했다고 합니다. 소무의도는 해안절벽과 기암괴석 등 자연경관이 뛰어난 바다의 보물 같은 섬이랍니다. 소무의도에서 바라보면 동쪽으로는 팔미도, 월미도, 인천대교, 송도국제도시가 보이구요. 서남쪽으로 영흥도, 자월도, 덕적도가, 북쪽으로는 강화도,인천국제공항이 보입니다. 맑은 날에는 서울 북한산이 보일 정도로 주변전망이 뛰어난 섬마을입니다. 우럭, 농어, 놀래미, 광어, 민어 등이 많이 잡혀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해요. 7 부처깨미 (꾸미) 몽여 해수욕장 모래와 하얀 굴껍질, 몽돌로 이루어진 주민들의 만선과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동쪽 마을의 작은 해수욕장입니다. 재물로 소를 잡아 풍어제를 지냈던 곳입니다. 물이 맑고 경관이 뛰어납니다.

소무의도의 모습이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전해지는데 이곳은 뱀의 머리 부분에 해당되지요. 혹은 부처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는설 도 있어요. 8 9 부처깨미 (꾸미) 몽여 해수욕장 모래와 하얀 굴껍질, 몽돌로 이루어진 주민들의 만선과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동쪽 마을의 작은 해수욕장입니다. 재물로 소를 잡아 풍어제를 지냈던 곳입니다. 물이 맑고 경관이 뛰어납니다. 소무의도의 모습이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전해지는데 이곳은 뱀의 머리 부분에 해당되지요. 혹은 부처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는설 도 있어요. 8 9 몽여 명사의 해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족들과 함께 쌍여로 나가는 길목이라는 뜻의 목여가 변해 휴양을 즐겼다고 하는 몽여라 불렸다고 해요. 한적하고 아늑한 작은 해변입니다. '쌍여' 라는 말은 '물밑에 있는 두 개의 바윗돌' 이라 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하루 2번 드러나는 두 개의 바윗돌을 말합니다. 10 11 몽여 명사의 해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족들과 함께 쌍여로 나가는 길목이라는 뜻의 목여가 변해 휴양을 즐겼다고 하는 몽여라 불렸다고 해요. 한적하고 아늑한 작은 해변입니다. '쌍여' 라는 말은

'물밑에 있는 두 개의 바윗돌' 이라 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하루 2번 드러나는 두 개의 바윗돌을 말합니다. 10 11 장군바위 당산과 안산 해적들이 소무의도의 이 바위를 보고 장군과 병사들로 착각해 침범하지 않아 섬을 구했다는 설화가 있는 바위입니다. 소무의도에는 당산과 안산 이라는 두 봉우리가 있습니다. 편안하게 등산하기 좋습니다. 12 13 장군바위 당산과 안산 해적들이 소무의도의 이 바위를 보고 장군과 병사들로 착각해 침범하지 않아 섬을 구했다는 설화가 있는 바위입니다. 소무의도에는 당산과 안산 이라는 두 봉우리가 있습니다. 편안하게 등산하기 좋습니다. 12 13 서쪽마을과 동쪽마을 소무의도 연도교 떼무리 선착장과 광명항 선착장을 이어주는 타원형 모양의 다리입니다. 경관이 수려하고 걷기에 좋습니다. 소무의도는 모예재를 사이에 두고 서쪽마을과 동쪽마을로 구분됩니다. 소소한 풍경이 아름답고 한적한 모예재 어촌마을의 풍경이 정겹습니다. 14 15 서쪽마을과 동쪽마을 소무의도 연도교 떼무리 선착장과 광명항 선착장을 이어주는 타원형 모양의 다리입니다. 경관이 수려하고 걷기에 좋습니다. 소무의도는 모예재를 사이에 두고 서쪽마을과 동쪽마을로

구분됩니다. 소소한 풍경이 아름답고 한적한 모예재 어촌마을의 풍경이 정겹습니다. 14 15 유병제 내 고향은 소무의도 9번지야 내고향은 소무의도 소무의도에서 이장도 하고 노인회장도 했었어. 나는 소무의도에서 나고 자랐지. 그림 그리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보건진료소장님과 같이 하니 할만했어. 그림책을 만들면서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책으로 낸다고 하니 감회가 새로워. 유병제 내 고향은 소무의도 9번지야 내고향은 소무의도 소무의도에서 이장도 하고 노인회장도 했었어. 나는 소무의도에서 나고 자랐지. 그림 그리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보건진료소장님과 같이 하니 할만했어. 그림책을 만들면서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책으로 낸다고 하니 감회가 새로워. 바닷가에서 노는 게 제일 재미있어 나는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어. 부모님은 고기 잡는 일을 하셨지. 어릴 때 기억은 동쪽 마을 바닷가에서 멱 감으면서 놀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 멀리 월미도랑 똥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아이들 여러 명과 수영하며 놀았었어. 그때는 바닷가에서 노는 게 제일 재미있었어. 바다는 놀이터도 되고 굴도 따고 민어도 낚시해서 먹을 수 있지. 땅도 없고 나는 바다만 바라봤어. 18 19 바닷가에서 노는 게

제일 재미있어 나는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어. 부모님은 고기 잡는 일을 하셨지. 어릴 때 기억은 동쪽 마을 바닷가에서 멱 감으면서 놀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 멀리 월미도랑 똥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아이들 여러 명과 수영하며 놀았었어. 그때는 바닷가에서 노는 게 제일 재미있었어. 바다는 놀이터도 되고 굴도 따고 민어도 낚시해서 먹을 수 있지. 땅도 없고 나는 바다만 바라봤어. 18 19 명아주 뜯기 소무의도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가장 많이 떠오르는 기억은 명아주 꺾으러 다닌 일이야. 일본 군인들 말먹이로 쓴다고 학교 선생님이 뜯어오라고 하셨어. 선생님과 같은 반 아이들과 산으로 들로 망태기를 들고 명아주를 뜯으러 다녔어. 명아주는 크면 사람 크기만큼 크게 자라났어. 길옆에서 뜯어서 망태기에 담아주면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가져가셨어. 20 21 명아주 뜯기 소무의도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가장 많이 떠오르는 기억은 명아주 꺾으러 다닌 일이야. 일본 군인들 말먹이로 쓴다고 학교 선생님이 뜯어오라고 하셨어. 선생님과 같은 반 아이들과 산으로 들로 망태기를 들고 명아주를 뜯으러 다녔어. 명아주는 크면 사람 크기만큼 크게 자라났어. 길옆에서 뜯어서 망태기에 담아주면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가져가셨어. 20 21 김구 선생 오신 일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8.15해방이 되었어. 해방이 되고 김구 선생이 소무의도에 오셨어. 소무의도에서 새우, 꽃게를 잡아서 독립자금을 많이 댔었다고 해. 그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러 오셨어. 그때는 소무의도가 용유 전체 세금의 3분의1을 낸다고 할 만큼 고기잡이로 부유했었어. 어른들이 김구 선생 오셨다고 해서 뵈러 갔지. 어른들 뒤에서 바라봤는데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검정안경을 쓰고 계셨어. 22 23 김구 선생 오신 일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8.15해방이 되었어. 해방이 되고 김구 선생이 소무의도에 오셨어. 소무의도에서 새우, 꽃게를 잡아서 독립자금을 많이 댔었다고 해. 그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러 오셨어. 그때는 소무의도가 용유 전체 세금의 3분의1을 낸다고 할 만큼 고기잡이로 부유했었어. 어른들이 김구 선생 오셨다고 해서 뵈러 갔지. 어른들 뒤에서 바라봤는데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검정안경을 쓰고 계셨어. 22 23 사당 소무의도는 집집마다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어.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어. 쌀 뒤주 위에 부모님, 조부모님들 밥을 올리고 창호지에 지방을 써서 붙였지 명절에는 맛난

음식들과 사탕도 먹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어. 24 25 사당 소무의도는 집집마다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어.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어. 쌀 뒤주 위에 부모님, 조부모님들 밥을 올리고 창호지에 지방을 써서 붙였지 명절에는 맛난 음식들과 사탕도 먹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어. 24 25 보리앙금으로 허기를 달래던 시절 무의도에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6.25 사변 이후 식량이 없어서 보리 앙금을 타서 먹고 감자녹말을 먹으면서 배가 고팠던 기억이야. 그땐 쌀은 구경도 못했지. 겉보리를 찧어서 물에 불려두면 쌀뜨물처럼 보리 앙금이 물 아래에 가라앉아. 가라앉은 보리 앙금을 죽처럼 끓여서 먹었어. 감자녹말은 감자를 가라앉힌 앙금을 죽처럼 끓여서 먹었어. 무의도에서는 배추, 무, 마늘, 감자 같은 채소나 심어먹었지 먹을 곡식이 없었어. 꿈질이 뭔지 알아? 대한민국에서 소무의도에서만 있는 말이야. 우리 집에서 쌀 한 가마니 사면 옆집에 쌀 한 됫박, 또 그 옆집에 쌀 한 됫박 이렇게 서로 나눠먹는 거야. 꾸어다 먹는다 하여 꿈질이야. 배나 어선이 들어올 때 쌀 한 가마니를 사는 사람이 주민들에게 한됫박씩 빌려주고 다음에 다른 사람이 사면 빌린 것을 갚고 또

꿔주는 거야.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모두 그런 식으로 생활을 했어. 26 27 보리앙금으로 허기를 달래던 시절 무의도에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6.25 사변 이후 식량이 없어서 보리 앙금을 타서 먹고 감자녹말을 먹으면서 배가 고팠던 기억이야. 그땐 쌀은 구경도 못했지. 겉보리를 찧어서 물에 불려두면 쌀뜨물처럼 보리 앙금이 물 아래에 가라앉아. 가라앉은 보리 앙금을 죽처럼 끓여서 먹었어. 감자녹말은 감자를 가라앉힌 앙금을 죽처럼 끓여서 먹었어. 무의도에서는 배추, 무, 마늘, 감자 같은 채소나 심어먹었지 먹을 곡식이 없었어. 꿈질이 뭔지 알아? 대한민국에서 소무의도에서만 있는 말이야. 우리 집에서 쌀 한 가마니 사면 옆집에 쌀 한 됫박, 또 그 옆집에 쌀 한 됫박 이렇게 서로 나눠먹는 거야. 꾸어다 먹는다 하여 꿈질이야. 배나 어선이 들어올 때 쌀 한 가마니를 사는 사람이 주민들에게 한됫박씩 빌려주고 다음에 다른 사람이 사면 빌린 것을 갚고 또 꿔주는 거야.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모두 그런 식으로 생활을 했어. 26 27 가정을 꾸리다 서울이 국군에게 수복되고 서울에서 서울 상고를 진학해서 졸업했지. 그리고 군입대하고 제대 후에 용인에 살던 지금의 아내와

중매해서 27살에 결혼했어. 나는 2남 1녀를 두었어. 딸 하나를 낳고 그 뒤에 아들 형제를 내리 두었지. 살림 잘하고 아이들 잘 키워줘서 아내에게 고마워.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짝 잘 만나서 시집 장가 잘 가서 고마워. 28 29 가정을 꾸리다 서울이 국군에게 수복되고 서울에서 서울 상고를 진학해서 졸업했지. 그리고 군입대하고 제대 후에 용인에 살던 지금의 아내와 중매해서 27살에 결혼했어. 나는 2남 1녀를 두었어. 딸 하나를 낳고 그 뒤에 아들 형제를 내리 두었지. 살림 잘하고 아이들 잘 키워줘서 아내에게 고마워.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짝 잘 만나서 시집 장가 잘 가서 고마워. 28 29 새마을 가꾸기 사업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보람된 일은 내가 소무의도 이장을 맡았을 때 시멘트를 정부에서 받아서 소무의도 골목골목을 포장해놓고 그걸 바라볼 때가 가장 가슴이 벅찼었어. 박정희 대통령 때 우리 마을이 새마을 운동 기초 마을로 선정돼서 시멘트 100포대를 받아 마을 주민이 모두 참여해서 길을 정리하고 포장했어. 남자들은 흙을 파고 여자들은 머리에 이고 날랐지. 모예재고개가 너무 높아서 고개를 깎아 낮추고 길을 다니기 편하게 포장을 했지. 30

31 새마을 가꾸기 사업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보람된 일은 내가 소무의도 이장을 맡았을 때 시멘트를 정부에서 받아서 소무의도 골목골목을 포장해놓고 그걸 바라볼 때가 가장 가슴이 벅찼었어. 박정희 대통령 때 우리 마을이 새마을 운동 기초 마을로 선정돼서 시멘트 100포대를 받아 마을 주민이 모두 참여해서 길을 정리하고 포장했어. 남자들은 흙을 파고 여자들은 머리에 이고 날랐지. 모예재고개가 너무 높아서 고개를 깎아 낮추고 길을 다니기 편하게 포장을 했지. 30 31 모예재 전설 모예재에는 전설이 있어 동쪽 마을에 사는 어머니를 서쪽 마을에 살던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항시 문안을 드리기 위해 높은 고개를 넘어 다녔다고 해서 모예재라고 불린다고 해. 예전에는 소무의도에 사람들이 많이 안 왔었는데 무의대교 개통된 후로 사람들이 소무의도 구경 하러 많이 와. 코로나로 어디 못 가니 아이들 데리고 해변가에서 놀다 가곤 해. 소무의도 자체를 구경하러 와 아담하니 괜찬다고들 해. 32 33 모예재 전설 모예재에는 전설이 있어 동쪽 마을에 사는 어머니를 서쪽 마을에 살던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항시 문안을 드리기 위해 높은 고개를 넘어 다녔다고 해서 모예재라고 불린다고 해.

예전에는 소무의도에 사람들이 많이 안 왔었는데 무의대교 개통된 후로 사람들이 소무의도 구경 하러 많이 와. 코로나로 어디 못 가니 아이들 데리고 해변가에서 놀다 가곤 해. 소무의도 자체를 구경하러 와 아담하니 괜찬다고들 해. 32 33

프로젝트 정보

고객사
무의보건진료소-떼무리바다이야기
제작연도
2019
산업분야
public-institution
문서유형
소식지/뉴스레터
조회수
2,689

설명

레거시 시스템에서 마이그레이션됨 (카테고리: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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