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문학 마루문학협회 cafe.daum.net/maruone 문화공보처 등록번호 사 1671(1993.9.24) 통권 43호 43 MARU LITERATURE SINCE 1990 권두언 최문자 송창섭 특집1 배한봉 박종순 입주작 가 이명훈 석미화 김윤경 이영숙 정윤희 채춘자 최 용준 황용진 신작시 강희근 박종현 박제영 오민석 오인태 이종만 강민숙 신미균 황정산 주강홍 박우 담 안채영 김재근 남길순 정원철 이승리 김보미 강 미임 박경순 차창수 특집2 조선족 시 강지현 박계 옥 신계옥 심송화 이초선 한하나 박제영의 시 콩트 소시민氏의 하루 전결의 시선 죽음을 바라보는 3개 의 시선 안채영의 파자시 선거의 추억 강의록 서지 월 박종현 오민석 오인태 이종만 박해람 황정산 박 우담 김재근 김학록 전상우 소설 하아무 이인규 평 론 박대을 학생 작품 시민과 詩작하다 2023겨울 통권 43 마루 문학 마 루 문 학 2 마루문학회장 안채영 발간사에 마음을 쓰게 됩니다. 이쯤이면 계절도 가을을 넘어 겨울에 들어 설 때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때를 보아도 또 한 해를 곱게 접어 야 할 시기를 의미합니다. 이렇듯 마루문학 연간지도 어렵게 한 해를 갈무리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풀려나지만 오히려 갇혔을 때보다 삶은 더 팍팍하 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조삼모사인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어제의 네 개가 오늘의 세 개 보다 더 달콤하게 다가와서인지 아니면 동안거를 마 치고 허한 마음에 빠진 탓일지 모든 마음 씀씀이가 헛헛합니다. 43호를 맞은 35살의 마루문학이 작은 변신의 몸부림을 가져보려 합 니다. 우리 정서의 고운 자양분을 담되 눈은 더 높은 곳을 지향하려 합 니다. 가장 우리다운 지역성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가장 대표적인 우리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다짐하며 스승이 돼 주실 필진을 모셔 함께 책 으로 엮어 표현했습니다. 기존 회원의 작품에 국한하지 않고 시야를 전국으로 넓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전국적 문인들께 청탁하여 그 분들의 글을 수록하였고 우리 문단과의 교류의 폭도 넓히려 노력하였습니다. | 발간사 | 발 간 사 3 또 레지던스 입주 작가의 작품도 소개해 올해는 팬데믹으로 힘겨운 가운데도 나름 풍성한 소출이 그래도 위안이 되는 해인 셈입니다. 잠시 10년 만의 레지던스 사업의 개요를 소개해야 겠습니다. 올해는 10년 전 주관한 레지던스 사업을 새로운 기획 의도를 담아 실 시했습니다. 신인발굴과 기존 작가의 창작의지를 돕는
취지도 중요하 지만 이 분 작가들에게 사천의 지역성을 작가들에게 소개하고 이 분들 에게 창작의 자양분이 되도록 했습니다.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윤슬의 바다와 활력이 넘쳐나는 삼천포항, “저 절로 시가 나올 것 같은 곳”이라고 감탄해마지 않는 곳입니다. 박재삼 문학관 집필실은 노산공원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 그다지 번잡스럽 지도 않거니와 산책을 하기에도 그만입니다. 공원 바로 옆 재래시장은 사람 냄새가 그리우면 언제든 찾아가볼 수 있는 장터입니다. 사천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을 돌아보고 체험해 봄으로써 창작 소재 를 제공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수탈의 역사 가운데 임진왜란 정유재란 의 흔적을 탐방했습니다. 대방굴항과 선진성입니다. 진양지역 인근의 수 많은 피로인이 일본으로 끌려간 상처로 남아있는 선진이 글공부에 는 딱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조명 군총과 이순신 바닷길 제 2코스 최초 전투지로서의 거북선길을 탐방하고,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손꼽 히는 실안 노을길, 별주부전의 고장 비토섬까지 바람을 쏘이는 소풍나 들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밝음만 있는 게 아니지요. 나환자들이 가나안의 땅을 일구려 입도했다가 현지인과 가슴 아픈 다툼이 일어 결국 우발적 학살로 스러
져 간 임계선의 비토를 보았고 값진 이름의 빼어난 빛, 빛토섬 순례도 마 루 문 학 4 퍽 인상 깊은 체험이었습니다. 세상은 밝음과 어두움이 혼재되어 있고 그 가치 가운데 밝음에서 어두움을 담아내고 반대로 어두움에서 밝음 을 읽어내는 것이 문학의 본령이라면 우리 지역은 문학인에게 훌륭한 자양분을 공급해 주는 기회의 땅임을 작가들에게 소개함은 소중한 가 치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개에만 그치지 않고 앞으로 도 마루문학에서 연구 활용해 봄직한 소재도 발굴할 수 있어 지역문학 의 지향점을 잡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올 43호의 갤러리와 표지는 김홍배 도예가의 작품으로 실었습니다. 흙이 기(器)에 이르는 과정의 열정과 철학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임진왜란의 침탈 과정에 끌려간 도공(陶工)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우리가 놓친 것을 숙고해 보려는 욕심을 나타내 보았습니다. 도예가 김홍배 선생의 삶이 우리 지역의 가능성이 너무도 닮아 있어 독 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최근 한 출판사로부터 지역 대표 잡지의 효시인 마루문학을 단행본 으로 양장하여 출판하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많이 부족한 잡지라고 사양했지만 내심 마음 한군데는
눈물나게 고마운 제안이고 다시금 자 세를 바로잡는 책임감을 느끼게 해 준 제안이었습니다. 더욱 정진하겠 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陶淸 김홍배 2011~12년 사천시 도자기 협회장 역임. 전) 사천시 공예협회 회장. 2023-02호(사)대한민국 도자기장인 인증. 현) 도청도예 도자기체험 장 운영. 자연에서 얻은 흙으로 조형과 형태를 만들어 전통과 현대적인 미를 살 려 만개한 연꽃문양으로 표현하였으며 뚜껑받침을 만들어 녹차와 연차를 우려 마실 수 있는 연차수반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차를 마시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열정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 마루문학과 함께하는 지상갤러리 | 〈 표지작 〉 가마문을 열며 김흥배 쿵쾅거리는 심장소리 따스한 열기가 문틈사이로 숨을 쉬네 피부가 뽀얀 녀석들 사기장은 어미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네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 빙열 소리에 장단 맞추네 독작獨酌 오인태 슬픔은 더 지극한 슬픔으로 녹이고 외로움은 더 절절한 외로움으로 견디나니 오지 마라, 사람아! 나, 오늘 기꺼이 대작하리니 지금, 십 리 밖에 오고 있는 내 외로움과 오 리쯤 더 왔을 내 슬픔과 사랑의 전집 배한봉 당신이 그리울 때마다 꽃밭에 놓인 꿈의
시간을 하늘에 압정으로 하나씩 눌러 박아 놓았습니다. 숲 위에 별이 총총 뜹니다. 먼 옛날의 무수한 내일이 사랑의 전집을 펼칩니다.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김종만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에 너의 소식을 듣고 있다 나를 설레이게 하고 있다 흰 구름이 떠오르고 있다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 나의 눈과 귀 열리게 하고 있다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를 향해 나는 들길을 걸어가고 있다 해피비해피 펜션 풍경 강희근 댕댕댕 울릴 것 같다 간, 간, 간 울릴 것 같다 섬 아래 서쪽은 남은 햇볕이 노닥거리는 해변 나무로 만든 축조 다리갈이 부드럽다 아, 여기서 나는 아찔하다 그만 아무나 잡고 사랑해버릴 것 같다 해피 비해피라 했으니 골라잡아 해피! 누구 없을까, 내게 간을 내어줄 사람! 허수아비 때리기 황정산 들판에 누군가 서 있다 나는 것들이 벗어놓은 무게를 그가 걸치 고 있다 모든 것을 맞으며 서 있지만 그가 벌린 두 팔에 안기는 것은 없다 밟고 선 그림자 발을 감춘다 마 루 문 학 8 마루 문학2023겨울 통권 43 배한봉_ 첫 별 외 9편(시) _ 25 내 책상 앞의 풍경과 죽비에 대한 헌사(산문) _ 40 | 작품론 | 천행건의 시학 _이형우 _49 박종순_ 일제강점기
학생 잡지 『學生』 에서 방정환이 ‘한뜻’ 으로 기약한 일 _ 58 특집 1 | 권두언 | 밤의 경험, 빛의 경험 _ 최문자 _ 14 | 발간사 | _ 안채영 _ 2 | 권두언 | 문학인이 꺠우쳐야 할 문학의 몫 _ 송창섭 _19 | 마루문학과 함께하는 지상갤러리 | 차 례 9 입주 작가 석미화_ 굴항 외 1편 _353 김윤경_ 신수도 여행 _356 이명훈_ 기어다니는 꽃 외 1편 _350 채춘자_ 내 삶의 정상에서 외 1편 _368 황용진_ 고추잠자리 외 1편 _373 이영숙_ 레지던스 시선 _360 정윤희_ 날지 못하는 새의 이유 외 1편 _365 최용준_ 가벼운 침묵 외 1편 _370 마 루 문 학 10 시 박제영_ 뭄 외 _107 110_ 그대 눈물이 흐르면 외_ 오민석 강희근_ 해피비해피 펜션 풍경 _ 102 104_ 은행잎 외_ 박종현 오인태_ 독작獨酌 외 _113 115_ 양봉일지 - 파도 꽃 외_ 이종만 강민숙_ 민달팽이 외 _ 118 120_ 날라리 진혼곡 외 _ 신미균 황정산_ 도마의 전설 외 _ 124 127_ 구석의 편견 외_ 주강홍 김재근_ 장마의 방 외 _135 139_ 세상에서 가장 큰… 외_ 남길순 정원철_ 가을걷이 외 _ 142
144 _ 창간호 외_ 이승리 박우담_ 별사탕 외 _130 133_ 종포마을에 가서_ 안채영 차 례 11 강지현 시 | 어느 날/눈이 내린다 박계옥 시 | 이깔나무잎 사랑/시래기국 신계옥 시 | 가을 연가/쓸쓸한 중년 심송화 시 | 길 위의 나뭇잎/가는 가을 이초선 시 | 저녁 다섯 시 반의 노을/산에 오른다는 건 한하나 시 | 가을 엽서를 쓰다/눈꽃송이 특집 2 - 조선족 시 _79 김보미_ 봄은 기다리면… 외 _ 146 147_ 용현 _ 강미임 박경순_ 코스모스 _ 148 150_ 공갈빵의 공갈이… 외_ 차창수 죽음을 바라보는 3개의 시선視線 _ 전 결 _ 161 전결의 시선 소시민氏의 하루 _ 박제영 _153 박제영의 詩콩트 마 루 문 학 12 강의록 박종현_ 시창작 매카니즘 형성하기 _197 서지월_ 박재삼문학제(2023) _173 오민석_ 이론의 지위: 세계를 읽는 다양한 방법 _205 오인태_ 시 읽기, 행복한 삶의 조건 _ 222 이종만_ 나의 시 쓰기 _ 228 박해람_ 서사의 차이 _230 황정산_ 시인은 왜 시를 써야 할까? _ 241 박우담_ 천상병 시인의 대표시 '귀천' 詩碑 _ 260 김재근_ 시적 묘사 _273 김학록_ 끝나지 않은
통곡 _ 282 전상우_ 독서의 중요성 _294 선거의 추억 _ 안채영 _ 170 안채영 파자시 차 례 13 학생 작품 도시락 - 김시윤 재미있는 것은 - 정호진 팥빙수 - 김주언 여름 - 유해림 수박 - 조지현 피피티 - 전하준 나무 - 구가을 소나기 - 이라희 여름 바다 - 이우찬 스마트폰 - 조재헌 야구 - 김민건 내 마음은 친구이다 - 김지완 시계 - 김형주 엄마 마중! - 백찬우 황금 다리 - 서민욱 봄 - 이동후 노트북 - 이장호 빠져 있다 - 장준혁 히끼 꼬모리 화석 - 정민건 내 마음은 나무다 - 정정원 비 오는 어버이날… 외 1편 - 정준혁 유산균 - 천성민 삶 - 최현서 휴대폰보다… 외 1편 - 구가람 빙수 - 전하음 젊음 외 1편 - 구가온 시민과 詩작하다 전상우_ 나는 단무지입니다 김미경_ 멍게 송말임_ 할미꽃 외 1편 정춘식_ 갯바위 김미행_ 갯바위 정숙선_ 멍게 정현기_ 황금들판의 찬가 김말립_ 별 외 1편 박경선_ 등대 하아무 | 섬진강 블루스 _300 이인규 | 어리석은 사람들 _319 박대을 | 설도 봄에 바라보다 춘망사 사수_335 소설 평론 권말부록 _417 마 루 문 학 14 최문자 금지된 삶에서 기꺼이 불편해지는 시인들이
있다. 밤의 경험이다. 그 런데 푸른 잎사귀들은 밤에 어둠 속에서 어둠을 뚫고 몰라보게 자란다 고 한다. 더 파래지고 더 싱싱해지고 키도 커진다고 한다. 푸른 잎사귀 가 자라는 속도를 바라보며 그 성장 변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다 면 진짜 시인이다.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하여 시인들은 밤 같은 어둡고 깊은 동굴 내벽 에 손을 집어넣는다. 밤을 만지며 밤을 경험한다. 모든 생명체들은 잠 을 잠으로써 밤에게서 도망치려 하지만 눈을 감아도 시인들은 거기 버 티고 있는 밤의 이미지 한 조각을 늘 바라보고 있다. 꿈이다. 파스칼 키 냐르는 『은밀한 생』에서 “누가 밤 속에 이미지를 갖다 놓았는가? 그것 은 꿈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빛에 매혹된 자 빛에 길들여진 자 빛의 노예들이다. 밤은 얼 | 권두언 | 밤의 경험, 빛의 경험 권 두 언 15 굴 조차 없는 부재의 시련이다. 밤을 만나면 처음에는 세계가 칠흑 같 이 느껴지지만 그러다가 차츰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 생겨난다. 결코 승리할 수 없는 곳에서 성공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밤을 경험하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의 눈은 끔찍하게 밝은 대상에게만 쏠려 있다가 눈 이 멀게 될 수도 있다. 파스칼 키냐르는
스탕달이 쓴 이야기를 예로 들 며 이렇게 쓰고 있다. “잘츠부르크의 소금광산에선 겨울이 되면 잎이 떨어진 자작나무 가 지들을 어두운 폐광 구덩이 속으로 던져 넣는다. 두세달 후에 그것들 을 꺼내보면 나뭇가지들은 반짝이는 결정체들로 덮여 있다. 굵기가 멧 새 다리만한 가장 작은 가지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움직이는 듯한 다이 아몬드들이 무수히 붙어 있다. 도무지 원래의 나뭇가지들로 보여지지 않는다.” 탁월한 에술이란 어떤 것인가? 표면이 찢기고 피를 흘리며 구덩이로 들어가는 나뭇가지 같은 자들의 밤은 어떠한가?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 면 원래의 나뭇가지는 보석이 달린 나뭇가지들 얘기로 끝이 나고 있다. 우리의 적들은 우리에게 결코 밤을 권하지 않는다. 달콤하고 밝은 매 혹의 불빛만을 권한다. 나는 괴롭고 힘든 시기에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 가에 관하여 결코 함부로 주변과 상의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오직 우리 를 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대목에서만 찬성할 것이므로. 아마도 세상의 어머니들만이 줄기차게 우리에게 밤을 이야기해 주며 어마무시 한 밤을 가르쳐주는 것 같다.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하여 시인들도 밤 같은 어둡고 깊은 동굴 내벽 에 손을 집어넣는다. 밤을
만지며 밤을 경험한다. 모든 생명체들은 잠 을 잠으로써 밤에게서 도망치려 하지만 눈을 감아도 우리는 거기 버 티 고 있는 밤의 이미지 한 조각을 늘 보고 있다. 꿈이다. 마 루 문 학 16 또 금지된 삶에서 기꺼이 불편해지는 시인들이 있다. TV를 켜면 아래 자막에 아픈 이야기들이 뜬다. 매일 새로 아프기 시 작할 질병 확진자가 된 시인들, 명을 달리한 시인들도 적지 않다. 아픔 이나 죽음은 이제 더 이상 뉴스가 아니라 일상이다. 밤의 경험이다. 이 런 상황에도 매일매일 몇 권의 시집들이 배달되었다. 엔솔로지 제목처 럼 어떤 상황에서도 시가 굶주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부쳐 온 여러 권의 시집을 읽어내면서 자꾸 시가 마르는 소리를 듣는다. 아프 다고 시를 마구 써낼 이유 또한 없는 것이다. 안 써질 땐 안 쓰면서 우울 을 견뎌도 된다. ‘우울보다 울창’이란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을 기억한 다. 우글거리는 검보라빛을/우울하게 내보내는 중이라고. 시가 마르면서 시인들은 더 외롭거나 더 외톨이가 된다. 시 말고 시인 을 기쁘게 하는 더 큰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자꾸 나를 거부하는 시 와 세계, 나를 따돌리는 이 우울한 데믹 세계에서 보르헤르트
식으로 포 기하고 싶으면 포기하고 불편하면 기꺼이 불편해지는 것이 오히려 달 랑 마스크 하나로 단절된 하늘과 시간을 연결할 수 있고 우울을 견디는 길일 것이다. 또 한 권의 시집을 깊이 읽었다. 화분에는 물이 말랐고 남은 이파리는 밖을 향해 눕는데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 같이 죽을 사람 하나 없는 나는 미궁으로 간다 (중략) 원망하는 일은 한여름 도시처럼 질겨 폐가 망가진 시인도 담요를 뒤집어쓰고 웅크린다 _김호성,『적의의 정서』 ,‘금지된 삶’ 부분 우주에서 보면 티끌보다도 아주 작은 시인이지만 인간을 넘어서는 권 두 언 17 어떤 미지의 법칙 속에서 나타나는 뒤틀림을 이해하기란 시인에겐 여 전히 어렵고 고통스런 일이다. 그러나 시인은 금지된 삶에서 더 빛날 수 있는 한 존재이기도 하다. 푸르스트는 “그 어떤 사회적 계층과 사회에서도 그 나름대로의 관심 의 대상을 갖고 있다. 예술가에 있어서는 더욱 습관의 표현처럼 나타 난다.”라고 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정열과 호기심을 가지고 많은 예술 가들은 자기의 영역에서 맴돌기를 한다. 시인들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보면 어떤 것 주변에는 그 어떤 것을 에워싸고 맴도는 것들이 있다. 맴 돌기 시작하면 맴돌기 이상으로
마음을 끄는 게 없다. 그러나 이 맴돌 기가 끝내는 의미 있는 것으로 성취되는 것만은 아니다. 맴돌다 거기서 무엇이 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병을 얻거나 죽을 수도 있다. 곤충들은 죽을 때가 되면 날개를 치며 땅에 등을 대고 맴돌자 죽는다고 한다. 맴 돌기는 죽음에 이르는 질병 같은 것이다. 시란 사실 “진실의 전부”가 아니라 진실의 작고 구체적인 조각만을 갈망한다. 시가 주린 배를 채워주지 못하고 아무런 해결책이 못 된다 해 도 진실의 작은 부분에서 쓰고 싶었던 한 편의 시가 잘 써진다면 그 것 은 맴돌다 부분적으로 발견되는 기쁨이며 아직도 수많은 시인들이 그 기쁨으로 시를 쓰고 있다. 시 쓰기, 그 억압성은 보이지 않지만 세계의 완강한 일각을 스스로 침 몰시키기도 한다. 시 때문에 생의 한 고비에서 많은 걸 잃는 시인들을 본다. 써낸 시들은 아름답지만 그 뒤에는 복구되어야 할 시인의 눈물겨 운 삶들이 남아 있다. 시인에게 간절한 밥은 무엇일까?. 시 말고는 달리 살 줄 모르고 더 이상의 패배도 없기에 성공만을 찬미하는 뒤틀린 세계 에 등을 대고 시인들은 질병의 시대 앞에서 여전히 견디고 있다. 밤의 경험, 이 시대의 밤에 우리가 이루어야 할 진정한 싸움은
무엇 인가? 한없이 밀려드는 쓰나미 같은 질병인가 죽음인가? 시인은 그냥 마 루 문 학 18 어떤 밤도 경험해야 한다. 밤은 시인의 자산이고 거센 밀물 앞에 서서 도 시인들이 할 말이 있게 만드는 자산일 수 있다. 시인들이 이러한 밤 을 느끼면서도 하던 일상을 구부리면서도 그래도 시가 오면 밤에 시를 쓰면서 가끔은 기쁠 수도 있는 것이 시인이다. 김소연 시인의 『촉진하 는 밤』을 읽었다. 시인들이 밤을 경험하면서 겪는 고통이나 시인이라 면 밤을 경험해 봐야 하는 사실들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거기 다 시로 써 있었다. 뒤틀림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이 시대에도 『마루문학』은 문학생존 의 독기를 품고 구부리지 않고 나날이 일어서고 있다. 시를 붙잡는 발 행인,주간, 편집진, 노력하는 힘에 박수할 일이다. 최문자 서울 출생.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과 사이사이 새』, 『파의 목 소리』,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 등 출간. 권 두 언 19 송창섭 문학을 하는 행위는 단순히 글을 쓰는 작업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글을 쓰는 일은 개인의 기호와 역량 그리고 열정으로 빚는 적막하고 고 독한 작업이다. 그렇게 엮은 작품
속에는 작가의 혼이 담겨 있다. 우리 는 이를 작가의 문학 정신 혹은 작가 정신이라 부른다. 문학을 일러 사 상이나 의식, 감정을 지적인, 지혜로운 상상의 힘을 빌려 언어로 표현 한 예술이라 일컫는 명징한 이유이다. 나는 작가의 현실적인 삶이 반드시 작가가 쓴 문학 속의 삶과 일치해 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가의 의식이 녹아든 작품이라 면 최소한 그러한 삶의 형상을 닮았거나 닮으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노력이 없다면 작품과 작가 정신을 별개로 보아 악 의 영향을 끼쳐도 무방비 상태로 방치할 수 있다. 아울러 쓸모없는 위 선이 포장이라는 가식을 거쳐 사회의 정의를 왜곡할 가능성이 있기 때 문이다. 이는 작가가 독자에게 끼치는 사회적 책임, 도덕적 양심과 관 | 권두언 | 문학인이 깨우쳐야 할 문학의 몫 마 루 문 학 20 련 있는 문제이다. 문학계에 나타난 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는 미투me to 운동이나 표절 논쟁, 권력의 꼭두각시놀음 따위들이 그런 범주에 속 하는 불협화음이다. 올곧은 목소리는 사회적 국가적 정의이며 민심을 대변한다. 그런 관 점에서 올곧은 목소리를 내는 작가와 올곧은 목소리를 담은 문학은 어 디서나 늘
정치로부터 시달림을 겪으며 감시와 탄압을 받아 왔다. 문학 이 제 길을 가지 못하고 제 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이는 작가로서 문학 성을 상실했거나 작가 개인의 한계라 치부할 수 있다. 심각하게 주목해 야 할 사실은 외압에 의한 문학의, 작가 정신의 진정성 훼손일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방관만 한다면 문학판은 물론 인간 삶 의 긍정적인 희망과 행복한 미래를 기대할 수가 없다. 정치는 권력 행위다. 삼권분립을 아무리 강조해도 정치는 권력을 전 제하며 권력을 부리는 수단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국민들은 홍수로 목숨을 잃고 가뭄으로 목말라 죽고 추위로 얼어 죽고 공사판에서 떨어져 죽어도 정치인만큼은 그렇게 죽을 수가 없다. 서민 은 무기력하게 쓰러져도 힘의 지배 논리는 절대적으로 그렇지 않다. 현 실 속에서 권력의 분배는 균등하지 않다는 의미다. 국민에게 겸허히 자 세를 낮추고 국민을 위해 무얼 하겠다고 소리 높여 떠들어도 그 짓의 공 허함은 숱한 고통과 경험을 통해 허위임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자본주 의라는 경제 지배 생리가 토해낸 기형적 모순인 셈이다. 우리는 국내외 큰 전쟁을 겪은 이후 부요한 삶을 누리기 위해 끊임없 이 앞만
보며 내달렸다. 그 결과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엄청난 물질적 가치를 창출했다. 여행 문화와 자차my car 보유량만 보아도 단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그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정신적 가치는 매우 피폐해 졌다. 폭력 앞에 평화는 철저히 붕괴되고 감정과 욕망의 회오리는 인간 과 사회, 자연의 건강성을 모두 앗아갔다. 권력과 부의 쏠림 현상은 물 줄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었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고 탓할 겨를이 권 두 언 21 없는 상황이다. 인간이라면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으로부터 그 누구도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모든 터전을 파멸로 내모는 죄악의 행위-정경 유착, 권력형 비리, 부정부패 따위–는 이 순간에도 시공을 초월하여 거 침없이 자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고 문학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자 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따듯하거나 한낮엔 더웠던 날씨였는데, 10월 중순 의 새벽과 밤은 꽤나 쌀쌀했다. 몸을 움츠러들게 하고 두툼한 옷을 꺼내 게 만든 냉랭함이 곁에 바짝 다가왔다. 그럼에도 믿기지 않는 놀라운 광 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벚나무에 벚꽃이 핀 것 이다.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결같이 내뱉었다. ‘쟤들이 미쳤다 미쳤어. 지금이 어느 땐지도 모르고.’ 순리를 따르는 벚나무의 행보를 돌연변이나 광기로 여긴다면,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행태는 과연 어떠한가. 벚나무의 돌연변이나 광기를 훌쩍 뛰어넘어 더 심각하고 위험하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10월 추위에도 꽃을 피운 벚나 무는 정의다. 그의 행위에는 한 치의 거짓이 없다. 우리는 지금껏 우리 가 자행한 과오를 무지無知하거나 망각해 왔다. 인지한다 해도 인정하 기를 거부한다. 이것이 위선과 오만불손으로 가득한 우리의 진상이다. 문학을 일러 사상과 감정의 부산물이라 했다. 정치가 삐뚤고 기후가 삐뚤고 지구가 삐뚤고 인간이 삐뚤다면, 그야말로 모든 것들 앞엔 돌이 킬 수 없는 파멸뿐이다. 파멸할 것인가 생장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해결의 열쇠는 결국 인간이 쥐고 있다. 회개와 반성 그리고 새로운 변 화에 대한 다짐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날 인간만의 안전지대 에서 즐거이 군림하며 제멋대로 살아 왔던 인간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문학인 또한 소임이 명확하다. 시대적인 사명 의식을 갖고 문제 해결 마 루
문 학 22 에 나서야 한다. 정치의 거만함을 질타하고 삐뚤어진 기후를 바로잡도 록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 지구의 병든 원인을 찾아 밝혀야 하고 알 려야 한다. 인간들의 도도하고 고고한 걸음걸이를 제자리로 돌려놓아 야 한다. 생명체든 비생명체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고 망가졌다. 더 이상 머뭇거리고 지체할 수가 없는 지경이다. 궁극에는 자생의 몸부림, 자정 활동을 지구의 보편성을 띠고 펼쳐야 한다. 그 몸부림은 막연한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저지른 과오의 허물벗기다. 그 몸부림의 몫은 우 리 것이고 그 몸부림의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글을 쓰는 자에겐 그 몸 부림이 곧 문학임을 자각해야 한다. 감은 거저 떨어지는 게 아니다 후두둑 툭 턱 지붕을 거쳐 돌담에 부딪는 소리 어둠을 터는 소리 잠 못 들게 하는 소리 거기 매달려 있었구나 온몸을 던져 지구를 밀어 올리려고 낙타가 없는 사막에서 -조슈아트리내셔널파크 Joshua Tree National Park 권 두 언 23 사막으로 떠나기 전 노후한 잎새를 만진 일이 있었다 기억나지 않는 것들은 다 버림받은 일이 되었고 팍팍한 땅에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오두막집을 짓는 꿈 그럴 때마다 햇볕에 그을린 유목민들의
우수憂愁가 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