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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중구 누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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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누 들 의 발 간 등 록 번 호 54-3490000-000094-01 산 본 구 , 중 들 누 누들의 본산, 중구 기 야 이 발 간 등 록 번 호 54-3490000-000094-01 누들의 본산, 중구 Contents Ⅰ 개항과 누들 먹거리의 탄생 1. 냉면 ·············································································· 9 2. 짜장면 ······································································· 21 3. 쫄면 ··········································································· 29 4. 칼국수 ······································································· 32 5. 튀김우동 ·································································· 37 6. 우리나라의 국수 문화

·········································· 41 7. 누들문화를 일군 인천의 밀가루 산업 ············· 47 8. 혼분식장려운동(混粉食獎勵運動)도 누들문화에 기여? ················································· 49 Ⅱ Ⅲ 누들 중구 개항장 문화 누들 가게들 1. 현대시 속의 국수 ·········· 52 1. 개항동 일대 (차이나타운) 2. 일제 강점기 누들 가게 ······················ 76 언론에 드러난 국수 관련 기록들 ·········· 58 2. 신포동 일대 누들 가게 ······················ 86 3. 옛 문헌 속의 국수 ········ 62 3. 동인천동 일대 4. 국수 관련 풍속화 ·········· 64 누들 가게 ······················ 97 5. 국수 관련 속담들 ·········· 68 4. 신흥동, 도원동, 6. 국수 관련 어휘들 ·········· 69 율목동 일대 7. 노래로 부른 국수 ·········· 70 누들 가게 ··················· 105 1 개항과 냉면

····················································· 9 3 쫄면 ····································· 29 1)·인천냉면을·아십니까?······················ ·9 누들 먹거리의 2)·원조·인천냉면의·명성······················10 1)·쫄면·탄생의·비화················29 3)·자전거·배달원과 2)·특이한·이름의·쫄면············30 ····옛날·냉면집·풍경······························14 탄생 3)·쫄면의·전파························30 4)·평양냉면과·함흥냉면·······················16 5)·메밀국수···········································18 4 6)·막국수와·다른·이름의·냉면들·········18 칼국수 ······························· 32 2 1)·인천·칼국수의·역사··········· ·32 2)·신포시장·안·칼국수집들과 짜장면

·············································· 21 ····터진개·칼국수골목············ ·32 1)·인천에서·탄생해서·전·국민의 3)·용동·칼국수골목·················34 ····기호·식품이·된·짜장면·····················21 2)·짜장면,·그리고·유명했던 5 ····인천의·청요릿집들···························24 튀김우동 ··························· 37 3)·지난날·우리·생활·속의·짜장면········24 1)·인천·튀김우동의·발원········37 4)·수타(手打)·묘기와·함께 ····태어나는·면발들·······························26 2)·튀김우동의·독특한·맛········39 5)·나무통과·철가방·······························27 3)·다른·우동·종류들················39 4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Ⅰ 개항과 누들 먹거리의 탄생 6 우리나라의 7 국수 문화 ··································· 41 누들문화를 일군 1)·우리나라에서는

인천의 밀가루 산업 ······ 46 ····언제부터·국수를·먹었나?············41 대한제분주식회사······················46 2)·우리나라·전통의·국수··················42 3)·국수를·만드는·특이한·방법·········42 8 4)·국수라는·명칭,·그리고 혼분식장려운동 ····길고·가느다란·국수의·상징·········43 (混粉食獎勵運動)도 5)·광복과·6·25한국전쟁·이후 누들문화에 기여? ·········· 47 ····국수·문화의·변화··························44 6)·오늘날의·국수·종류······················45 절미운동(節米運動)···················47 4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 5 개항과 누들 먹거리의 탄생 1883년 개항은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개항 당시 제물포 라 불리던 인천은 서울과 인접한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각국의 외교사 절, 선교사, 여행객은 물론 우리나라 주요 인물들이 들고나는 항구가 되었다. 각종 근대 문물도 대부분 다 이곳을 통해 들어왔다. 이 같은 항구의 특성에 따라 인천에는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조계지 (租界地)가 설정되었다. 옛 제물포 포구 위치를 중심으로 중구 일대에 일본인, 청국인, 그리고 유럽과 미주인들이 거주하는 세 군데 조계지가 생기고, 거주 인구가 늘어나게 되면서 거주지 정비, 도로정비, 주택 건 6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설, 상업시설 건축 등이 늘어났다. 거기에 이어서 공공시설 건축, 해안 매립, 축항건설 등의 큰 공사도 벌어졌다. 이런 방대한 공사는 조계지에 사는 자기네 인력만으로는 다 이룰 수 없었고, 결국은 이 일이 전국 각지의 조선인 노동자들을 불러 모으는 한 계기가 되었다. 더구나 개항 초기부터 일본은 자기 나라의 부족한 쌀을 충당하기 위해 질 좋은 조선 쌀을 수입해 감으로써 인천항은 조 선의 쌀 수출항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인근의 경기, 충청, 황해도 의 쌀이 모였다. 선박으로 쌀을 운반해야 했기 때문에 부두에서 쌀가마를 운반하는 노동자들도 절대 필요했는데, 이 또한 전국의 조선인 노동 인력을 끌 어들인 것은 물론이다. 개항 초기에 벌써 인천항 부두에서 노동을 하는 조선인 인구가 천여 명을 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여기서 전국에서 모여든 가난한 조선인 노동자들은 모두 가족을 두 고 단신으로

모였기 때문에 식사를 외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서 생겨난 것이 외식업소, 즉 식당이었다. 더구나 일본이 조선 쌀을 수 입해 가면서 도매업자이자 유통업자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인 객주(客 主)들 또한 다수 이곳에 모여들었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쌀을 헐값에 마음대로 가져가기 위해 19세기 말 쯤에는 미두취인소(米豆取引所)라는 쌀 선물거래(先物去來)를 위주로 하는 투기시설도 세웠다. 일본의 책략에 휘말려 투기를 통해 일확천금 6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 7 을 노리는 많은 사람들, 이른바 미두꾼들 또한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이렇게 노동자, 상인들, 미두꾼 등 외지 인구가 늘어나면서, 자연적 으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외식업이 인천에, 특히 중구에 집중되어 발전 하게 되면서 그 당시 외식 메뉴의 한 종류였던 누들의 판매가 중구를 본거지로 시작되었다. 당시 서울에는 종로에 몇 군데 설렁탕집이 있을 뿐 이러 한 규모는 아니었다. 근대식 외식업소도 역시 인천이 효시 이고 서울에 생긴 것은 조선박람회(1925년)부터였다. 이 글은 인천의 원로 의사로서 음식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가졌던 신태범(愼兌範, 1912∼2001)의 저서 『개항

후의 인천 풍경』에 기록되 어 당시 서울보다 앞선 인천 외식업의 발전을 읽을 수 있다. 당시 인천의 주요 외식 누들 음식의 하나가 냉면이었다. 본래는 평양 냉면을 표방해 출발했으나, 인천 땅에 와서 애초의 평양식 냉면에서 크 게 발전한 별개의 ‘인천냉면’으로 재탄생해 인천, 그리고 중구의 향토 누들음식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짜장면 역시 1910년을 전후한 시기에 청국조계지를 중심으로 산동 반도를 통해 건너온 청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탄생하였다. 이것이 인천 에 퍼지고 다른 도시에도 전파되어 인천 중구는 오늘날 전 국민이 즐 겨 먹는 한국식 짜장면의 발상지가 되었던 것이다. 8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1 냉면 1) 인천냉면을 아십니까? 인천 개항 무렵 평양을 포함한 서북지방에 냉면을 파는 업소들이 있 었을 것이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항이었던 인천항의 노동자, 상인, 객주, 미두꾼들을 상대로 한 근대적 정식 음식업소와는 달랐을 것이다. 냉면 역시 여기서 팔던 ‘인천냉면’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의 첫째가 냉면의 육수였다. ‘인천냉면’은 1920년대부터 서 북지방 본래의 동치미국이나 김칫국물이 아닌 쇠뼈와 쇠고기를 고아 낸 육수였다.

당시 인천항은 우리나라 제1의 항구 역할을 했기 때문에 평양냉면. 1936년 7월 23일 『매일신보』 8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 9 외국 선박의 출입이 잦았다. 일찍부터 이들 선박에 급식을 하고 남은 소의 잡뼈와 양지머리 같은 재료를 푹 고아 육수를 만들었기 때문에 동치미 국물에 말아내던 평양냉면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였다. 고명 으로 쇠고기가 쓰였음은 물론이다. 둘째는 ‘인천냉면’은 풍부한 얼음으로 여름에도 차가운 냉면을 손님 앞에 내놓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인천은 일본인에 의한 것이었지만, 당시 서해 어업의 전진기지였던 까닭에 어선을 위한 냉동용 얼음공장 이 여럿 중구 일대에 세워졌다. 귀하게만 여겨지던 얼음이 중구에 풍부 해지면서 주로 겨울철 음식이던 평양냉면을 여름에도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전천후 음식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2) 원조 인천냉면의 명성 근대 개항의 중심지인 인천 개항장, 곧 중구지역에서 탄생한 ‘인천 냉면’은 인천항의 외지인 손님들로 해서 활황을 이어가며 정착하였 다. 그에 따라 유명한 냉면집들이 생겨났는데, 대표적인 업소가 중구 용동의 평양관과 경인관, 경동의 신경관, 인천관, 답동의

사정옥, 그리 고 동구 금곡동의 복영루 등으로 크게 번창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뛰어난 육수 맛으로 해서 ‘인천냉면’은 널리 서울에까지 소문이 났다고 한다. 10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냉면은 평양이 원조라고 하지만, 인천 것을 못 따랐다. 지 금은 축현동과 답동 간의 큰길이 경사가 없어졌지만, 그 옛 날에는 용동 큰 우물길로 올라가서 목연(牧燕)다방을 거쳐 평양관 길로 꼬부라지는 큰 길이 있었고, 내동 내리예배당 층층대 아래와 그 맞은쪽 평양관 언덕 쪽은 인력거꾼도 가 기가 힘이 들어 타던 사람이 미안해서 내려 걷던 길이었다. 이곳에 인천냉면의 원조가 여러 집 있었다. <중략> 갖은 고기 양념을 넣어서 한 그릇에 5전을 받았다. 10전, 15전, 20전 이렇게 올라갔으나 인천냉면을 서울 사람들이 더 많 이 사 먹었다. 평양냉면 10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 11 이 글은 인천의 원로 언론인이었던 고일(高逸, 1903∼1975) 의 『인 천석금』에 나오는 구절이다. 원조(元祖) 인천냉면이 탄생한 장소와 함 께 그 명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인천관 주인 곽만용이 인천상공회의소 의원 입후보자로 결정되었다는 기사.

1932년 8월 29일 『매일신보』 12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10여 년간 인천조선인음식점조합 장으로 활약 중인 복영루 사장 최구영 소개 기사. 1935년 11월 20일 『매일신보』 가을철 불경기로 평양관을 비롯한 인천관, 사정옥 등 7개 업소가 전화배달을 폐지한다는 기사. 1937년 10월 17일 『매일신보』 12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 13 3) 자전거 배달원과 옛날 냉면집 풍경 곡예를 하듯 스무 그릇, 서른 그릇을 얹은 긴 냉면 목판을 한 손으로 어깨에 올린 채, 다른 한 손으로 비스듬히 뉜 자전거를 타고 냉면을 배 달하던 냉면 배달원들의 묘기는 당시 인천시내의 화제 거리였다. 서울 까지도 자전거로 냉면을 배달했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고일과 신태범의 기록에서 살펴볼 수 있다. 답동에 사정옥(寺町屋)이 있었는데 일본인들은 이곳으로 많이 먹으러 왔다. 표관에서 활동사진이 끝나는 시간이 되 면, 이 집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고, 주식시장에서도 장거리 전화를 걸어 일부러 인천냉면을 주문했다. 전화를 받으면 곧 주문한 수량대로 스무 그릇 이상이나 되는 것을 긴 목판 에 싣고 자전거로 서울까지

배달하던 시절도 있었다. 서로 경쟁을 해서 경인 냉면 배달 자전거 경주대회 같은 느낌을 준 일도 있었다. 그 후 기차 편을 이용하여 대량 주문에 응하 던 것은 자전거 배달로는 위험성과 신속성이 없었기 때문이 었다(고일, 『인천 석금』). 냉면 대접을 빽빽이 여러 그릇 겹쳐 놓은 긴 목판을 어깨 에 메고 한 손으로 자전거를 끌고 달리는 배달꾼의 멋있는 14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1920년대 사정옥의 자전거 배달원들 모습은 한 폭의 거리 풍물화이기 도 했다(신태범, 『개항 후 인천 풍경』). 지금도 간혹 보이지만, 색종이 로 등 같은 것을 매달았었다. 국 수틀이 나무통이고, 긴 방아자루 같은데 사람이 드러누워 층층대 를 거꾸로 내려가듯 발로 틀을 내 리눌러 국수를 짜냈다. 냉면집 앞에 매달던 갈게발 풍경. 1921년 4월 26일 『동아일보』 14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 15 이 역시 1950년대 후반 무렵, 고일의 글로서 지금은 볼 수 없는 냉면 집 앞의 술처럼 달린 갈게발 같은 표시와 당시 냉면집에서 반죽을 틀에 넣어 눌러 면발을 뽑아내던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4)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인천에서는 단연

평양냉면이 유명했다. 평양을 비롯한 평안도와는 당 시 주된 교통로인 뱃길이 열려 있어서 개항 후 그곳의 많은 사람들이 인 천항에 모여든 사람들을 상대로 개업을 하기 위해 이주했던 까닭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함경도에서는 육로도 뱃길도 멀고 불편해 인천 이주가 어려웠기 때문에 함흥냉면의 전파는 거의 6·25전쟁 후에 이루어졌다. 경인식당 16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일반적으로 평양냉면의 주재료는 메밀국수를 육수에 말고 쇠고기편 육, 삶은 달걀, 배, 무 등이 고명으로 얹히는데 비해, 함흥냉면은 감자 전분(澱粉)으로 면을 매우 질기게 만들고 육수 없이 가자미회를 고명 으로 올려 비벼 먹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인천식 평양냉면의 전통으로는 중구 내동의 경인식당이 1940년대 후반부터 오늘날까지 3대째 명성을 유지하고 * 화평동 냉면 거리 동구에 자리한 화평동 냉면거리를 항간에서는 ‘세숫대야 냉면’ 거리로 부르기도 한다. 냉면 그릇이 큰 것을 빗대어 세숫대야 같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칭이다. 1990년대 중반 무렵, 화평동의 한 업소에서 무한 리필 냉면을 팔아 유명해지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영세한 인쇄 관련 업자들 이 여럿 모여 있던 이곳에 간판도 없이

일반 가정집에서 시작한 이 냉면 집은 면만은 얼마든지 주문을 해도 비용 부담 없이 추가해 주었으나 조 금이라도 남기는 경우 1천 원의 과태료를 물리는 식이었다. 당시 한 그릇 값이 2천5백 원이었다. 그 이후 인근에 비슷한 냉면집이 하나둘 들어서서 영업을 하다가 1999년 경인선이 복복선화 하면서 철도 연변에 있던 가옥과 상가들이 모조리 헐리면서 인쇄업자들도 떠나게 되었고, 그 맞은편에 남아 있던 업자들마저 하나둘 이전해 가자 일대에 냉면집들이 다투어 들어서서 냉 면 거리를 이룬 것이다. 면만은 여전히 무한 리필이다. 화평동 냉면거리 는 평양냉면을 ‘인천냉면’으로 진화시킨 전통을 이어받아 그동안 여러 가지 개성적인 독특한 냉면들을 창안해 내기도 했다. 16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 17 있고, 그밖에 해장국, 갈비탕 메뉴로 더 유명한 중구 신흥동의 평양옥 이 냉면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여러 해 전에 문을 닫았지만 함흥냉면은 과거 중구 신포동에 있던 화신면옥이 유명했다. 화신면옥 위쪽으로 두어 집 건너 강서면옥이 역 시 평양식 냉면으로 이름났었는데 오래 전에 문을 닫았다. 5) 메밀국수 흔히들 모리소바라는 일본 명칭을

사용하지만, 우리말로는 메밀국 수이다. 현재 중구 신생동의 청실홍실이 대표적인 업소로 몇 곳에 분점 을 운영하고 있다. 여름철이면 메밀국수의 맛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길 게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있는 음식이다. 청실홍실 바로 건너편 서서 갈비 식당 자리에 있던 오부자집이 광복 후, 6·25전쟁을 거쳐 1990년 대까지 이어오던 인천 메밀국수의 원조 격이었다. 6) 막국수와 다른 이름의 냉면들 춘천막국수로 널리 알려진 이 면은 냉면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데 인천의 효시는 1980년대 초 문을 연 미추홀구 숭의동 로터리 인근 의 춘천막국수 집이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중구 신생동 현 중국 음식 점 신성루 바로 옆에 또 하나의 춘천막국수집이 생겨 중구 지역의 첫 18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청실홍실 청실홍실 18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 19 주자가 된다. 1980년대 중반 폐업 후 다시 중구 사동 영진주유소 뒤편 주택가에서 한동안 재기를 노리기도 했었으나 1990년대 결국 폐업에 이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밖에 옹진냉면, 해주냉면, 백령냉면 등이 대동소이한 형태로 시내에서 판매되고 있다. 짜장면 20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2 짜장면 1) 인천에서 탄생해서 전 국민의 기호 식품이 된 짜장면 짜장면의 탄생 역사는 1910년대 전후부터 시작된다고 해야 할 것이 다. 그 장소는 현재 짜장면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중구 선린동 소 재 공화춘(共和春)이다. 1884년 청국조계지가 설정된 이곳 일대는 청 국인 무역상들과 산동반도로부터 건너온 많은 노동자, 즉 쿨리(苦力) 들이 터를 잡았다. 애초 이들에게 본국, 고향 소식이나 인천에서의 일 자리 정보 제공, 그리고 숙식을 위한 음식점과 객잔(客棧, 여관)을 겸한 산동동향회관(山東同鄕會館)이 올림포스 호텔 북쪽 밑자락에 자리하 였다. 상당수 노동자들이 여기에 기숙하며 인천의 각종 건축공사 등에 종사하였다. 1900년에 이곳에 사환으로 취직했던 위시광(于希光)이란 사람이 1911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객잔과 음식점 영업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2년, 중화민국 수립을 기념하여 상호를 공화춘으 로 개명하였다. 짜장면은 바로 이 산동동향회관, 곧 공화춘에서 이들 노동자들의 식 사로 제공되었다. 초기 짜장면은 오늘날 우리가 먹는 형태와는 다른, 중국 된장 미옌장(甛麵醬)에 돼지고기와 채소류를 넣어 튀겨내

국수에 비벼 먹는 작장면(炸醬麵)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점차 인천 시내에 퍼 20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 21 22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짜장면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공화춘 짜장면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공화춘 22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 23 져 나가고, 중국 된장 춘장의 변화와 함께 다시 전국에 전파되면서 중 국 발음 비슷하게 남녀노소가 즐겨먹는 인천발(仁川發) 한국식 짜장면 이 된 것이다. 이 공화춘은 1983년에 영업을 마감했다. 2) 짜장면, 그리고 유명했던 인천의 청요릿집들 옛 청국조계지 밖의 청요릿집으로는 중앙동 대불호텔 자리의 중화 루, 중구 경동의 평화각, 신포동의 영풍루, 사동의 빈해루 등이 유명했 으나 다 문을 닫고, 현재는 중앙동의 또 다른 중화루, 진흥각과 신생동 의 신성루, 신흥동의 신일반점, 신동양 등이 요리와 함께 짜장면의 명 성을 이어가고 있다. 청국조계지 내에는 짜장면의 발상지로 알려진 공화춘이 대표적인 청요릿집이었다. 최근에 들어 많은 중국 요릿집들이 다투어 개업해 문 을 열고 있으나, 당시에는 대부분 무역상과 잡화상이 자리잡았다. 공화 춘과

그 맞은편에 있던 동흥루 등이 문을 닫은 뒤, 근래까지 근근이 명 맥을 이어오던 집은 풍미와 대창반점이 대표적이다. 3) 지난날 우리 생활 속의 짜장면 짜장면은 지난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입학 기념으로, 또는 졸업 기 념으로 모처럼 먹을 수 있었다. 할머니 생신날, 식구들이 중국집 방에 24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신성루 24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 25 들어가 먹던 그 기름지고 향기로운 짜장면의 냄새와 맛은 끝내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념으로 짜장면을 먹는 것도 사실은 좀 사는 집의 경우였다. 1970년대에 이를 무렵까지 우리나라 경제 사정 은 여전히 어려웠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민들이 중국집에 드나들 여유 가 없었던 까닭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생들은 신입생 환영회나 동창회 같은 때 추렴해서 짜장면을 먹었다. 또 주머니 가난한 젊은 연인들이 오붓하게 중국집 뒷방에 앉아 이 음식을 먹곤 했다. 물론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 은 흔히 점심식사 메뉴로 짜장면을 택했다. 인천의 어느 중국집은 1960∼70년대 대학생들이 배갈과 짜장면을 먹으면서 맡긴 당시의 시계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을

정 도로 짜장면은 이미 우리 생활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4) 수타(手打) 묘기와 함께 태어나는 면발들 짜장면하면 으레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수타면이었다. 밀가루를 퍼 넓은 반죽 판에 수북이 놓고 식용 소다를 첨가한 뒤 물을 부어 1차 반 죽을 한다. 소다는 알칼리 성분으로 밀가루가 끈기를 갖게 한다. 손으 로 꾹꾹 누르고, 굴리고, 치대어 한참 반죽을 한 후 그 반죽덩이를 어깨 넓이보다 더 넓게 늘이어 양손으로 잡고는 밀가루를 뿌린 넓은 도마 위에 여러 차례 내려친다. 그렇게 밀반죽을 더욱 차지게 한 후, 두 손으 26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로 그 양끝을 잡고 출렁출렁 길게 늘인다. 늘어난 면이 끊어지거나 땅에 닿지 않을까 염려할 때쯤이면, 두 손을 모아 늘어난 면발을 팽그르르 돌려 두 끝을 합친 후 다시 양끝을 잡고 출렁출렁 늘이고, 반을 접고, 하는 과정을 연속해서 반복한다. 가늘고 길게 늘어난 면발을 반으로 접을 때마다 면발의 수는 2, 4, 8, 16, 32 이런 식으로 계속 두 배로 늘어난다. 면을 늘이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 것이 몇 번째인가를 기억했을 것이고, 그래서 생기는 면발의 수효와 몇 그릇쯤 될 것인지 그

양을 훤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적당한 굵기와 적당한 양의 국수 가락이 완성되면 두 손아귀에 손잡이처럼 잡혀 뭉툭해진 부분을 큰 칼로 썩 베어 낸 다음, 면발을 한쪽 팔에 치렁치렁 걸친 채 화덕 쪽으로 가 끓는 물에 넣어 삶 는 것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이 장면이 수타 면발을 만드는 과정인데, 땅에 닿 을 듯 출렁출렁 길게 늘이는 그 동작은 정말이지 묘기를 보는 것처럼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5) 나무통과 철가방 짜장면을 이야기할 때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배달원들이 가지고 다니던 나무통과 후에 그것을 개량한 철가방이다. 1950년대에 이미 투박하게 생긴 나무통을 들고 배달원들이 가정집 26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 27 철가방 이나 사무실 같은 데에 짜장면을 배달했다. 전화기가 널리 보급되지 않 았던 때에는 중국집에 직접 가서 주문을 하고 돌아와서는 나무 배달통 이 어서 우리 집 대문으로 들어서기를 고대하던 기억이 난다. 훗날 전 화기가 상용되면서는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면 배달원이 들고 오거나 자전거에 싣고 오곤 했다. 배달이 늦어져 독촉 전화를 하면, 중국집 주 인은 전화를 한 곳이 어디인지

묻지도 않고는 무조건 떠났다고 말하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대략 1970년대 이후 가볍고 편리한 알루미늄 배달통으로 개량되어 무게 때문에 고생하던 배달원들의

프로젝트 정보

고객사
인천광역시 중구 누들 이야기
제작연도
2019
산업분야
public-institution
문서유형
전자책
조회수
2,501

설명

레거시 시스템에서 마이그레이션됨 (카테고리: 관공서)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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