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2┃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재난 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4·16재단은 참사의 고통을 몸에 새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반복되는 죽음들 앞에서 우리가 놓친 것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그 이야기 안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Ⅰ. ┃재난 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에 대해 4 Ⅱ. ┃참사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다┃ 6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유가족 김문수 편 1. [김문수 편] 카드 뉴스 2. [김문수 편] 더 자세한 이야기 Ⅲ. ┃참사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다┃ 58 씨랜드 화재 참사 유가족 이상학 편 1. [이상학 편] 카드 뉴스 2. [이상학 편] 더 자세한 이야기 Ⅳ. ┃참사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다┃ 110 세월호 참사 정부자 편 1. [정부자 편] 카드 뉴스 2. [정부자 편] 더 자세한 이야기 Ⅴ. ┃추모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피해자의 곁에 선 이웃들┃ 158 안산 시민 임남희, 김미숙, 이연우 편 1. [안산 시민 편] 카드 뉴스 2. [임남희 편] 카드 뉴스 3. [김미숙 편] 카드 뉴스 4. [이연우 편] 카드 뉴스 5. [안산 시민 편] 더 자세한 이야기 Ⅵ. ┃참사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다┃ 206 이태원 참사 이종철 편 1. [이종철 편] 카드 뉴스 2. [이종철 편] 더 자세한 이야기 CONTENTS 4┃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Ⅰ. 재난 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에 대해 4·16재단은 국내의 재난 참사와 재난 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시민분에게 알릴 수 있도록 카드 뉴스를 제작했습니다. 2022년부터 2023년 3월까지 ‘삼풍 백화점 붕괴 참사’, ‘씨랜드 화재 참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와 ‘안산 시민’을 대상으로 카드 뉴스를 제작해 SNS 상에 배포를 했습니다. 이번 카드 뉴스의 기획은 재난 참사 피해자의 권리, 그중에 추모(공간)에 대한 권리를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이번 카드 뉴스는 현재 재난 참사 피 해자의 추모(공간)에 대한 권리는 왜 이뤄지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 권리가 우리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재난 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에 대해┃5 ‘삼풍 백화점 붕괴 참사’와 ‘씨랜드 화재 참사’ 카드 뉴스를 통해 재난 참사 희생자의 추모 공간이 제대로 조성이 되지 않아 추모와 애도를 할 권리가 제 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안산시 민’ 카드 뉴스를 통해 현재 안산에 건립될 예정인 ‘416생명안전공원’을 중심으 로 추모(공간)에 대한 권리를 실현하는 과정을 보여줬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태원 참사’ 카드 뉴스를 통해 그동안 한국의 재난 참사의 흐름 속에서도 피해 자의 권리(진실을 알 권리와 추모할 권리 등)가 여전히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 실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카드 뉴스에서는 긴 인터뷰를 통해 나온 많은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핵심 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내용을 카드 뉴스에 모두 담기가 힘 들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E-Book으로 제작된 는 카드 뉴스가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게 되 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4·16재단은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꿈꾸는 일상이 안전 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생명, 안전, 약속을 실천해가고 있습니다.생명 과 안전이 존중되는 세상을 위해 앞장서 행동하는 이들을 지원하며,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잊지 않고 수많은 시민과의 연대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현재 기억과 추모, 안전문화 확산, 피해자 지원 및 공동체 회 복, 미래세대 지원사업을 활발히 시행해고 있습니다.
재단 사업의 자세한 내용은 4·16재단 홈페이지 및 SNS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으니 많은 참고 부 탁드립니다. Ⅱ. 참사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유가족 김문수 편 ① 무너진 것은 백화점만이 아니었습니다. 8 ② 말한 것과 다른 모습의 구조작업, 유가족이 직접 나섰습니다. 17 ③ 돈 때문에 일어난 참사인데, 추모공간이 돈 때문에 제대로 조성되지 못했습니다. 26 ④ 희생자를 위한 일이, 안전사회를 위한 일입니다. 35 8┃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1. [김문수 편] 카드뉴스 [김문수 편] 카드뉴스┃9 10┃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11 12┃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13 14┃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15 16┃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17 18┃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19 20┃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21 22┃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23 24┃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25 26┃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27 28┃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29 30┃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31 32┃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33 34┃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35 36┃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37 38┃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39 40┃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41 42┃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김문수 편] 카드뉴스┃43 44┃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2. [김문수 편] 더 자세한 이야기 추모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당신에게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11월 5일 ‘이태원 핼러윈데이 압사 참사’에 대해 보도하면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언급했다. 1995년 6월 29일 서울시 서초구에서 발생한 대형 백화점 붕괴로 1,4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참혹한 사건이다. 삼풍백화점은 강남 부유층을 상대로 한 호화로운 백화점이었다. 롯데백 화점 서울 본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 즐비한 명품매장과 고급식당. 외관을 감싼 핑크빛처럼 달콤한 꿈의 공간은 초고속으로 성장한 한국경제 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이 초고속 경제성장 중 무엇을 용인해왔는지”(워싱턴포스트) 또한 드러냈다. 삼풍백화점은 건축과 운영 과정에서 이윤을 위해 수많은 불법을 저질렀다. 불법은 너무 쉽게 묵인되었다. 돈의 힘이 생명의 소중함을 한참 앞질렀다. 워싱턴포스트는 이태원 참사가 “한국이 문화 중심지로서 전 세계에 존 재감을 높이던 중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워싱턴포스트가 환 기했듯, 1995년의 비극 이후에도 우리는 수많은 이들이 한곳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사건을 여러 차례 마주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우는 데 실 [김문수 편] 더 자세한 이야기┃45 패했는가. 아니면 우리가 배운 것을 쓸모 있게 만드는 데 실패했는가. 혹은 둘 다인가. 한국 사회는 수많은 이들이 한곳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사건과 여러 차례 마주했다. 그때마다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가. 어째서 이러한 일이 반복되는가. 우리가 과거로부터 배우는 데 실패했기 때 문인가. 아니면 우리가 배운 것을 쓸모 있게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인가. 무엇 에 실패했든, 모든 실패는 뼈저리다. 우리가 실패로 인해 잃게 되는 것은 사 람의 목숨이고, 그때마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함께 태어나기 때문이다. 아 픔은 앎이 되고, 앎은 삶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몇 번이고 다 시 돌아가야만 한다. 참사의 고통을 몸에 새긴 이들의 이야기로. 붕괴 1995년 6월 29일. 대구시에 직장을 둔 서른일곱 살 김문수 씨는 특별한 것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밥을 먹었다. 가족과 인사를 나누고 일터로 향했다. 며칠이 흐르면 기억에도 남지 않을 보통의 날. 두어 달 전 대구시 달서구에서 가스폭발 사고가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지만, 재난은 내 삶과 멀리 있는 일처럼 보였다. 보통의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할 일을 성실히 마치고 저녁 6시가 가까워질 즈음, 김문수 씨는 가전 매 장에 들렀다. 지인에게 줄 선물을 고르다 문득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던졌 다. 삼풍백화점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자막이 떠올랐다. 충격과 함께 불 안감이 엄습했다. 46┃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학수가 삼풍백화점에서 일한다고 했는데….” 3형제의 막내 김학수 씨는 당시 스물일곱
살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안 경사로 일하고 있었다. 김문수 씨는 곧바로 동생이 일하는 매장에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뚜- 뚜- 신호음만 들렸다.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연락을 했을 텐데….’ 작은 일도 상의하던 동생이었다. 김문수 씨는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했 다. 퇴근 후 어머니를 모시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새벽에 서울시청에 갔더니 상황실에 기자들만 바글바글했어요. 이 게 어떻게 된 일이냐, 동생을 어디 가서 찾아야 하냐. 누구 하나 답해 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부상자 명단이고 사망자 명단이고 아무것 도 없었어요.” 무너진 것은 백화점만이 아니었다. 재난 대응 체계도 폐허로 드러났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으려면 피해자가 직접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김문 수 씨는 가장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 병원 서너 군데를 돌았다. 모두 아수라 장이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삼풍백화점으로 달려갔다. “접근을 못 하게 막아놨더라고요. 경찰이 소홀한 틈을 타서 안으로 들어갔어요.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구급차 소방차가 쫙 깔 려 있었어요. 연기와 매캐한 냄새에… 그 북새통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김문수 편] 더 자세한 이야기┃47
망연자실한 김문수 씨 곁에 비슷한 처지의 실종자 가족들이 하나둘 모여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이자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렇게 실종자 가족 대책위원회(아래 가족대책위)가 만들어졌어요.” 무엇을 해야 할지, 김문수 씨 는 그때서야 조금 알 수 있었다. 책임 “왜 현장을 못 보게 하느냐.” “실종된 가족과 어떻게 연락하게 해줄 거냐.” “필요한 정보를 달라.” 서울시와 옥신각신 한 끝에 겨우 서울교대 체육관에 실종자 가족들이 머 물 공간이 마련되었다. 가족대책위는 자체적으로 실종자 접수부터 시작했 다. 서초구청이 사고 당일 밤부터 실종자 신고접수를 시작했지만 밀려드는 사람들을 제대로 응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실종자 현황을 파악하는 한 편, 대표단을 꾸려 참사 현장 파악에 나섰다. 생존자 구조와 사망자 수습이 야말로 급선무였다.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했어요. 생존자 가 있다면 곧 발견된다고.” 삼풍백화점은 A동과 B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무너진 A동과 무너지지 않은 B동. 그 사이 계단을 통해 구조작업이 이루어진다. 뉴스는 계속해서 그렇게 말했다. 48┃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사고 둘째 날인가, 현장에 가봤더니
해병대원들이 통로에 떨어진 돌 같은 걸 치우고 있는 게 구조작업의 전부인 거예요.” 현장은 추가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처음에 폭발로 오인되었을 만큼 건물이 폭삭 주저앉았다. 남아 있는 B동의 상태도 불안하긴 마찬가 지였다. “실종자 가족 스무 명이 계단실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어요. 천장은 금이 쩍쩍 가고 콘크리트 떨어지지, 화재로 연기며 유독가스도 계속 나오지. 지하 1층에 내려가니까 절반이 무섭다고 나가버렸어요. 지하 2층 내려가는 동안 또 절반이 나가버렸고. 지하 3층에 도착하니 나까 지 딱 두 사람 남았어요. 그 상황을 보니 군인들에게 적극적으로 구 조작업을 하라고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김문수 씨는 돌아와서 서울시에 말했다. “지금 사기 치는 거 아니냐. 이 게 무슨 구조작업이냐. 구조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 냐. 정보를 정확히 줘야 가족들이 그에 맞는 판단을 하지 않겠냐.” 삼풍백화점 A동은 시루떡이 쌓인 모양으로 완전히 포개어져 무너진 상 태였다. “제가 보기에 구조든 수습이든 하려면 부서진 구조물들을 위에서 부터 차근차근 들어내는 방법밖에 없었어요. 서울시에 물었어요. 왜 이 얘기를 실종자 가족들에게 안 하냐?
‘우리는 못 합니다. 그 말 하면 맞아 죽습니다’라는 거예요. 항의받는 게 겁이 나서 현실을 은 폐하고 사기만 치겠다는 거였어요. 현장을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김문수 편] 더 자세한 이야기┃49 없다는 뜻이었어요.” 구조 혹은 기적 “당신들이 말 못 하면 내가 말할게.” 김문수 씨는 직접 실종자 가족들을 모았다. 삼풍백화점 평면도를 보여주 며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구조작업하고 있다는 게 다 거짓말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정보과 형사들이 쫙 깔리는 게 보였다. 개의치 않 고 말을 이어 나갔다. “상황이 비관적입니다. 기둥 사이 공간이 생겨서 운 좋게 살아있다 하더라도 허송하면 못 살아 나와요. 우리가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장비가 들어가야 해요.” 뉴스를 통해 현장 소식을 접하고 있던 실종자 가족들은 김문수 씨가 거 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공간 있는 게 포클레인이 돌아다녀서 무너지면 어떡하냐! 저 사람 공무원 프락치 아니야!” 흥분한 사람들이 단상으로 뛰어올랐다. 김문수 씨의 옷이 찢어졌다. “가족들에게 현장을 직접 보고 오라고 제안했어요. 현장을 보고 오더 50┃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니 제 말에 공감하는 가족들이 많이
생겼어요. 투표를 다시 했어요.” 다음 날(7월 3일)부터 중장비가 투입되었다. “구조작업에 속도가 붙었죠. 그래서 3명이라도 구할 수 있었다고 생 각해요.” 붕괴 11일째 1명, 13일째 1명, 17일째 1명. 모두 3명의 생존자가 구조되 었다. 뉴스에서는 이 생환을 ‘기적’이라고 칭했다. 난지도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는 ‘이러다 시체도 못 찾는 거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커졌다. 가족을 찾은 사람들과 아직 찾지 못한 사 람들이 이런 인사를 나누었다. “축하합니다.”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수습 현장을 지키는 실종자 가족들의 상황은 처참했다. “장마철이라서 비가 엄청 많이 왔어요. 비 들이치는 천막 아래 스티 로폼 판 하나 깔고 앉아 있었어요. 춥고 처량하죠. 상황이 어떻게 돌 아가는지는 여전히 잘 알 수 없고.” 희망이 꺼져가던 무렵인 7월 9일 아침, 첫 생존자가 구조되었다는 소 [김문수 편] 더 자세한 이야기┃51 식이 전해졌다. 실종자 가족들은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구조 작업을 서울시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가 직접 나서라는 것이 주장의 요 지였다. “반포대교에서 경찰한테 막혔죠. 저 사람들 물 주면 청와대까지 간다고 그
더위에 물도 안 줬어요. 가족들이 탈진해서 수북하게 쓰러졌어요.” 그런 상황에서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를 촉발한 사건이 일어났다. “참사 현장에서 걷어낸 잔해물을 난지도(쓰레기 하치장)로 보낸 거예요. 물론 쓰레기로 취급한 건 아니겠지만, 하필 쓰레기장이라니… 거기 유품이나 시신 조각이 딸려갔을지도 모르잖아요. 유가족들이 감시 단을 만들어서 그 잔해물을 뒤졌어요. 아니나 다를까, 시신 조각들이 나왔어요.” 7월 18일부터 8월 14일까지, 난지도 등지에 분산 배치된 잔해물을 수색 한 결과 유골 142점이 발견됐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사망자 502명 중 작 은 뼛조각 하나도 찾지 못한 채로 사망이 인정된 사람이 31명이었다. 잔해 한 줌이 내 가족의 몸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간절함은 오로지 실종자 가족들 의 몫으로만 남겨졌던 것이다. 돈, 돈, 돈 7월 15일 마지막 생존자 구조 후 7월 20일 구조작업이 사실상 종료되었 다. 김문수 씨의 동생은 그즈음 발견되었다. 다행히 지문이 남아 있었고, 52┃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상의에서 명함과 신분증이 나와서 신원확인이 빨리 이루어졌다. 그러나 김 문수 씨는 현장에 일주일을 더 머물렀다. 남은 이들의
얼굴을 보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1995년 8월 17일 실종자 가족들과 서울시가 합의하면서 9월 4일부터 참 사 현장 철거에 들어갔다. 10월 9일부터는 서울시와 희생자대책위의 보상 안 협상이 시작됐다. 희생자대책위는 참사 현장을 추모공원으로 조성할 것 을 처음부터 명확히 요구했다. ‘희생된 502명을 기리며, 502평 규모의 공원을 조성하고 위령탑을 설치할 것.’ 서울시는 100평의 조정안을 제시했다. 삼풍백화점 부지를 경매를 통해 인수한 대상그룹이 그 자리에 주상복합 건물을 짓기로 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200평이라도 달라. 안 된다. 10평이라도 달라. 안 된다. 추모탑이라 도 하나 세우게 해달라. 그런 거 하나 세우는 순간에 땅값이 떨어진 다. 이렇게 계속 돈, 돈, 돈인 거야. 삼풍백화점 운영자들이나 불법을 묵인한 공무원들이 어디 사람 죽이려고 작정해서 백화점이 무너진 거예요? 다 돈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런데 이 사고가 터지고 나서도 계속 돈인 거야. 돈 때문에 비용 줄이고 돈 때문에 위험에 눈감으면 어떻게 되는지 여기에 오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교훈을 잊지 않으면 안전한 세상 안 만들어지겠습니까. 그런 호소가 다 아무
메아 리도 없었어요.” [김문수 편] 더 자세한 이야기┃53 무너지는 위령탑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추모공원은 결국 세워지지 못했다. 참사 현장으로 부터 5킬로미터 떨어진 ‘양재시민의숲’ 한구석에 위령탑만 덩그러니 설치되 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찾기도 힘든 그 구석에… 망자들하고 무슨 연고가 있는지 도 모르겠고… 그때 10평이라도 달라고 해서 참사 현장에 추모비라 도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게 지금 와서 제일 후회되는 일이에요.” 매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추모식은 ‘양재시민의숲’에 설치된 위령탑 앞에서 열린다. 세월이 흐르면서 추모식을 찾는 유가족들의 수는 천여 명에서 이백 명 남짓으로 줄었다. 유가족 외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거 의 없다. “(공원 관리 주체인) 서초구청에서는 앰프, 천막 두 동, 의자 몇 개 정도 지원해줘요. 그것도 우리가 부탁하니까 그나마도 해주는 거예요. ‘내 년에는 안 됩니다’ 그 말을 몇 년째 듣고 있어요. 심지어 위령탑이 곳곳에 금이 가서 붕괴될 처지에 놓여있어요. 보수 를 해주는 데가 없어요. 서울시에서 허가를 내주고 관리는 서초구청 에서 하기로 합의서를 한 장 썼는데, 그게 구속력이 있는 게 아니더 라고요.
추모비 관리 책임이 공식 문서에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어야 해요. 우리는 그때 아무것도 모르고… 보통 속상한 일이 아니죠. 고맙게도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에서 무료나 다름없는 비용으로 안 54┃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전진단을 해주셔서 서초구청에서 임시 조처는 해놨어요. 말 그대로 임시 조처죠. 근본적인 대책은 나 몰라라 하고 있어요. ‘양재시민의 숲’이 서초구청 관리 대상인데도 그래요.” 서초구청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 큰 책임이 있다. 삼풍백화점의 각종 위법행위가 서초구청 공무원들의 묵인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참사 후 이루어진 검찰 조사에서 삼풍백화점 인허가업무를 맡았던 서초구청 공무 원 5명이 네 차례에 걸쳐 6,050만 원의 뇌물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기억의 노래 통탄할 일은 또 있다. 그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유가족들은 추모식에 서 추모곡 대신 ‘애국가’를 불러왔다. 추모식의 사회를 쭉 맡아온 김문수 씨 는 이 상황이 몹시 괴로웠다고 말한다. “너무 미안한 거예요. 망자들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게. 국가도 같 은 가해자인데.” 김문수 씨의 의견에 동의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국민의례에 익숙한 고령 의 유가족들은 국가를 부르는
것으로 격식과 예를 갖추기를 바랐다. 그조 차 없으면 추모식이 초라하게 느껴진 것은 왜일까. 이것은 삼풍백화점 붕 괴 참사의 피해자들이 느꼈을 외로움의 방증은 아닐까. “지금은 우리가 마음을 기댈 데가 추모식밖에 없잖아요.” [김문수 편] 더 자세한 이야기┃55 유족회를 운영할 재원도 부족해 추모식도 십시일반 하는 상황이다. 그래 도 김문수 씨는 올해 큰 결단을 내렸다. “추모식 사회를 보다가 선언해버렸어요. 추모곡을 만들어 내년 추모 식에 헌정하겠다고. 모든 일을 위임해달라고.” 2016년 발간된 삼풍백화점에 관한 구술기록 에 참 여한 다섯 명의 기록수집가를 만나 노랫말을 부탁했다. 유가족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이다. 김문수 씨는 그간 유가족의 말 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준 이는 이 사람들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곡은 416 합창단을 지휘하는 박미리 씨에게 부탁했다. “‘추모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되게 중요해 요. 이대로면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의 추모는 직계 가족들이 사라지 고 나면 끝이겠죠. 그러고 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죽 은 참사’라는 기록으로만 남겠죠. 참사의 원인을 찾아내서 다시는 그
렇게 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은 사라지고 마는 게 아닌가. 노래로라 도 흔적을 남겨서 추모할 수 있다면,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더 생기지 않겠나.” 내 동생, 학수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막내가 태어났어요. 태어나는 걸 옆에서 봤죠.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는데, 우리 집이 좀 못 살았어요. 엄마가 농사로 만 자식들을 키울 수 없으니 화장품 외판원을 하셨거든요. 명절이면 56┃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수금하러 다니는데, 재 너머로 가면 하루 만에 못 와요. 오늘 집을 떠나 시면 내일 와요. 엄마가 가기 전에 쌀을 씻어서 담가놔요. 내일 학교 갔다 와서 이거 일어 건져서 반은 송편, 반은 시루떡을 해라. 그러면 내가 학교 갔다 와서 방아를 찧어와요. 그걸 혼자서 반죽하고 있으면 막내가 두레박 으로 물을 길어 와요.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은 어린아이가. 키가 작으니까 우물 안이 안 보이잖아요. 뒤꿈치를 들고 두레박을 끌 어 올리다가 두레박에 딸려서 우물에 빠져버린 거예요. 다행히 지나 가던 사람이 보고 건져왔어요. 물이 줄줄 흐르는 애를 안고 내가 얼 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죽었다가 살아난 애라서 명이 길 줄
알았어. 이렇게 빨리 갈 줄은 정말 몰랐어.” 김문수 씨에게 막내 김학수 씨는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동생도 형에게 그러한 애틋함을 느꼈다. “ 직장을 다니고 첫 월급을 받으면 보통은 부모님한테 선물하잖아요. 그런데 학수는 형 안경을 만들어왔어요. 학수가 만들어준 이 금테 안 경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써본 안경이에요.” 되게 착했어요. 정말 착했어. 김문수 씨는 동생을 떠올리며 이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사고 나기 전, 6월 18일이 우리 둘째 딸 돌이었어요. 조카 생일이라 고 학수가 여름휴가를 당겨서 오기로 했어요. 며칠 쉬었다 가려고 했 [김문수 편] 더 자세한 이야기┃57 죠. 근데 그때부터 백화점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배관이 터져서 물 이 새고 정전이 되고 비상 근무가 계속됐어요. 회사에서 휴가를 못 가게 한 거예요. ‘이런 위험한 곳에 출근을 못 하겠습니다. 매장을 본 점으로 다시 철수합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장님 말이 법인 거죠.” 세상의 법은 착실한 노동자의 편이 아니었다. 김문수 씨는 동생의 품에서 마지막을 함께한 명함을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닌다. 아침마다 출근할 때 동생을 깨워준 자명종, 거친 턱을 매끈하게 만 들어준
면도기도 몸 가까이 둔다. 동생이 늘 사용하던, 그의 몸이나 다름없 는 물건들과 삶이 다하는 날까지 함께할 생각이다. 이 세상에 김학수의 편 도 있음을, 학수에게 끊임없이 전하면서. 씨랜드 화재 참사 유가족 이상학 편 Ⅱ. 참사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다 ① 1999년 6월 30일, 그날 60 ② 한 공무원의 비망록에 적힌 진실 69 ③ 참사 현장 옆 야자수 카페 78 ④ 이게 다 지난 일 이라고요? 87 60┃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1. [이상학 편] 카드뉴스 [이상학 편] 카드뉴스┃61 62┃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이상학 편] 카드뉴스┃63 64┃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이상학 편] 카드뉴스┃65 66┃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이상학 편] 카드뉴스┃67 68┃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이상학 편] 카드뉴스┃69 70┃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이상학 편] 카드뉴스┃71 72┃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이상학 편] 카드뉴스┃73 74┃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이상학 편] 카드뉴스┃75 76┃재난참사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다 [이상학 편] 카드뉴스┃77 78┃재난참사와 피해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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