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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from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그대들에게  인의 아내였지요. 피고인은 이전에도 아내에게 몹쓸 행위      용서해야 되는 순간이 찾아왔고, 벼랑 끝에 혈혈단신으로
            를 여러 번 한 전력이 있었는데, 결국 이렇게 참혹한 행위                  서 있는 것 같은 순간도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이
            까지 벌이고 말았습니다. 사실 당시 재판부 배석판사의 표                   해되기 시작했고, 그렇게 의뢰인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
            정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원래 우리 법은 공소장일본주                    마 경험했던 수많은 인생들은 고스란히 제 안에 누적되어
            의(公訴狀一本主義)를 채택하고 있어서 1회 공판기일에는                    이제는 그 누구도 섣부르게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못하도록
            공소장 이외에 다른 증거들을 전혀 보지 않은 상태로 판사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의뢰인들과의 시간이
            는 피고인을 처음 대면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소장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만 읽었을 뿐임에도 배석판사가 어찌나 피고인을 노려보던
 동부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변리사
            지. 정말 눈빛에 분노가 가득 차 있더라고요. 그만큼 피고인                    지면이 짧아서 간단하게 언급해야 하는 것이 아쉽지
 임지선 변호사
            의 행위가 끔찍했던 것인데,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내는 또                   만, 세상의 기준과는 분명 다른 가치를 따라 묵묵히 걸어가
            다시 남편을 용서하고, 재판부에 고소취하서와 처벌불원                     는 동료 변호사들. 그런 동료 변호사들을 통해서 얻는 영감
            서, 탄원서까지 정성껏 작성해서 넣었습니다. 한 인간으로                   과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안도감. 그로 인한 자긍심. 제가
            서 그 아내의 삶이 어찌나 기구하고 처량하던지. 인생에 따                  삶에서 느끼는 감사와 기쁨의 순간에는 언제나 그들이 주
            르는 고난과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서 저 역시 사건을 마치                   는 이러한 감정들이 함께 했습니다. 인생은 늘 고락(苦樂)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동부지방법원 앞에서 동부 법률  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고 나서도 한동안 우울감을 떨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함께하기에 항상 즐거울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항상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임지선 변호사라고 합니다. 이렇                               힘든 것만도 아니기에, 이런 동료들과 함께라면 기꺼이 버
 게 지면으로나마 후배님들을 뵙게 되어 참으로 반갑고 영  제가 그렇게 느끼게 된 이유는 첫째가 의뢰인들이고,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온 힘을 다해 지켜주는 일. 악  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일천하지만 그래도 변호사로
 광입니다.   둘째가 바로 변호사 동료들입니다. 그리고 제가 정말로 후  의적인 고소인의 무고로 수 년 간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사   서 만 9년을 살아보니 우리 사회는 여전히 변호사라는 직업
 배님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은 바로 지금부터가 시작입  사건에 메였던 피고인들의 무죄가 확정된 순간, 이전에는   만 가지고도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듯합
 제가 처음 대학에 입학 했을 때 선배들이 이런 얘기를   니다. 저는 운 좋게도 개업을 하면서 형사 사건을 많이 다루  막연하게 피고인들이 정말 기뻐하거나 분노할 거라고만 생  니다. 그리고 그 기회들은 작게는 한 개인에게, 크게는 우리
 하더군요.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어. 여자, 남자, 공  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피고인들의 수가 대강 세어도   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순간들이 닥치자, 피고인  사회나 국가 전체에까지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일들이고
 대여자!” 네, 맞습니다. 저는 여자이지만 여자에 속하지 못  200명이 넘네요. 물론 그 중에는 이름조차 생소한 피고인  들은 하나같이 다들 그저 서럽게 엉엉 울기만 할 뿐이었습  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선한 의지만 갖는다면 얼
 했던 바로 그 공대여자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뼛속부터 이  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름은 희미해도 그들이 제 삶에 남  니다. 지금도 문뜩 그 때를 떠올리면 그 울음 섞인 목소리가   마든지 타인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
 공계였던 저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변호사라는   긴 흔적들은 모두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것들입니다. 도저  너무나 생생히 기억나서 눈물이 글썽이곤 합니다.  이고, 지금 여러분은 바로 그런 자격을 얻기 위한 시간을 가
 직업을 가질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야말  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일. 사실 저는 그 일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로 변호사가 되고 나서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생각해  피고인을 통해서 처음 경험했습니다. 존속폭행의 죄명으  갓 서른이 된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고 술에 의존하
 보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였을까요. 어릴 때부터 변호사가   로 만난 피고인이었는데요, 당시 초년 변호사였던 저는 구  며 지내다가, 다른 가족들을 상대로 부린 행패가 쌓여 결  저는 후배님들이 ‘아직’ 법무부로터 변호사 자격증을 받
 되고 싶었다는 동기나 동료들을 만나면 늘 마음 한편으로   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접견을 위해 제 앞에 앉은 피고  국 형사 절차까지 오게 된 피고인도 있었습니다. 그의 행위  지 못했을 뿐, ‘이미’ 모두가 그런 변호사라고 생각합니다.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나  인을 향해 있는 힘껏 적대의 눈빛을 쏘아 보냈습니다. 왠지   는 분명 위험한 측면이 있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 한   그리고 그러한 후배님들로 인해 변화될 법조계와 우리 사
 름의 철학이나 소명의식이 부족하다는 열등감이 있었던 것   ‘내가 비록 당신을 변호하지만 당신은 비난 받아 마땅해요.’  명은 끝까지 그의 편을 들어줘야 할 것 같았고, 그래서 정  회에 대하여 언제나 기대하고 응원하는 마음입니다. 여러
 같습니다.  라는 시그널을 보내야 할 것만 같았거든요. 하지만 사실 그  말 그 사건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분들의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는 지독한 가정폭력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 때 저는 그래야만 그 피고인이 남은 인생을 버틸 수 있을
 그렇게 변호사이면서도 변호사라는 직업이 낯선 채로   힘이 없을 때 사회는 그를 악으로부터 구해 주지 못했던 것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변호사로서 저의 시작은 제 나름의
 변호사 일을 한지도 어느덧 햇수로 십 년이 되었습니다. 십   이죠. 물론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되겠지만 적어도 저는   기준에 따라 피고인들을 판단하거나 비난했고, 의뢰인들이   임지선 변호사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 말은 진짜인가 봅니다. 이제 저  그를 변호할 명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해가 안 된다며 답답해하기도 했습니다. 어리석게도 그
                                                              現 동부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변리사
 는 제가 천생 변호사라고 생각하거든요. 법대가 아닌 공대  런 제 모습이 정의롭게 느껴져서 내심 스스로 만족스러워
                                                              現 법조신문(구. 대한변협신문) 신문편집위원회 간사
 를 진학했던 것조차 이제는 변호사가 되기 위한 큰 그림이  유사강간 사건도 기억이 납니다. 피해자는 바로 피고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런 제게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現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법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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