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5 - 세명대3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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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된 중간 규모의 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특히 한의예과의 신설은 충북권 여러 대학의 치열한 견
제1편
제를 뚫고 이뤄낸 결과로서, 이후 우리 대학교의 위상과 이미지를 드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대학의 역사_
30년의 발자취
한편, 새로운 학과 증설과 더불어 야간학과를 집중적으로 증설했다. 행정학과처럼 처음부터 야간학과를
개설한 예도 있지만, 대개는 기존 학과에 야간학과를 증설하는 식으로 학사 개편이 진행됐다. 1992년에
영어영문학과와 전자계산학과에 야간학과를 집중적으로 증설한 이후, 경영학과/일어일문학과/행정학과/
제2편
회계학과/정보처리학과/전기공학과/전자공학과에도 야간학과를 증설했다. 야간학과에는 직장인이 많았 교육활동
고, 교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도 있었다. 이들에게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우리 대학교는 지
역사회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 대학교는 실용적인 학문을 전수하는 학과를 신설하고, 기존 학과에 야간학과를 증설하며, 제3편
이미 배정받은 정원을 조금씩 늘려나가는 방식을 통해 급속도로 그 규모를 키워나갔다. 강의실에는 밤 늦 연구활동
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으며, 교수들은 밤낮으로 강의하느라고 바빴다. 그리하여 1995년 무렵에는 야간부
를 포함하여 32개 학과 1,270명을 모집하는 규모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제4편
학생기구 및
3. 대학본부의 편제 변화 학생활동과 지도
1992년에 대학 규모가 확장되면서 이전까지 통합되어 있었던 교무처와 학생처가 분리되었다. 이후 교
무처장은 염재선(1992.03.~1994.02.), 정우택(1993.03.~1995.02.) 교수가 이어가며 맡았고, 학생처장
은 윤석창(1992.05.~1995.02.) 교수가 맡았다. 1993년에는 2부 교학처를 신설하여 야간학과의 증설에 제5편
대외교류·협력과
따른 업무를 맡도록 했는데, 정우택 교수가 처장을 맡았다(1993.03.~1996.02.). 사무처장은 이하준 교수 지역사회 활동
에 이어 김현준 씨가 맡아 오랫동안 그 임무를 수행했다(1994.09.~2000.02.). 그밖에 1993년에는 학생생
활연구소와 산업기술연구소, 인문사회과학연구소 등의 교내 연구소를 처음으로 설치했다.
제6편
교육행정,
4. 학군단·교직과정·대학원의 설치 재정 및 시설
이 무렵에 설치된 교직과정이나 학군단도 대학의 성장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 1992년도에 설치된 교직
과정은 많은 졸업생을 교직으로 내보내면서 우리 대학교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1993년
제7편
에 창설된 ‘183학생군사교육단’도 이런 면에서 긍정적인 구실을 톡톡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학원 및
아울러, 대학원과 특수대학원 과정이 개설되었다. 1994년에 대학원 및 교육대학원 설립인가를 받아 대학 부속기관
1997년에 첫 석사학위 졸업자를 배출했다. 대학원장은 김엽 총장이 겸임했고, 교육대학원장은 조병춘
(1995.3.~1996.12.), 정우택(1997.8.~1998.2.) 교수가 맡았다. 그 밖에도 1995년에는 산업경영대학원
(후에 경영행정대학원으로 바꿈) 설립인가를 받아 졸업생과 지역사회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이뤄
지기 시작했다. 초창기 이 과정은 지역 출신인 정우택 교수가 맡아 관리했다. 이것이 기초가 되어 훗날 ‘고
위관리자 과정’을 개설할 수 있게 되었다(1996년에 개설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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