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0 - 세명대3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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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준비와 설립의 시기_
SEMYUNG UNIVERSITY 30th ANNIVERSARY
설립운동기로부터 1991년까지
설립자 민송 권영우 박사의 남다른 희생과 도전정신에 힘입어 1991년도에 개교한 우리 세명대
학교는 최초 입학정원 400명의 학생과 교수 17명, 직원 20명으로 출발선에 섰다. 중부권 명문
사학으로의 도약을 향해 출발한 우리 대학의 대장정을 이끈 초대 학장은 김엽 박사였다.
제1절 대원교육재단의 대학설립운동
1. 충북 제천시에 대학을 유치하기까지
충청북도 제천시에 우리 대학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지역사회의 여망과 설립자 권영우 박사의 남다른
의지가 합쳐지면서 가능했다. 바야흐로 경제성장이 봇물처럼 이루어지던 시기에 철도교통의 요충지라는
이점에 기대어 성장한 제천시는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고 있었고, 권영우 박사는 1980년대 초부터 제천시
고암동, 천남동 일대에서 대학을 세우기 위한 터전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었다. 대원교육재단 명의로 진행
된 몇 차례의 시도는 당시 문교부 당국의 허락을 얻지 못해 일단 좌절되었다. 그러나 이는 지역대학 유치
가 지역사회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임을 직감한 제천시와 제천군의 적극적이고도 경쟁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맨 처음 대학 설립 후보 지역으로 검토된 곳은 당시 제천군에서 적극적으로 추천한 명도리였다. 그러나
고압선 철탑을 이전하는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 그 다음으로 제천시에서 제시한 신월동 산자락이 대학 설
립을 위한 터전으로 확정되었다. 그곳에는 ‘세월리’라는 작지만 아름다운 마을, 그들이 기대고 살았던 약
간의 경작지와 과수원, 한양 조씨 문중묘를 비롯한 7백여 기의 분묘가 있었다.
19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대학 설립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1987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여
당 후보가 제천에 대학을 설립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걸 만큼 외부 조건도 좋아졌다. 그 결과 1988년 초에
는 제천시 당국과 주민의 적극적인 협조를 등에 없고 1,595,528㎡의 토지를 확보하여 대학 설립 신청서를
200 세명대학교 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