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3 - 세명대3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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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설
제1편
개교 당시 우리 대학은 두 개의 건물로 출발했다. 교양관과 기숙사 1동이 전부였다. 기숙사(신월학사)에서는 대학의 역사_
30년의 발자취
245명의 학생이 생활했다. 후학기에 접어들면서 연구관과 지원시설인 중앙공급동이 준공되었다. 가파른 구릉
을 깎고, 교양관과 연구관 공사과정에 나온 흙으로 골을 메워 만든 운동장은 미처 제 모양을 갖추지 못해 행사가
있을 때면 충현고 운동장을 빌려 썼다. 지금의 동문에 해당하는 대학 진입로는 포장조차 되지 않은 상태였다. 제
제2편
대로 된 식당조차 없었기 때문에, 교양관 옆에 공사장 인부들을 위해 임시로 설치해 둔 밥집을 이용해야 했다. 교육활동
3. 교수와 학생
출범 당시 우리 대학 구성원은 학장과 17명의 교수, 400명의 학생,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20명의 교 제3편
직원이 전부였다. 개교 당시에 초빙된 17명은 국어국문학과의 조병춘·이하준·권명옥 교수, 영어영문학과 연구활동
의 이건수 교수, 법학과의 이훈동 교수, 경영학과의 염재선·박영배·송준기 교수, 수학과의 김진천 교수, 물
리학과의 조성구·임의순 교수, 전자계산학과의 박덕원 교수, 전기공학과의 류주현·황락훈 교수, 전자공학
과의 윤석창·김지홍 교수, 자원공학과의 정문영 교수였으며, 2학기에는 경영학과의 신성환 교수와 자원공 제4편
학생기구 및
학과의 류필조 교수가 부임했다.
학생활동과 지도
교직원으로는 총무부장 김원한, 학생주임 류용우, 총무주임 김홍기, 교무주임 김종서, 전기기사 윤선호,
기관실 박만수, 기숙사 최승시와 권영민, 그리고 일반 직원으로 이석구·김국원·이성균·차재홍·김영도·이운
용·최옥영·신정옥·이경숙·권기순·최윤정·김순희 등 제씨가 개교를 앞두고 세명가족이 되었다. 제5편
대외교류·협력과
첫해에 우리 대학은 10개 학과에서 신입생을 40명씩 뽑았다. 3,809명이 지원하여 평균 9.52대 1의 경 지역사회 활동
쟁 속에 선발된 학생들은 서울 등 수도권 출신이 127명(32%), 충북 출신이 138명(35%)이었으며, 충북과
강원·경북을 포함하면 205명(51.3%)이었다. 대학 설립 당시에 기대했듯이 인근 7개 시·군에서 졸업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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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 많은 고등학생이 우리 대학으로 진학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육행정,
재정 및 시설
4. 교육과정과 대학문화
당시 졸업에 필요한 학점은 140학점이었다. 개교 초기에는 저학년만 있었기 때문에 강좌 대부분이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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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또는 전공기초과목이었다. 당시 국어/교양영어/법학개론/영어회화/경제원론/한국사/철학개론/교 대학원 및
양한문/전산개론/체육/작문 등 열 개 남짓한 교양필수과목이 있었는데, 전임교수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 대학 부속기관
위 내에서만 개설되었다. 학생들은 한 학기에 21학점까지 수강할 수 있었다.
첫해에 ‘개교자축 체육대회’, ‘청룡축전’이 시작되었으며, 부대행사로서 국어국문학과의 시화전, 연극 동
아리의 연극공연이 학생과 교수, 지역민들의 참여 속에 열렸다. 전체 재학생의 절반 이상이 기숙사에서 생
활했지만, 자취나 하숙을 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교내외에 학생들을 위한 문화공간이나 프로그램이 전혀
없다시피 하던 시절이었지만, 새로운 역사를 쓴다는 열정으로 모두 열심히 공부했다.
SEMYUNG UNIVERSITY 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