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대전보건대학교 2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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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19와 2020년, 그리고 21학번

           얼어붙은 2020, 우리는 스물이다






             코로나19, 스물이라는�우리의�초고를�송두리째�잠식한�단어. 최초이자�최종으로�남아야�할�일대기의�첫�장은�난수표로�채워져�간다. 그럼에도�우리는
           한�시대를�향유하는�교집합�속에서�희망의�불씨를�지펴낼�힘을�가졌다.
             ‘시작은�희미하지만, 끝은�창대하다’라는�구절을�땔감�삼아�말이다. 수습기자라는�이름으로�신문사에�모인�우리의�교집합은�연료림(燃料林)이다. 이번
           호에서는�스물이라는�새�도화선에서�우연하게도�이례적인�현실을�직면하고�있는�수습기자들의�이야기를�녹여내�보았다. 무의미한�난수표를�잿더미로
           만들기�위해서�우리의�기고는�점화기가�된다. 우리는�펜�대신�횃불을�치켜들었다.


                                                                               다행이다



                                                                                |  수습기자. 정아빈

                                                                                  어느새�무더운�여름. 우리의 20살은�어떻게�지나가고�있을까?
                                                                                  친구들과�대학교�캠퍼스를�누비며�다니는�상상을�하며�새내기를�꿈꿨다. 하지만
           온라인 21학번                                                             코로나 19 때문에�방안에�갇혀�살며�상상이�현실에서�멀어져�가는�게�느껴졌다.

                                                                                그러던�중�대면�수업으로�바뀌었을�때�나는�기쁨보다는�걱정이�앞섰다. 가장
                                                                                먼저�든�생각은 ‘학교는�안전한가?’였고, 다음은 ‘친구는�사귈�수�있을까?, 내가
            |  수습기자. 김규리
                                                                                학교생활을�잘할�수�있을까?’였다. 그렇게�걱정으로�며칠�밤을�지새웠다.
              2020년, 성년이�되고�졸업을�앞두고�있을�때�코로나가�우리나라�전역을�강타                         시간이�흘러�대면�수업으로�어색한�공기가�흐르는�강의실�안에�나는�첫발을
            했다. 10대의�마지막�졸업을�앞두고�있었던�나는, 모든�학교의�졸업과�입학이                         내디뎠다. 기숙사에서�강의실로�가는�길에는�소독제를�들고�소독하시는�분들
            간소화되어야�한다는�정부의�지침을�들었을�때, 아쉽고�허탈했다. 고등학교                            로�가득했다. 그래서�내�걱정�중�하나가�사라졌다. 그리고�아직�어색한�우리는
            졸업, 그리고�대학교�입학은�진짜�어른이�되었다는�또�하나의�증표였는데, 코로나                        나만�느끼는�게�아니라�참�다행이었다. 그렇게�걱정 2개가�사라졌다. 마지막으
            때문에�한순간에�사라지고�만�것이다.                                                로�친구들과�어울리며�다니며, 원하던�교내�신문사에�들어와�기사를�쓰고�있는
              처음, 2주간�강의가�미뤄졌을�때엔�그래도 3월�중순까지만�기다리면�학교를                         지금에서야�느낀다. 나는�학교생활을�누구보다도�알차게�보내고�있다.
            가고 OT(오리엔테이션)가�진행될�예정이었으니�그�날만�오기를�기다렸다.                              나와�같이�학교생활에�대해�걱정을�한�학우들이�있을�거라�생각한다. 막상
            하지만�코로나의�확진자가�급속도로�퍼져나가�제때�개강을�못하게�되었고,                             부딪혀보니�학교에서�소독은�매일�해주셨고, 모두�비슷한�고민을�하고�있었다.
            결국 OT마저�취소되고�말았다. 아무것도�모르는�상태로�학교�생활을�하게�된                          그리고�학교생활은�적응할�만했다. 이�글을�읽는�학우들에게�말하고�싶다. 걱정
            나와�친구들은�장난스레 “우리는�내년�후배들이�들어오면�가르쳐�줄�수�있는                           때문에�두려워도, 무엇이든�해�보자. 다행스럽게도�마주해야�했던�많은�걱정들
            것이�아무것도�없다”, “이번�해를�아예�없었던�해로�하고�내년부터�다시�시작하                        은�생각보다�더욱�다정했다.
            자”라는�말들을�주고받기도�하였다. 그런데�시간이�지나고�점점�개강이
            늦춰지고, 점점�농담처럼�나누던�그�말은�현실로�다가왔다. 우리는�대면�강의
            대신에�온라인으로�강의를�진행하였고, 수강신청도�오리엔테이션�시간�없이
            조교 선생님의�카톡을�통한�간단한�설명만�들은�후�바로�시작하였다. 온라인�수업
                                                                                        감정의 사이렌, 코로나 레드
            을�진행하면�할수록�내가�진짜�대학생이�맞는�것인가, 이�상태로�대면을�할
            바엔�차라리�휴학을�하고 21학번으로�새롭게�시작을�하는�것이�맞지�않나
            하는�생각이�들었다.
                                                                                        |  수습기자. 이예림
              결국 2학기부터�대면수업이�진행되는�것으로�결정됐다. 그리고�그때가�돼서야
            처음으로�같은�과, 같은�반�친구들과�만나게�될�것이다. 이�사실에도�큰�아쉬움                                  부푼�가슴으로�맞이한�대학생활의�시발점은�혼란�그�자체였다. 전염병�확산
            이�들지만�더욱�무서운�사실은�만약�코로나의�확진자수가�줄지�않고�계속�이어                                  으로�빚어진�사상�초유의�온라인�개강은�우리�모두에게�크고�작은�불안감을
            진다면 1년�내내�온라인으로�수업을�들어야�한다는�점이다…. 그렇게�된다면                                   품게�했다. 아무도�예상치�못한�상황이었기에�여론은�물론�언론까지�휘청이는
            나의 20살, 새내기로서의�추억은�쌓지도�못한�채�없어져�버리는�것이니�분명히                                 모습을�지켜보며�적잖은�초조함�속에서�하루하루를�연명해�나가듯�생활했다.
            허탈하고, 슬플�것이다.                                                                 이러한�불안감은�이내�분노로�변질하였다. 많은�사람이�코로나�블루를�겪었던
                                                                                        것처럼, 나에게는 ‘코로나�레드’(필자의�분노심을�코로나19와�연관�지어�표현한
                                                                                        말장난)가�찾아온�듯했다. 사소한�일에도�크게�분노했고, 순간�치밀어�오른
                                                                                        분노는�나의�정신을�오랫동안�지배했다.
           스무살 경민이의 일기                                                                    이�때문이었을까. 나의�분노를�참으로�괴상하고�다양한�방법으로�표출했고,
                                                                                        그�대상�중�하나가 ‘대학’이었다.
                                                                                          강의노트�속�빼곡한�활자와�도무지�이해할�수�없는�교수님의�음성. 이�모든�것이
            |  수습기자. 유경민
                                                                                        지식�대신�불쾌감만을�준다고�믿었다. 나의�지식을�평가하는�위치에�선�이들이
             2월�중순, 대학�합격�전화를�받은�순간이�아직도�생생하다. 수시 6광탈을�한�나에게�합격�전화는�더                   나를�이단아라고�지칭해도�좋았다. 매일�주어지는�강의와�과제들을�멀리하고,
            짜릿했다. 그렇게�나는�고3 신분에서�벗어나�처음으로�제대로�된�해방감과�자유를�느꼈다. 마시는�공기                    부족하지도�않은�잠을�청하거나 SNS에�같잖은�분노를�표출하며�시간을�보냈다.
            조차도�다르게�느껴지기�시작한�그�날부터�나는�새내기가�될�준비를�시작했다. 마침�유튜브�알고리즘                      이처럼�감정은�꾸준히�적신호를�울려대었다.
            은�옷은�어떻게�입어야�하는지, 수강�신청은�어떻게�하는�게�좋은지, 학점은�어떻게�관리해야�할지에                       그러던�어느�날, 집�근처의�카페를�찾았다. 많은�테이블에서�사이버�강의를
            관련된, 새내기를�위한�영상으로�나를�이끌었다. 그리고�나는�대학교에�입학하지도�않았지만, 마음만                      시청�중인�학생들을�목격했고, 회의를�느꼈다. 많은�이들이�사회적�혼란
            은�벌써�파릇파릇한�새내기가�되어�있었다.                                                     속에서도�학업이라는�본분을�잊지�않고�노력하는�데에�반해�타인과�사회를
              그러나, 코로나�사태로�인해�대면�개강이�자꾸자꾸�미뤄졌다. 그렇게�시간은�흘렀고�어느새 6월이�되었다.                탓하고�있는�내가�미워졌다. 그래서�생각했다. 세상의�흐름에�발맞춰�변화시킬
            내가�스무�살이�되고�가장�하고�싶었던�세�가지가�있었는데, 첫�번째로는�좋아하는�팀의�경기를�직접�보러                  필요가�있다는�것을. 더는�지체할�시간도, 여유도�없었다. 비워진�커피잔을
            가기, 두�번째는�심장이�두근거리는�연애하기, 그리고�세�번째는�친구들과�시간을�맞추어서�국내�여행을                    등지고�집으로�향했다.
            떠나기가�있었다. 하지만�나는�세�가지�중�그�무엇도�이룰�수�없었다.                                       언제까지고�적신호만을�울려댈�수는�없었다. 신호등의�적색등도�때가�되면
             첫�번째로, 내가�보고�싶어�하던�경기는�모두�무관중으로�진행되어�경기를�직접�보러�갈�수�없었다. 두�번째               녹색등을�밝히듯, 나의�감정도�안정을�되찾아야�했다. 방문을�굳게�닫고�노트
            로, 집에만�있어�사람을�만날�일이�없던�나는�연애와�썸과는�멀어져갔다. 세�번째로, 코로나�사태로�인해                  북과�책을�펼친�채로�날이�밝도록�책상�앞을�떠나지�않았다. 졸음이�밀려오게
            친구와�얼굴�한번�보기도�쉽지�않아�여행은�꿈도�꿀�수�없게�되었다.                                      되어서야�창을�넘어�내리쬐는�햇볕을�취침�등(就寢燈)으로�삼고, 지저귀는
              종강이�얼마�남지�않은�지금, 매일�집에서�강의를�듣고�게임�하기를�반복하고�있다. 집에만�있어�많이�답답               새�울음소리를�요람가�삼아�잠을�청했다.
            하고�친구들이�그립지만�스무�살, 어른이기에�외로움과�답답함을�이겨내기로�마음먹었다.                               나의 ‘코로나�레드’는�이리도�허무하게�종지부를�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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