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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정조는영조대의관찬백과전서인『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를개정하는한편새로운전국지리지편찬을시도했다일명『해동여지통재(海東輿動』라고불리는『해동읍지(海東邑誌)』가그것이다『해동읍지』편찬작업은1788년(정조12)에읍지를올려보내도록하는규장각의지침이전국각군현에하달되면서시작되었다정조는1789년(정조13)부터규장각의신진기예들을동원하여『해동읍지』편찬을독려했다그결과1790년경에는40책이1796년경에는60책의『해동읍지』가편찬될수있었다그러나1800년(정조24)에정조가급작스럽게죽음을맞이함으로써이책은끝내완성을보지못하고말았다비록완성되지는못했지만정조는『해동읍지』를통해『동국여지승람』과『여지도서』의형식이가진장점들을모두취합함과동시에『삼보황도(三輔黃圖)』의체제에따름으로써자신의통치이념에맞는정리된전국지리지편찬을이루어낼수있었다18세기가전국지리지편찬이추구된시대였다면19세기는도별지리지(도지)편찬이시도된시대였다경기도의도지만보더라도1842〜1843년3책의『경기지谅幾誌)』18기년6책의r경기읍지(京幾邑誌)』그리고1894년3책의『기전읍지(幾甸邑誌)』가각각편찬되었다『경기지』는『여지도서』에비해시문•문장•인물•과거합격자•선생안등지역내인문적요소가강조된반면군현의재정기능에대한기록은소략해진특징을가지고있다『경기읍지』는대원군정권이군사적인목적하에서지도와지지편찬을시도한결과로만들어진것이었다신미양요로인한군사적필요성때문에만들어진이읍지에는군사적•재정적내용이상세하다『경기읍지』단계에서읍지는더이상인문지리서로서의종합적체제가강조되지않았다이런경향은1894년에편찬된『기전읍지』로이어졌다읍사례가강조된『기전읍지』는읍지의성격이지방재정자료집으로변화되어갔음을보여준다조선왕조최후의도지편찬은1899년에시도되었다1899년에편찬된도지는현재남아있지않지만그일부를이루었을개별읍지로서의『부평부읍지(富平府邑誌)』가현재규장각에전한다조선전기의『동국여지승람』을개정하는차원에서시작된조선후기지리지편찬은『여지도서』와『해동읍지』를거쳐19세기도지편찬으로이어졌다주목할사실은『동국여지승람』을개정한최초의성과물인『여지도서』에서부터읍지의부도(附圖)로서군현지도가수록되기시작했다는점이다r여지도서』는이런관행을만든매우중요한저작인셈이다『해동읍지』는현재전하지않는다그러나『여지도서』체제를참고해만들어진『해동읍지』역시군현지도에관한한『여지도서』의전례를따랐을가능성이농후하다19세기의도별지리지인『경기지』•『경기읍지』•『기전읍지』•『부평부읍지』(1899)등에서도이런경향은일관되게계승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