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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부천의경지이용상황을살펴보면경자면적에대한식부면적의비율을나타내는경지이용도가1964년에는1037%이었던것이시승작이후인1975년까지1222%로지속적으로증가하였으나그이후계속감소하여1985년에는93298년에는738%로감소하였다이러한경지이용도의감소는여러가지원인에의해나타나는현상이겠지만그중하나는농민의고령화로인해농지가있더라도경작을하지못하는경우가점차증가하고있다는것이다따라서부천시와영농기관은적은농경지일지라도경지이용도를제고하여농산물생산량을증가시킬수있는적극적인대책을강구할필요가있다2농업정책의변천1)1960년대이전의농업정책전통사회에서는농업이주된산업이었던만큼역사적으로농업생산에대한관심이컸다특히동양적전제군주국가인조선은조용조(租庸調)체제에의한농업잉여수취를존립의기반으로삼고있었기때문에농민수탈과더불어농민보호와농업생산유지가긴요한과제였다조선후기에는이앙법(移秋法)과경종법(耕種法)이널리보급됨에따라농업생산력의향상과함께광작擴作)경영이확대되어갔다이에따라토지소유의집중경향이나타나면서능민분화가뚜렷해지고다수의농민은소작농으로전락했다또한삼정(三의문란이겹쳐일부지주와부농을제외한농민은고율의소작료(50%)와과중한조세부담에시달려야했고이로말미암아전국각지에서민란이일어났다정부는삼정을개혁하고농민경제를안정시키기위한몇차례의시도를하였지만큰효과를보지못한가운데외압에의한개항을맞게되었다무력을앞세워강제로불평등조약을체결한일제는조선침략을본격화하기시작하였다조선에침투한일본제국주의는개항직후인1890년대부터자유무역을구실로조선미의일본반출에혈안이되었다일제는미곡과대두(ᄎM)를비롯한조선의농산물을값싸게수입하여일본본국노동자의저임금유지기반으로삼았고그대신면제품등의공산품을수출하여일본자본주의발전을위한시장으로조선을이용하였다이때까지는일본인의조선내토지소유가법률적으로금지되어있었던만큼일제의조선농민수탈에는어느정도한계가있었다일제는1905년을사조약체결이후조선의화폐재정주권을탈취하고일본인의토지소유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