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0 - 신세계shinsegae cat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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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Heritage Image Partnership Ltd / Alamy Stock Photo













                                                                                                                                                                                                                            브루노 발터가 지휘한 말러 교향곡 1번 음반.
                                                                                                                                                                                                                            발터는 말러의 제자였던 만큼 누구보다 말러의
                                                                                                                                                                                                                            음악에 정통했다. 말러 교향곡 1번의 전통적
                                                                                                                                                                                                                            명반이다.





                                                                                                                                              오래전, 나는 단골 음반 가게에서 레코드를 고           장대 나팔수는 귀에 익은 그 선율을 연주했              트는 3악장을 연주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독
                                                                                                                                              르고 있었다. 클래식에 막 입문해 열정적으로            다. 음반 가게에 이어 두 번째 들으니 이런 생           일인인 그가 ‘브라더 존’을 몰라서 그러겠는
                                                                                                                                              빠져들 무렵이었다. 가게에 손님은 나 혼자였            각이 들었다. 왜 하필 말러의 음악이 우리나라            가. 나도 3악장을 좋아한다. 중학생 시절의 돌
                                                                                                                                              고 주인장은 새로 들여온 음반을 정리하고 있            장례식에 널리 쓰이는 것일까, 다른 나라도 그            림노래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외지만, 그럴
                                                                                                                                              었다. 음악은 아까부터 흐르고 있었다. 교향곡           런가.                                  수록 말러가 흔한 재료로 멋진 음악을 만들어
                                                                                                                                              인 것 같은데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와는 분위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는 알아차리지 못             날 속인 솜씨가 감탄스럽다.
                                                                                                                                              기가 달랐다. 살짝 들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했다. 그 음악이 중학생 때 소리 높여 합창하               말러 교향곡 1번은 시작도 인상적이다.
                                                                                                                                                 악장이 바뀌고 한 소절이 흘렀을 때, 음           던 노래였다는 사실을. 1970년대 중학교에서            1악장이 시작되면 고요한 새벽 들판이 펼쳐지
                                                                                                                                              반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시간 여행을 한 듯           는 영어 돌림노래를 불렀다. ‘브라더 존’이라            고 먼 곳에서 팡파르가 울려 퍼진다. 뻐꾹뻐꾹

                                                                                                                                              나는 어린 시절의 한순간으로 돌아갔다. 흑백            는 노래였다. 짧은 가사는 지금도 기억한다.             새가 울고 다시 팡파르가 들려온다. 레코드를
                                                                                                                                              TV는 장례식을 중계하고 있었다. 낯익은 얼            “Are you sleeping, (반복), brother John, (반  들으면서 궁금했다. 들판 너머 먼 곳에서 들려
                                                                                                                                              굴의 대형 초상화가 차에 실려 천천히 지나가            복), Morning bells are ringing, (반복), Ding   오는 닭의 울음 같은 이 소리를 어떻게 연주
                                                                                                                                              고 국화꽃을 덮은 운구차가 뒤를 따랐다. ‘대           Dong Deng, Ding Dong Deng.”          할까. 약음기弱音器 정도로는 이런 효과를 내
                                                                                                                                              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였다. 그분이 죽다                1분단이 “아유 슬리핑~” 하고 시작하면 2         기 힘들 텐데. 그런데 실황을 보고 궁금증이
                                                                                                                                              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은 불안으로 가득            분단이 꼬리를 물 듯이 “아유 슬리핑~”을 다            풀렸다. 두 명의 트럼펫 주자가 무대 뒤에서
                                                                                                                                              했다. 흰 상복을 입고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하           시 시작하고, 마지막엔 1분단에서 4분단까지             이 부분을 연주하고 조용히 입장했다. 나는 음
                                                                                                                                              는 사람도 있었다. TV에서는 느릿한 음악이            차례로 “딩동댕, 딩동댕~” 하면서 노래를 마            반이든 실황이든 ‘멀리서 들려오는 팡파르’를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            쳤다. 틀리지 않기 위해 모두 긴장했던 기억             어떻게 연주하는가를 두고 지휘자의 감각을
                                                                                                                                              걸음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 난다. 이 노래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사           평가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음반 가게에 있고            람이면 누구나 알았다고 한다. 말러는 장조였                베네수엘라 출신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
                                                                                                                                              음악은 스피커에서 울리고 있었다. 무슨 음악            던 곡을 단조로 바꾸고 팀파니와 콘트라베이              멜은 말러 교향곡 1번을 1백 번 이상 연주했다.
                                                                                                                                              이냐고 물어보니 주인장은 음반 재킷을 보여             스로 연주하는 장송음악으로 바꾸어 자신의               그는 이 음악을 연주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주었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 지휘자           첫 번째 교향곡에 사용했다. 그렇게 분위기를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모든 불가

                                             거인이 된 느낌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베를린필하모닉 취임               확 바꾸어놓았으니 원래 ‘브라더 존’이었다는             능을 가능케 하는 거인이 된 느낌.” 청년 말러
                                                                                                                                              연주 실황이었다. 주인장은 새로 나온 레코드
                                                                                                                                                                                  것을 내가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최근
                                                                                                                                                                                                                       는 이 교향곡을 구상할 때 ‘Titan(거인)’이라
                                                                                                                                              판이라며 지금 듣고 있는 것은 3악장이라고             에야 그것을 알고 ‘속았다’고 생각했다. 아이            는 부제를 붙였다. 4악장을 들어보면 그가 생
                                                                                                                                              했다. 나는 이 음악을 옛날 그 장례식 때 들었          들 돌림노래를 교향곡에 쓰다니.                    각한 거인을 상상할 수 있다.
                                                  writer Choi Jeongdong 〈중앙일보〉 기자
                                                                                                                                              다고, 기억나느냐고 물었으나 주인장은 그랬                 당시 빈 시민들은 나보다 더 황당했던 모              세상 일이 여의치 않을 때, 말러 교향곡
                                                                                                                                              었나, 할 뿐이었다.                         양이다. 말러가 1번 교향곡을 발표한 뒤 길에            1번을 들어보길 권한다. 봄날처럼 약간 들떠
                                                                                                                                                 무거운 발걸음 같은 그 음악을 얼마 뒤에           서 그를 만나면 피해 갔다고 한다. 그러나 세            서, 신비롭고 흥겹고 슬픈 선율을 따라 유영하
                                                                                                   1900년대 촬영된 오스트리아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또 들었다. 해외에서 모            월이 흘러 말러 교향곡 1번은 베토벤의 ‘운명’           다 마침내 폭발하는 관현악의 세례를 흠뻑 받
                                                                                                      출신 작곡자이자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의 생전 모습.                           셔온 애국지사 유해를 안장하는 의식에서 의             보다 자주 연주된다. 지휘자 클라우스 텐슈테             고 나면 힘이 불끈 솟을 것이다. 거인처럼.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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