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신세계shinsegae cat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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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으리으리한 집에서는 오뉴월 찌는 더위 돌아오자(高堂六月盛炎蒸)
여름의 맛, 氷水 미인의 하얀 손에 깨끗한 얼음을 내어 오네(美人素手傳淸氷)
멋진 칼로 얼음 깨 여기저기 돌리니(鸞刀擊碎四座)
빙 수
느닷없이 대낮에 피어나는 안개처럼 새하얀 얼음 가루(空裏白日流素霰)
이제는 여름뿐 아니라 사계절 즐기는 시원한 디저트의 대명사가 된 빙수.
-김창협의 ‘착빙행’ 중에서
과거 조상들의 얼음 보관법 등 빙수의 히스토리와 현대의 빙수 이야기.
writer Go Young 음식 문헌 연구가
여름 별식 빙수, 빙과와 빙수의 원형 누구 입에나 들어가는 싸고 간단한 식료가 되었다. 아울러 빙수와 아이
조선 문인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이 남긴 시 ‘착빙행鑿氷行’의 한 스크림의 역사도 드디어 궤도에 오른다.
대목이다. 아직 인공 제빙 및 냉동 보관 기술이 없던 때, 지구 어느 곳
에서나 어느 민족이나 한겨울에 강이나 호수에서 얼음을 채취해 빙고 인공 제빙 시대의 빙수
에 보관했다가 찌는 여름에 썼다. 위에서 본 그대로다. 그 시절, 이글거 1862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비전기식 냉장고가 등장한다. 1876년에
리는 태양 아래서는 얼음 한 덩어리가 그대로 대단한 별미였다. 여기에 는 암모니아 압축식 냉동기가 나와 인공 제빙의 시대가 열린다. 막대한
달콤한 부재료라도 얹으면 극상의 맛이 되고도 남는다. 단, 얼음을 오 얼음은 곧 해운과 손을 잡았다. 항구의 얼음 창고가 유통을 혁신한 것
로지 별미로 먹어치울 수만은 없었다. 여름에 빙고에서 꺼낸 얼음은 무 이다. 1880년대에는 얼음의 대량생산이 전 지구화되었고, 1890년대는
엇보다도 온열 질환에 쓰는 응급약이었다. 명목상 그랬지만 극소수의 조선에도 제빙 및 냉동 시설이 도입되었다. 덕분에 인천과 서울 등 대
권력자와 부자는 상온을 거슬러 한여름 딱 한 철에만 맛볼 수 있는 독 도시에도 여름에 얼음이 유통되었다. 1910년대 조선의 도시에서 부자
특한 질감과 촉감의 여름 별식으로 빙수를 즐겼다. 칼로 깬 얼음 알갱 나 서민이나 여름에 얼음 띄운 화채 혹은 빙수를 먹는 게 어려운 일은
이, 또는 칼로 깎거나 쳐 나온 얼음 조각에 달콤한 부재료를 얹거나 끼 아니었다.
얹어 내기, 이것이 바로 빙과 및 빙수의 원형이다. 인공 제빙 시대에 빙수를 먼저 대중화한 나라는 일본이다. 요코하
마 사람들은 항구에 들어선 제빙·냉동 시설에서 나온 얼음을 지나치지
일본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 중기, 대략 10세기에 쓰인 않았다. 이 얼음에 대패질을 해 얼음 대팻밥을 만들었다. 여기 연유며
수필집 〈침초자枕草子〉에는 칼로 깎아 받은 얼음 가루에 아마즈라(甘 시럽을 찔끔 치자 값싸고도 누구나 좋아하는, 전에 먹을 수 없던 별미가
葛)를 뿌려 먹는 여름 별미가 나온다. 아마즈라라는 식물의 즙을 졸여 새로이 탄생했다. 특권계급의 여름 별미가 현대의 대중에게 돌아간 이
만든 감미료다. 보다시피 얼음을 바탕으로 한 별미의 기본 기술은 옛날 때, 요코하마에 대패질 빙수 가게가 문을 연 것이 1869년이다.
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한편 13세기부터 14세기까지 세계를 아우른
대제국인 원나라의 문헌에는 독특한 풍미와 색채가 있는 과일즙에 꿀, 조선의 인기 대중잡지 〈별건곤別乾坤〉 1929년 제22호(8월호)가
물, 향신료를 더해 달인 시럽인 갈수渴水에 관한 기록도 등장한다. 능 서민 대중의 빙수 감각에 대해 묘사한 글을 보면, 당시에도 본격적으로
금, 양매, 오미자, 포도 등 우리가 익히 아는 과일, 그리고 동시대 유럽 유지방을 더한 빙과는 아이스크림, 얼음 대팻밥에 시럽을 뿌린 빙과는
인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던 정향(丁香, Clove) 등 귀한 향신료가 갈 빙수로 갈렸다. 해방 후 한국 빙수는 맹물 얼음 외에 우유도 적극 활용
수의 재료다. 갈수를 우물에서 막 길어올린 찬물에 풀면 갈증을 달래는 하고, 단순한 시럽뿐 아니라 생과일, 과일 당절임, 인절미, 단팥 등을 웃
음료가 되거니와 ‘청량음료’라는 관념과 어휘도 이때 이미 등장한다. 기 삼아 새길을 내왔다. 우유, 연유 등의 변주도 점점 화려해지고 있지
아랍어로 갈수는 ‘섭리백攝里白’이다. 곧 ‘셔벗sherbet’이다. 셔벗, 만 변치 않는 점이 있다. 어떤 화려한 부재료나 장식적 요소가 끼어들더
소르베 등에 유지방이 끼어든 것은 아주 나중이다. 색상이 선명하거나 라도 기본은 얼음이라는 사실이다. 얼음의 질감이 식감의 바탕이다.
화려한 즙액을 당과 함께 농축했다가 찬물 또는 얼음물에 풀면 청량음 빙수 한 그릇을 들여다보라. 이제 대패의 시대만도 아니라 대패질
료이고, 얼음 알갱이에 더하면 빙수 또는 가키고리(かき氷, 대패질 빙 하듯 켜 얼음 대팻밥을 받는가 하면, 갈기도 하고 부수기도 한다. 얼음
수) 또는 셔벗 또는 소르베sorbet다. 그리고 대중화된 것은 과학기술의 은 대팻밥, 싸래기, 부정형의 조각 등으로 다양하다. 얼음 대팻밥을 쌓
결과다. 인공 제빙한 얼음을 사계절 냉동고에 보관하게 된 뒤로, 얼음 은 결과와 얼음 싸래기를 뭉친 결과는 사뭇 다르다. 기본 기술의 급소를
은 극소수의 특권계급에게 돌아가던 사치품이 아니라 상하 귀천 없이 들여다보며 먹는 것 또한 빙수 즐기는 재미를 배가하는 방법이 아닐까.
editor Kim Jihye photographer Sim Yunsuk stylist Kim Jinyoung 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