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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솔러지 작품집 | 코로나지만 사우나는 하고싶어 | Team22-2                                                                                                                   희곡 | 권지애 | 떠나야 할 때




                          풀어주고 그랬는데. 워낙 친절하고 성실하니까 단골도 꽤 많았지.                                                         최사장  (때수건 앞에 멈칫 서서 한숨을 쉬며) 김군 이놈, 마지막 날이라고

                          …그런 오선생도, 지난주에 짐을 뺐어. 짐이라고 해봤자 매번 갈아                                                                 대충 치우고 갔네. 구석까지 꼼꼼히 보라니까. (때수건을 집어 든


                          입는 여벌옷 몇 장이 전부였지만. 해고하는 사장은 연신 미안하                                                                   다)

                          다면서 울먹이고, 떠나는 직원은 괜찮다며 웃고 있었어. 이 사우                                                         때수건  어~? 어?! 최사장, 최사장! 이거 놔! 안 놔?! 우리 어디로 가는 거

                          나에서만 6년을 일한 사람이야. 시작은 아버지 사장과 하고 끝은                                                                  야? 당근마켓에 나 팔 거지! 싫어, 싫다고. 나 여기 있을 거야. 야,

                          아들 사장과 한 셈이지.                                                                                        내 말 안 들리냐! 가기 싫어. 싫다고. (운다) 사장님. 가기 싫어요.

                                                                                                                               나 여기가 좋아요. 폐업해서 마음도 안 좋은데 내가 막 걸리적거

                  라커룸에 대형 청소기 돌리는 소리.                                                                                          리고 그래요? 초록색이라 눈에 잘 띄죠? 그래, 그럴 수 있어. 평

                  사이.                                                                                                          소엔 익숙해도 어느 순간 신경 쓰이고 그럴 때 있잖아. 아, 그럼 창

                                                                                                                               고에 있을게. 창고에 얌전히 처박혀 있을 테니 제발 사우나에 있

                  때수건  이제 정리가 끝나가나 보네. 나도 이제 이 사우나를 떠나야 할 것                                                                    게 해줘. …… 여기엔 때만큼이나 수많은 시간들이 살고 있어. 찌


      30                  같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모                                                               뿌둥한 몸을 풀러온 사람의 고단함, 탕에서 걷기 운동하는 할아                                        31

                          습은 얼마나 아름…답기는 개뿔!! 싫어. 사우나 떠나기 싫다고. 왜                                                                버지의 간절함, 출근하는 직장인의 단정함, 아빠와 손을 잡고 사

                          내가 나가야 돼.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여기가 좋아. 사우나의                                                                우나를 찾은 아이의 설렘 … 최사장 아버지의 어제, 세신사 오선

                          쑥향도 좋고, 냉탕의 한기도 온탕의 온기도 다 좋다고. 서로 다른                                                                 생의 오늘, 카운터 알바 김군의 내일도 …다 여기 있잖아….

                          샴푸 향이 퍼져있는 하수구도 좋고, 줄 지어 앉아있는 물바가지도

                          좋고. 다 좋다고!! 싫어, 가기 싫어. 사우나에 계속 있을 거야. 코로                                                    쪼로록, 탕의 물 빠지는 소리.

                          나 그 새끼가 잘못했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사우나를 폐업                                                         깊은 한숨 소리.


                          해!! 야, 김군! 너 여기 잘리면 뭐 먹고 살 거야! 돈이 있어야 공부

                          도 하는 세상이라고.                                                                                 때수건  안녕, 내 친구들. 다들 어디서든 잘 살아. …저기, 최사장. 내가 사

                                                                                                                               실 어제 생각을 좀 해봤거든. 여기 클럽으로 만드는 건 어때? 탕

                  슬리퍼 끌며 걸어오는 소리.                                                                                              에 들어가서 뚬칫뚬칫 춤추고 신날 것 같지 않아? 막 흥분하면 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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