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꿈과 끼를 찾아떠나는 문화유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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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면이 있구나



                      인쇄술에 담긴 기술 혁신 이야기



                        ‘인쇄술’하면 나무 활자와 금속 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이
                      떠오르죠. 그런데 흙으로 빚어 구워 만든 도 활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조선 시대 왕실이나 관청에서 금속이나
                      나무 활자 그리고 흙으로 만든 도 활자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앞에서 도자기 빚는 기술에 대해 알아보았어요.
                                                                                    도 활자(국립중앙박물관)
                      도 활자 얘기가 나왔으니, 활자와 관련된 기술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요.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금속 활자의 제작 기술의 발전은 조선 시대에도 이어졌어요. 조선 최초의 금속 활자는
                      계미자였어요. 계미자는 1403년(태종 3년) 계미년에 만든 것으로 조선 시대 최초의 구리 활자예요. 그러나 제작
                      기술이 미숙하여 하루에 몇 장밖에 인쇄할 수 없었다고 해요. 세종은 인쇄 속도를 높이기 위해 신하들에게 새로운
                      활자를 만들게 했어요.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1434년(세종 16년) 갑인년에 만든 조선의 대표 활자인 갑인자예요.
                      또한 정조 시대에는 많은 책을 간행하기 위해 활자 제작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고 해요. 정조가 만든 활자
                      가운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활자는 1796년(정조 20년)에 완성 한 정리자이지요. 정리자는 《정리의궤(整理儀軌》
                      및 《원행정례(園幸定例)》 등의 책을 인쇄하기 위해 만든 활자였어요.

                        조선 시대 금속 활자는 왕권을 상징하는 왕실의 보배였으므로 보관과 관리에 철저하였어요. 한 종류의 활자를
                      7개의 장에 나누어 보관하였고 각 장에 들어간 활자 수를 기록했어요. 보관 장에는 잠금 장치를 하고 장마다
                      책임자를 두어 관리하기도 했지요.
                        인쇄술의 발달로 지식이 점차 많은 사람들에게 대중화되고 문자가 여러 사람들에게 사용될 수 있게 되었지요.
                      금속 활자는 그러한 흐름 속에서 더욱 기술이 개량되고 발전하게 되었어요. 오늘날 넘쳐나는 정보 사회에서 활자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위부인자장, 17세기                                   정리자 활자(국립중앙박물관)
                         금속 활자를 보관하였던 장(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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