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정신 2023가을호 통권85 시 와 정 신 2 시와 정신 편집위원_송기한, 김홍진, 이은하, 곽명숙 편집인 겸 주간_김완하 편집장_변선우 편집차장_김규나 계간지_제22권 제3호 2023가을호 통권85 | 우 | 리 | 시 | 대 | 의 | 시 | 정 | 신 | 7 6 | | 시가 어느날 나에게 왔던가 김완하 _42 백인덕 _14 | 시 쓰기의‘괴로움’과‘즐거움’ | 무해함의 기원과 바깥 없음의 투명성 김학중 _21 | 머리말 | 시인은 절대 언어를 향해 나아가는 자 _8 전국계간문예지 작품상 시상식(8.26) 시와정신 제주 출판기념회(8.27) 차 례 3 시와정신회 회장_노금선 운영위원장_손혁건 편집_고명자, 김소원, 김지숙, 성은주, 이정희, 정우석 홍보·기획_ 구지혜, 김나원, 박광영, 박종영, 오영미, 원양희 펴낸곳 _시와정신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전로1019번길 28-7 신창회관 2층 (우 34445) 전화 042-320-7845 전송 0507-075-2874 홈페이지 siwajeongsin.com 이메일 siwajeongsin@hanmail.net ► 박헌오 신작시 화석(化石) 외 4편 _170 ■ 이 / 계 / 절 / 의 / 시 / 인 _박헌오
詩人 ►► 작품론 - 영육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혼(詩魂) _유준호 _176 대표작 봄꽃이 걸어옵니다 외 4편 _188 심사평 _198 수상 소감 _200 봄볕 며칠 뒤뚝대더니 봄비가 내렸습니다 막 꽃망울에 도착한 봄이 각자의 발대중으로 수선화 목련꽃을 내밀 고 있습니다 ■ 제11회 시와정신문학상 _노금선 詩人 시 와 정 신 4 113_ 오독 외_ 김서영 김은닢_ 투명한 세계 외 _108 105_ 봄날 오후 외_ 황미경 임형빈_ 늦은 귀가 1 외 _103 99_ 윙컷 외_ 이미영 김어진_ 재두루미 외 _97 93_ 미카의 물떼새 외_ 박호은 박득희_ 선물 외 _90 88_ 아버지 외_ 남정화 한경옥_ 터널을 지날 때면 외 _86 84_ 흰멍이 외_ 전소빈 차영미_ 페스츄리가 낙하하는… 외 _81 78_ 처마를 그린다 외_ 석정희 황성주_ 우리 동네 미용실 외 _74 72_ 바람의 도시 2 외_ 조성순 김옥성_ 서산 마애불 앞에서 외 _69 67_ 달과 별 외_ 이상옥 이경림_ 산책 외 _64 62_ 막힌 길 외_ 이관묵 조향순_ 뿌리 외 _60 가을 시단 20인선 차 례 5 166_ 부고 외_ 아 은 이현명_ 나무라는 이름으로 외 _164 162_ 외투 외_
이경희 박시원_ 때론 까마귀도… 외 _160 157_ 반딧불 외_ 김기범 김수진_ 생각에 관한 생각 외 _155 152_ 섬 놀이 외_ 장용자 조명희_ 성북동 산림욕장 외 _148 146_ 나무의 시간 외_ 연용흠 이미숙_ 집 속의 집 외 _142 140_ 꽃망울 외_ 최재경 오유정_ 박쥐의 시간 외 _137 135_ 뾰족하다 외_ 안현심 배용주_ 낚시 외 _133 131_ 시 잘 쓰는 쑥 외_ 이봉직 함순례_ 폭우 외 _127 125_ 육십대 외_ 옥 빈 김상현_ 빨대에 관한 명상 외 _122 120_ 수원화성, 흰꽃 피어 외_ 김광순 박순길_ 바람 외 _118 대전 시인 특집 20인선 시 와 정 신 6 포에세이 Poessay Poessay 새끼의 힘 _김소원 _236 계추일기 _임남희 _246 등 _성은주 _242 여름을 향한 이음줄 _박유하 _253 ● 새로운 시인을 찾아서 신작시 | 숯부작 외 4편 _엄태지 _224 제42회 시와정신 신인상 발표 ■ 시 당선작 한재선 | 가을 하숙집 외 4편 _202 유인선 | 잠이 안와요 외 4편 _213 ● 당선소감 ● 심사평 계 | 간 | 비 | 평 경계를 넘어선 소통의 시학 _김규나 _262 2023
전국계간문예지 편집자회의 제주 축제 시 와 정 신 8 시 창작은 소통행위(疏通行爲)이다. 시인과 시가 있고, 시적 대상의 세계 가 있으며, 시를 수용하는 독자가 있다. 다른 영역의 예술도 마찬가지겠지 만, 이 사자(四者) 사이의 대화적 관계는 시적 소통의 구조에 반드시 필요한 구성요소이다. 시인은 대상 세계와 대화하고, 그 기록이 시일 것이며, 독자 는 시인의 심미적 인식인 시를 읽을 것이다. 따라서 시 쓰기는 시인의 표현 욕구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대상 세계에 대한 심미적 인식을 독자와 함께 공 유하려는 희망에서 출발한다 하겠다. 나의 시 쓰기에서 독자는 거울이다. 그래서 독자들이 내 시집의 울타리 안에 함께 머물며 일상의 번잡함과 산문성과 근면성에서 잠시 벗어나 세계 의 다른 형상을 느끼고 통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자리한다. 서정시는 시적 대상에 대한 시인의 감각적이고 주관적 인상을 바탕으로 표현되는 특징이 겠지만. 그것을 독자와 함께 공감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시 쓰기에 힘이 될 것이다. 이번 시집 시인의 말에“작은 것들과 눈 맞추며 / 오래 무릎을 접고 / 앉 아”“그들이 들려준 낮은 소리가 / 어떤 마음에 닿았으면” 한다고 했다. 오 | 머리말 |
시인은 절대 언어를 향해 나아가는 자 - 제1회 시와정신해외문학상 수상 가 을 호 를 펴 내 면 서 9 랫동안 작은 것들과 마주 앉아 그들이 들려주는 낮고 작은 소리를 들으며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과 나눈 작은 대화의 기록이 나의 시집이고, 이 제는 그것이“어떤 마음에 닿아” 울림이 되기를 기다린다. 나는 시를 창작한다는 말 대신 시를 만난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그래서 두번째 시집『몇 만년의 걸음』에서는“시를 창작한다는 말보다 시를 만난 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시들 이 시인을 만나서 옷을 받아 입고 각자 제 모습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그 들을 만나러 산과 거리를 힘들게 오가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그들이 먼저 찾아와 나의 창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다. 그들의 숨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개성과 품격을 지켜주는 옷을 만들어 주고 싶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시쓰기를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시에 내가 깃들어 옷을 지어 입히는 행위로 여긴다. 시를 만나는 행위가 무슨 거창한 일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고 작은 것만도 아닐 것이다. 이번 시집의 표제를 따온 시에서“화석이 된 송곳니 같은 조그만
몸체”이지만“소라와 조개껍질이 바위 등에 총총히 박”힌 채“몇 만 년 전 바다를 악물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의 범주는 굳이 말하자면 존재의 원적(原籍) 같은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 작은 것들은 나 에게 존재의 시원이나 원형 같은 것을 보여준다. 잠깐이나마 원형적 존재의 형상을 보여주는“시간의 발”(「현장은 왕복여행권을 가졌다」)처럼 켜켜이 축적된 존재의 지층을 현시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는 지각의 변 동이 심해서 8번이나 바다에 잠겼다 나온 땅이라 한다. 산을 오르면 바다가 산이 되고 그 산이 다시 바다가 되었다 산이 된 현장을 만난다. 세상에는 시적인 것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작고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것들은 자주 존재의 떨림으로 우리를 이끌고, 또 우주적 울림으로 우 리의 감각을 열어젖힌다. 우리가 그들을 발견하고 감각하지 못할 뿐, 그것 들은 우리의 도처에 머물며 상존한다. 나뭇가지에 한 마리 새의 지저귐에 도,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칭얼대는 아이의 투정에도, 어두운 뒷골 목 주름진 여인의 이마에도…… 평범한 일상과 사물은 우리가 다가가서 깊 은 눈으로 바라봐주기를 요구한다. 날선 칼처럼 감각은 더욱 예민하며 푸 르게
벼려지고, 그들을 바라보는 내 눈은 어린 아이처럼 더욱 투명하게 밝 시 와 정 신10 아지기를 바란다. 낡고 때 묻은 언어가 아닌 팔딱이는 싱싱한 언어, 관념의 때로 더렵혀진 언어가 아닌 날것 그대로의 언어로 그들에게 살아 있는 옷을 만들어 입혀주고 싶다. 시를 만난다는 말은 시를 하나의 생명을 가진 존재로 인정하고픈 나의 속 내일 것이고, 또한 그에 대한 나의 믿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시 쓰기는 하 나의 놀이나 장난, 푸념이나 넋두리가 아닐 것이다. 내면의 눈과 귀, 코와 혀의 감각, 온몸이 예민한 촉수가 되어 시의 씨앗을 만나고 그것을 진실하 고 절실하게 키워주어야 한다는 것은 많은 시인들의 생각일 것이다. 시쓰기 의 큰 몫인 상상력이 영혼의 감각이라고 한다면 그 영혼의 감각이 닿는 시 의 씨앗은 하나의 소우주를 가진 생명이 아닐까. 때로는 내가 그 생명을 찾 아 만나고, 때로는 그 생명이 내게 찾아와 만나는 일은 그지없이 행복이다. 시를 쓰다보면 처음 생각했던 대로 쓰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엉뚱하게 나 도 모르는 사이에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때가 있다. 그 들에게도 자체적이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자율적인 생명의 내적 논리가
작동하는가 싶다. 시가 자신의 의지를 갖고 자신이 가고 싶은 대로 가려는 길이 있는 듯하다. 신기하게 시가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 유기체로서 스스로 를 형상화하고 규율한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놀랍게도 시가 이루는 부분 과 요소들의 필연적 선택과 배열에 의한 통일적인 짜임을 지향해가며 자신 의 형상을 스스로 갖추어간다는 경험을 하는 순간이다. 나는 그들의 요구대 로 그에 맞는 언어의 옷을 찾아 입힐 따름이다. 이런 때 나는 시가 그 자체의 고유한 의지를 가진 생명의 실체라고 생각 하는 것이다. 순간의 포착, 나는 그저 순간적으로 날아든 시의 씨앗이 발아 한 생명을 받아내는 산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그 생명을 보듬 고 보살피는 것이리라. 가령 다음 같은 시에서 나비가 내려 앉아 정지한 몇 초, 그 고요의 무게, 그 태고의 정적에서 발현하는 황홀감이 나를 취하게 했 다. 그것은 내 느낌이지만, 그에 앞서 시 자체가 품은 스스로의 미적 원리 에 의해 그 생명이 실현되고 작동하는 사실을 나에게 일깨웠다. 그 자체로 시적 주체인 내가 감히 침범할 수 없는 풍경의 의식 영역이고, 나는 그것을 감각할 뿐이었다. 어느 봄날 문득 나의 팔에 나비가 잠깐
내려앉았다. 그때 그 찰나 내 팔 가 을 호 를 펴 내 면 서11 에 나비가 내려앉은 그 순간의 정지는 풍경의 의식이리라. 인간이라는 주체 가 사라진 풍경, 고요의 무게와 태고의 정적은 내가 느끼고 말하기 전에 이 미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란 느낌을 갖게 했다. 그때의 황홀함을 표현한 것 인데, 그 몇 초의 찰나와도 같은 시간은 내가 시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 럴 때 나는 내가 시를 창작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생명을 만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하는 일이란 그에 적당한 옷을 마련해줄 뿐이 라 생각하는 것이다. 세번째 시집 출간 후 몇 분의 평론가와 독자들이 나의 모국어 사용에 큰 관심을 보여 주었다. 이중 언어 생활자로서 모국어에 대한 나의 관심과 사 랑에 대해 주목한 이들이 있어 행복했다. 자발적 디아스포라 시인으로서 고 국에서 작품 활동하는 많은 시인들의 유연하고 재치 있는 글을 대할 때마 다 부럽고, 때로는 주눅이 들었던 나는 기쁜 일이었다. 어느 누가 멀리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눈으로만 보고 싶어 하겠는가. 마음으로 머리로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경에서 산다. 생 명의 한계를
넓히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이 비단 첨단 물리학 이나 생물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인들에게도 주어진 한 몫의 재능이 라고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 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 물리학자 아르망 트루소 (Armand Trousseau)의 말이다. 시의 씨앗은 영혼의 감각으로 만나서 그것 을 과학적인 안목으로 키우고 다듬으면 좋은 시가 될 것 같다. 나에게 이 말 은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통합의 세계를 강조하는 것처럼 들린다. 예술 을 지향하는 과학, 과학을 꿈꾸는 예술의 세계는 나의 시가 도달하고 싶은 지점이다. 분리나 배척이 아닌 통합된 사유야말로 내 시적 사유의 지향처이 다. 어떤 절대나 절정의 세계에 이른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래 도 시인은 그런 절대의 언어를 향해 나아가는 자가 아닐까. 유봉희(시인, 버클리문학) 정기구독 및 후원 ^운영위원 모집 안내 『시와정신』은 새로운 시정신의 모색과 열린 세계를 지향합니다. 또한 문학의 저변 확대를 통해 이 땅의 문화적 르네상스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금강’의 유장하고도 도도한 흐름이『시와정신』에 깃들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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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와 정 신14 시 쓰기의‘괴로움’과‘즐거움’ _ 백인덕 시를 좋아했다거나, 백일장 입상 같은 경험이 아닌 나름 체계적인 습작 기를 포함하면 시력(詩歷) 사십 년이 조금 넘는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시 작품의 자기 해설이나 자기‘시 정신’과 관련한 글이 딱 한 편 있다. (물론 수백 편의 작품을 발표했고, 수백 편의 논문과 평문과 해설을 썼다.) 그 한 편의 글은「‘시 쓰기’를 위한 몇 개의 단상(斷想)」이라는 제목으로 2006년 에 출간한 내 유일한 연구서인『사이버 시대의 시적 현실과 상상력』(보고 사)에 실려 있다. 앞에 언급한 시력의 중간쯤에 작성된 것인데, 고민은 하 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괴로움’을 아직‘즐거움’으로 전환하지 못한 것 이다. 그 까닭에 여기 다시 전재轉載한다. 1.‘시작의 괴로움’에 관하여 개인적인 경험으로‘시 쓰기의 괴로움’은‘무엇을’에서‘왜’로 괴로움의 우리 시대의 시정신 _ 76 우 리 시 대 의 시 정 신15 정체가 바뀌었다. 등단 15년, 그러니까 대체로 재작년 말부터 이런 변화가 감 지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연륜이 주는 지혜의 그늘, 어둠의 일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비록 많지 않은 경험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시 창작’을 강의 (?)하게 되었을 때,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질문 중 하나가‘시가 너 무 어렵다’,‘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략 이런 부류의 질문이 었다. 말 그대로, 시 쓰기나 배움 모두에서 일천하고 알량한 밑천밖에는 없 지만, 이 글은 그런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소박한 대답을 마련해 보기 위 해서 기획되었다. 시는 언어 예술이다. 이 분명한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 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시의 이해는 더 넓게는‘예술의 이해 방식’으로 부터 비롯해야만 한다. 이 이해의 제한 조건은 물론‘언어’가 그 사용자들 만의 역사적, 사회 문화적 요인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순전히 같은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 위의 명 제는 너무도 타당하고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시가 이해 가 안 된다.’라는 푸념을 듣게 되는 까닭은 위 명제에 대한 인식의 불철저 에서 비롯한다. 어쩌면 내가 만나게 된 수강생들이 그런 교육의 기회(지금 도 여전히 의문이지만)를 갖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내 시 창작 강의는 항상 이 부분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시는 이해될 수 있는가? 물론 있다. 게다가 신속하게
이해될 수 있다. 왜 냐하면,‘이해’의 가장 빠른 길은‘오해’이기 때문이다. 시의 생명은 시 인에게서 비롯되지만, 그 생명의 지속은 오직‘독자’에 의해서만 가능하 다. 이처럼‘독자’를 시 이해의 중심축으로 설정하면, 위에서 제기한 문제 는 간단하게 해결된다. 효용론이나 수용자 중심에서 시를 바라본다면 독 자의 성실성 외에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사람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결 국, 독자가 얼마나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냐 하는 문제에 가닿기도 전에 문 제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시는‘이해’되어야 할 대상이기보다는 폭넓게‘감상’되어야 할 대 시 와 정 신16 상이다. 결국, 시의 이해는 시의 감상에 다름 아니다. ‘감상’은‘感傷(sentimental)’과‘鑑賞(aesthetic dialog)’ 둘 다를 포괄 하는 개념이어야 한다. 정서적 반응과 인식적 반응이 동시에 촉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感傷만이 전부인 양 왜곡되어 일반적으로 확산했다. 대학에서도 문화센터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진다. 인식적 수고 없이 이해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학기 내내‘감상’을 해도 시의 이해는 고사하고 두고두고 암송할 작품 하나도 제대로 건지지 못하 는 상황이 되풀이된다. 결국, 이런 문제의 해결은“미적 대화에 대한 재인 식, 또는 깊은 이해”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미적 대화란 인간의 정신 속에 서 일어나는 객체(작품)와 주체(독자)의 자리 바꾸기 놀이이다. 대화 상황 이 원칙적으로 발화자와 청자의 동시적 참여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청자와 발화자의 끊임없는 역할 바꾸기로 지속하듯이, 미적 대화 또한 이러한 경과 를 따른다. 그 과정은 먼저‘접촉(contact)’이 이루어져야 한다. 시집과 독 자가 살을 맞대야 한다는 것이다. 책가방에 일 년 내내 그럴듯한 시집을 넣 어 다녀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접촉은 촉각과 시각 등등의 감각기관을 통 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똥구멍으로 시를 읽다’(『악어』, 실천문학사)라고 쓴 고영민 시인은 접촉의 탁월한 경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접촉은 수시로, 아무 곳에서나 제약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 람직하다. 기발한 착상이 의식의 무방비 상태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 듯이, 시집은‘잘 모셔야 할 책’(정전)이라기보다는 구겨지고 더럽혀질
수 있는 휴지 묶음이라고 생각하라 권유하고 싶다. 이 접촉의 과정은 독자의 정신 속에서 자연스럽게‘느끼고(feeling)-생 각하고(thinking)-이해하는(understanding)’ 과정으로 전이되어야 한다. 이 전이의 과정은 예술 감상이라는 측면에서 체계적이고 반복적으로 훈련 되어야 한다. 최소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력과 연령이라면 이러한 기대 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결국‘시가 너 우 리 시 대 의 시 정 신17 무 어렵다’라는 볼멘소리가 되풀이되고 있다. 각 단계를‘전이’라고 한 것 은 이 과정이 의식적으로 전개된다기보다는 독자의 정신 속에서 거의 무의 식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느낌’과‘생각’,‘이해’가 왜 의식, 의도에 기초해야 하는가? 우리가 숲에서 나무를 보거나 강에서 시 원스레 날아가는 새떼를 볼 때, 도대체 무슨 의도와 의식이 작용하는가? 그 냥‘풍경’이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지 않았던가? 이 말은 예술 감상이 인지적 노력을 요구한다는 말과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 만 모순은 아니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과정의 필수적인 전제는 그 앞 에‘스스로’라는 조건이
붙는다는 점이다.‘스스로 느끼고’,‘스스로 생 각하고’,‘스스로 이해해야’ 한다. 이‘스스로’라는 조건을 오늘의 수강 생들은 힘들어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하지 않는다면 누가, 왜 나를 대신 하여 느끼고, 생각하고, 이해할 것이며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되묻 지 않을 수 없다. 강의자가 개입할 수 있는 단계는 고작 감상의 마지막 단 계인‘스스로 판단하라(judging)’에 지나지 않는다. 판단은 그 결과가 개 인적인 차원을 넘어 동시대의 사회, 문화적 부분까지 영향이 확대되기 때 문이다. 어쩌면 오늘의 시 감상은 이런 사적(史) 위협 앞에 위축될 대로 위 축된 것인지도 모른다. ‘시 쓰기’는 일종의 창조 행위다. 이때‘창조(創造)’는 이제까지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일이며, 창의(意)는 이러한 일의 속성을 말하는 것으 로 다분히 형이상학적 개념이다.“창조 혹은 창의는 기존의 요소 혹은 소재 의 독창적인 편성에 의한 새로운 타입의 사물 산출에서부터 완전 무에서 세계 그 자체의 창출을 이르는 넓은 범위에 쓰이는 말이다.”(김중신,「개인의 성장 을 위한 문학교육 방법 탐색」,『문학교수·학습방법론 연구』 삼지원, 1998). 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런
무거운 규정이 시의‘감상’에서‘창작’으로 나 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창작은 위대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생산이라는 측면에서는 밥을 하고, 자동차를 시 와 정 신18 만들고, 집을 짓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시를 바라보는 위치를 바꾸자, 낮 은 곳에서 시를 보면 더 넓게, 자세히 보일지도 모른다. 2.‘상상력’에 관하여 시를 이해하거나 감상하거나 간에‘상상력’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듣고 배운 것은 직장 생활을 끝내고 박사과정에 입학한 다음이었다. 그 전의 나 는 나름대로 한국 현대 시의 충실한 독자였으며 건실한 생산자라고 자부했 지만, 그때의‘시’는‘즐거움’ 그 자체였을 뿐이었다. 사실 그 시절로 돌 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시간의 화살’을 되돌릴 수 없듯이 지금 은‘상상력’의 정체를 향해 나아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어떤 시론, 시작 법 책을 들춰봐도 상상력에 관해서는 반드시 한 장 이상이 할애되어 있다. 그만큼 시작에 있어서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말이겠지만 이 글에서는‘시 쓰기’과정에서의 필요성에 관해서만 간략하게 생각해 보고자 한다. ‘시 쓰기’에 있어서 체험이 중요한가, 상상력이 더 중요한가? 하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맞닥뜨리곤 한다. 이러한 질문의 배후에는 직접체 험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구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자체로 일 정한 진실을 확보하고 있지만, 경험 없이 골방에서 제작된(상상력에만 의 지한) 작품은 아무리 교묘한 작품일지라도 인위적인, 즉 가짜의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는 무지의 확신이 깔려있다. 하지만 이처럼 위험한 생각이 공 공연히 널리 퍼져나가고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게 된 데에는 다 까닭이 있 다. 가령,“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다. 시가 감정이라 면 젊은 나이에 이미 봇물처럼 넘쳐흐를 정도로 많이 썼을 것이 아닌가, 시 란 정말로 체험이다.”라는 릴케의 말에서‘감정’ 대신에‘상상력’을‘상 상력’의 의미 대신에 이른바‘제작된 시’를 슬며시 끼워 넣기만 하면 되 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 우 리 시 대 의 시 정 신19 속된다. 만약에 내게‘체험’과‘상상력’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단연코‘상 상력’을 고를 것이다. 상상력이란 인간의 경험과 생각과 감정이 인간의 정신 속에 용해되어 조직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체험’이란‘상상력’의 도움 없이는 그 자체로
시가 될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일상에서 습관적 으로 되풀이하는 체험은 아예 논외로 하고, 너무나 충격적이고 생생한 체 험의 순간에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언어가 그 체험의 광휘 를 뚫고 나올 수 있었던가? 외마디 감탄사 말고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체 험은 분명히 시의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 도 생성하지 못한다. 체험은 시간의 담금질을 견뎌야 하고, 그때는 고치 속 의 애벌레처럼 기억의 형태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우리가 알고 있지 않 은 것으로써 우리가 상상해 보는 것이란 있을 수 없으며, 우리가 상상하는 능력이란 우리가 이미 과거에 경험하였던 일을 기억하며, 그것을 또 다른 상황에 적용하는 능력”이라는 스펜서의 말이 그래서 중요하다. 체험 없이 기억은 생겨나지 않으며, 기억 없이는 상상력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 체험의 기억을 오늘에 되살리는 것은 언제나‘현재의 필요’라 는 것을 부기하고 싶다. 바람이 없다면 바람은 결코, 불지 않는다. 더욱이 그때의 바람은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것이다. “시적 상상력의 개진 방식들은 기실 추상화되어 있다. 한 편의 시는 모름 지기 단 하나의 주도적인
상상력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