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종이꽃,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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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이의 메모장




 1929년으로 시간 이동했을 때는 화가 많이 났었어.

 조선 학생이 일본 학생에게 엄청나게 맞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도 맞을 뻔했지. 그때 준채 형이 없었다면 큰일이 났었을 거야.                     구 나주역

 내가 보기에 준채 형도 쌓인 게 많았었나 봐. 나와 헤어지는 순간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었지.  구 나주역은 항일정신을 보여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야. 1929년 10월 30일. 일본인 남학생들이 한국

            여학생들을 희롱하자, 한국 남학생들이 이를 저지하며 순식간에 한·일 학생 간 싸움으로 번졌어. 이를 계기로
            일본의 4대절의 하나인 명치절에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돼.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항쟁 소식은 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 전국의 320개 이상의 학교에서 54,000여 명이
            시위운동에 참여한 역사적 사건으로 퍼졌지.
 보훈 인물 소개


                학생독립운동기념탑
 박준채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  2학년생이던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 가면 높이 39m의
 그는 1929년 10월 30일 하굣길에 나주역 입구에서 당시
 광주중학교 3학년생인 일본인 학생이 광주여고보 3학년생   학생독립운동기념탑을 볼 수 있어. 하나의 구심점으로
 박기옥·이금자·이광춘 등을 희롱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에   군중이 집합하는 힘을 생각하면서 만든 이 탑은
 격분해서 일본인 학생들과 싸움이 벌어졌고 이 사건이 발단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을 펼친 학생들의 단결된 의지를
 되어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어.
            상징화한 것이야. 멀리서 보면, 마치 타오르는 횃불의
 그는 적극적으로 참여 활동하다가 일본경찰에게 잡히게 되었고
            이미지가 연상돼.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어.  나라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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