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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역 독립 호국 민주 역사만화
책을 추천하며 책을 펴내며 「종이꽃 기억할게요」는 광주는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독립정신’ 광주의 정신을 지키고, 불의에 항거하고 6·25전쟁을 이겨낸 ‘호국정신’ 민주화의 길에서 청춘과 삶을 바쳤던 민주화를 이뤄낸 ‘민주정신’이 깃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출처: 이북나라 전자책 『광주지역 독립 호국 민주 역사만화』 4쪽 · 26쪽 · 50쪽 · 61쪽 · 85쪽 · 111쪽
전체 130쪽 · 온라인 플립북
본문에서 살펴볼 내용
본문 4쪽
책을 추천하며 책을 펴내며 「종이꽃 기억할게요」는 광주는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독립정신’ 광주의 정신을 지키고, 불의에 항거하고 6·25전쟁을 이겨낸 ‘호국정신’ 민주화의 길에서 청춘과 삶을 바쳤던 민주화를 이뤄낸 ‘민주정신’이 깃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자랑스러운 고장입니다. 광주가 ‘의향’으로 일컬어지기까지는 험난한 역사 속에서 민족과 우리 사회를 위해 희생했던 분들이 우리 대한민국은 5천년의 길고 화려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침을 겪었으며 동족상잔의 전쟁도 치러야 했고 민주화로 거듭나기 위한 고통도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의 선열들은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우리 사회가 보다 정의롭고 민주적인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던 광주 인물들의 삶과 정신을 통해 우리 학생들이 역사의 발자취를 느끼고 긍지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이 전자책 4쪽
본문 26쪽
보훈이의 메모장 처음 호랑이님과 함께 시간 여행한 곳은 광주의 어등산이었어. 죽봉 김태원 의병장 동상 정말 어찌나 당황했던지. 정신 없던 와중에 어등산 숲속에서 일본군에게 쫓기는 의병을 만났어. 운 좋게 구했던 의병이 바로 의병들을 이끌던 죽봉 농성광장에 있는 죽봉 김태원 의병장의 동상은 살아 생전 일본과 맞서 싸우던 당당한 그의 모습을 김태원 의병장이었지. 숨어 있던 동굴에서 마지막을 직감한 그대로 재현해 놓았어. 의병들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 또 동상 주위에 경관조명을 설치해서 야간에도 늠름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했지. 만약 동상을 지나칠 때가 있다면 한 번쯤은 독립을 위해 일제와 치열하게 싸웠던 김태원 의병장과 호남 의병들의 보훈 인물 소개 숭고한 정신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김태원 의병장 김태원 의병장은 1870년 전남 나주군 문평면에서 태어났어. 1907년 전남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호남창의회맹소에 가담해 본 격적인 의병 활동을 시작했어. 특히 고창 문수사 전투의 승리에 결정 적인 공을 세웠지. 이후 김태원 의병장은 의병부대 선봉장에 임명되어 나주·함평·장성·무안·담양 등지에서 차례로 일본군을 격파했어.
출처: 이 전자책 26쪽
본문 50쪽
보훈이의 메모장 1929년으로 시간 이동했을 때는 화가 많이 났었어. 조선 학생이 일본 학생에게 엄청나게 맞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도 맞을 뻔했지. 그때 준채 형이 없었다면 큰일이 났었을 거야. 구 나주역 내가 보기에 준채 형도 쌓인 게 많았었나 봐. 나와 헤어지는 순간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었지. 구 나주역은 항일정신을 보여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야. 1929년 10월 30일. 일본인 남학생들이 한국 여학생들을 희롱하자, 한국 남학생들이 이를 저지하며 순식간에 한·일 학생 간 싸움으로 번졌어. 이를 계기로 일본의 4대절의 하나인 명치절에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돼.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항쟁 소식은 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 전국의 320개 이상의 학교에서 54,000여 명이 시위운동에 참여한 역사적 사건으로 퍼졌지. 보훈 인물 소개 학생독립운동기념탑 박준채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 2학년생이던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 가면 높이 39m의 그는 1929년 10월 30일 하굣길에 나주역 입구에서 당시 광주중학교 3학년생인 일본인 학생이 광주여고보 3학년생 학생독립운동기념탑을 볼 수 있어.
출처: 이 전자책 50쪽
본문 61쪽
보훈이의 메모장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이뤄낸 세상에서 백범 김구 선생님을 만나다니! 광주백범기념관 그것도 김구 선생님의 도움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마을에서 말이야! 그때 처음으로 난 고민에 빠졌어. 왜 사람들이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려 2011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주거환경개선 사업으로 백화마을이 있던 곳에 새 아파트를 만들면서 마을의 했는지. 호랑이님은 말했어. 지금의 나를 지켜내기 위함이었다고. 옛 모습이 잊히게 되었어. 그래서 광주광역시와 동구청이 김구 선생과 백화마을의 인연을 기념하기 위해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백범문화재단에서 광주백범기념관을 건립했어. 보훈 인물 소개 김구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진두지휘한 분이야. '통일 조국의 문지기가 돼 뜰을 쓸고 창을 닦아주고 싶다'라는 연설이나 백범일지에 기록된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무력이 아 닌 문화다', '내 나라가 식민 지배당한 아픔을 알기에 내 나라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길 원치 않는다' 등 김구 선생이 남긴 명언들 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어.
출처: 이 전자책 61쪽
본문 85쪽
보훈이의 메모장 광주4월혁명발상기념탑 내가 알지 못했던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호랑이님은 나를 4·19 혁명이 일어나던 시간대로 데려갔어. 이 탑은 1960년 광주 4·19 혁명을 주도했던 광주고등학교 10회, 11회, 12회 동창들의 기념탑 모금 운동을 통해 만들어지게 되었어. 광주의 4·19혁명은 4월 18일 이홍길의 하숙방에서 시위 거기서 내가 본 것은 교사와 경찰이 막고 있는 교문을 뚫고 나와 거리로 모의를 시작으로 다음 날 아침 2교시 시작종과 함께 광주고 학생이 처음으로 시위를 시작했고 뛰쳐나온 학생들이었어. 그들은 대한민국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이내 다른 학교 학생들이 참여하며 시위가 격화되었어. 그리고 4월 20일 전남대생과 농고생의 시위를 마지막으로 광주의 4·19혁명은 끝이나. 이 기간에 경찰의 발포로 인해 강정섭(당시 17세) 외쳤지. ‘독재는 물러가라!’ 등 7명이 사망하였고 수백 명이 다치게 되었어. 우리 모두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아야 해. 보훈 인물 소개 광주의 학생들 1960년 4월 19일, 광주고등학교 학생들은 경찰과 선생님이 막고 있는 교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섰어. 바로 광주 4·19혁명의 시작이지.
출처: 이 전자책 85쪽
본문 111쪽
보훈이의 메모장 할아버지는 내게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총을 쏘는 이유에 대해서 알려주셨어.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 수 5·18민중항쟁추모탑 있었어. 창밖의 상황은 끔찍했다는 걸. 피로에 지쳐 잠들었다가 언성을 높이는 소리에 잠이 깼어. 할아버지가 어떤 형이랑 말씨름하고 있었지. 5·18 국립묘지 중앙에 있는 이 탑은 사각기둥인 탑신이 높이 40m로 우리나라 전통석조물인 당간지주를 이야기가 끝나가자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부랴부랴 도망쳤는데 현대감각에 맞게 형상화하여 만들었어. 멀리서 보면 탑신 가운데를 감싸 쥔 손 모양으로 보여. 군인들이 쫓아왔어. 할아버지는 나를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중앙에 설치된 타원형 형상은 새로운 생명의 부활을 상징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태양광에 반사되는 빛은 희망의 씨앗을 상징해. 보훈 인물 소개 또 추모탑 앞에서는 5·18 희생자들의 윤상원 열사 넋을 기릴 수 있도록 헌화와 분향을 할 수 있어. 1980년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광주시민 민주투쟁회보’를 9호까지 제작·배포하며 5·18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셨어.
출처: 이 전자책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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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북나라 전자책 『광주지역 독립 호국 민주 역사만화』 4쪽 · 26쪽 · 50쪽 · 61쪽 · 85쪽 · 111쪽. 원문에 없는 주제·저자·발행일은 넣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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