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꿈과 끼를 찾아떠나는 문화유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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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쓰인 훈민정음

                    훈민정음이 만들어지자마자 널리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주로 불교 및 유교 경전을 우리말로 옮겨 한글로

                  적어 보급하였다. 외국어 학습 교재, 종교 서적, 의학 서적 및 백성을 계몽하는 등의 실용 서적에도 많이 활용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하거나 생활용품에도 많이 사용되었다. 훈민정음 창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분이 높고 낮음, 여성이나 남성을 가리지 않고 문자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한글의 우수성과 창제 정신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한 유네스코에서는 문맹 퇴치에 공헌한 이들에게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수여하고 있다.




                     훈민정음으로 쓴 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속삼강행실도(續三綱行實圖)》                   《청구영언(靑丘永言)》
                        이성계 이전의 6대 선왕의 행적을             《삼강행실도》의 속편으로,              1728년(영조 4년)에 김천택(金天澤)이
                       125장의 우리말 가사로 기록하였다.           《삼강행실도》 이후의 유명한                엮은 것이다. ‘청구’는 우리나라를
                                                  효자·충신·열녀를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뜻하는 말이고, ‘영언’은 노래를 뜻한다.
                                                    나오는 사람마다 끝에 칠언 절구로 된
                                                          한시를 붙였다.
















                                      〈김씨 부인 한글 상언〉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서포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의 딸이자                   《춘향전(春香傳)》을 판소리로 짠
                                 소재 이명(李命, 1658~1722)의 아내인                     대본으로 한글로 적혀 있다.
                                  김씨 부인이 손자와 시동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영조에게 올린 글이다.

                                                                                                <출처: 국립한글박물관>
 <참고: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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