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2021 농사적 예술하기 이자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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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 하라고 공부시킨 건 아닌데...
작년에도 이어서 올해도 목화씨 파종을 하고, 묘목을 옮겨 심는다. 두둑이 높아서 몇일을 여러발
쇠스랑으로 고르게 작업했지만 쉽지 않다.
제대로 하려면 기존에 있던 제초매트를 다 걷어서 해야하는데 그럴만한 여력이 없다.
땅에 제초제를 쓰지 않으려면 제초매트를 깔아야 농사 내내 손이 덜간다.
그래서 작년에 쓰고 남은 제초매트를 올해를 다 쓰자 결심을 한다. 사실 혼자 하는 건 무리였고,
주말에 일을 끝내려고, 몇일간 준비를 해둔 것이다.
동생을 부르고 부모님과 벼르던 제초매트 작업과 묘목심기를 강행하였다. 비소식이 있어서 오전에
빨리 해두면 비님이 알아서 모종을 땅에 안착하게 해주겠지?
밭고랑을 종종거리며 일어났다 쪼그려 앉았다가를 반복하면서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 쯤 엄마가
그러신다. “농사일 하라고 공부시킨 건 아닌데..”
이어서 동생은 “어릴적부터 항상 함께 해오던 일 아니었어? 그때는 엄마아빠를 도와준거고, 지금은
언니가 언니 작업 하는거야. 그냥 농사라고 생각하지마 엄마”. 이렇게 나를 두둔해준다. 작년에도
똑같이 말씀하셨는데 생각해보니 타인의 시선은 ‘기껏 공부시켜놨더니 고향에 내려와서
농사짓는구나’. 이렇게 볼수 있겠다 싶었다.
이 힘든 농사일을 대물림하기 싫다는 부모님 마음은 그래도 아무말 없이 아빠는 땅을 구멍을
내신다. 내가 모종을 편하게 심을 수 있도록..
가끔 밭에 풀을 뽑고 땀범벅이 되어 집으로 들어오면 손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 나를 발견하고,
손님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쟤가 지금 작업을 하고 있는거라며 우리 딸 작가에요. 이러신다. 내
몰골이 창피하신지, 평일 낮에 집에 있는게 이상하게 보이는지 걱정되시는지 알 수 없지만.
작년 3월. 블루베리 묘목 300주가 팔려서 하우스 한쪽이 비워진 틈을 타 아빠에게 그 땅의
일부분을 내가 써도 되는지 물어보고, 러프하게 생각해뒀던 농사를 작가의 자급자족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농사를 시작했다.
코로나19가 한국에 막 시작될 때 개강을 앞두고 준비하고 있었던 미술관 수업과 대학강의가
무기한 연기가 되는 시점이었다.
오래전 목화솜으로 작업했던 기억이 떠올라 목화 농사를 짓고 그 수확물로 작업을 한다면 멋진일
일꺼라고 생각하며, 무턱대고 농업인으로 정식등록을 하고, 농업인으로서 농사프로젝트를 하고
예술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혼자만의 상상으로 그 일을 시작했다.
가끔 이게 내 발목을 잡은 일이 아닐까 하지만 땅에 대한 책임감이 나를 인내하고, 성장하게
하였다.
2021년 5월 2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