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국민연금수급자를 위한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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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렵던 시절에 국민연금을 납부하셨던 거에요?”            리에 잘못했다고 빌며 울었던 이후로 30년이 훨씬
                     나도 모르고 있던 이야기였다. 대장암으로 아버지               지나서 중년이 된 아들은 어머니의 통장을 손에 들
                     가 돌아가신 것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             고 너무 죄송하고 미안해서 목놓아 울 수 밖에  없
                     부터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서 어머니는 안 해본 일              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등을 토닥여주셨다. 한
                     이 없고,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사셨             참 눈물을 흘리고 난 뒤에 겨우 입을 열었다.
                     다. 아빠 없는 애들이란 소리 듣게 하지 않으려고              “조금 쪼들리긴 해도 어머니 적금 통장을 쓸 정도
                     엄하게 키우셨다. 90년대 후반, 국민연금 가입 대             는 아니에요. 아까 드리려던 말씀은 당분간 생활비
                     상이 확대되어 어머니께서 운영하던 가게에도 국                보내드리기 힘들다고 말씀드리려던 거였어요.”
                     민연금공단 직원이 찾아왔다. 국민연금에 대해 설               “어이구, 그런 걱정은 마라. 난 국민연금 나오는 것
                     명을 하는데 당장 애들 육성회비와 수업료 대기도               으로도 충분해. 나는 내가 부은 돈으로 국민연금을
                     힘들었던 어머니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다음에              받으니 얼마나 떳떳하고 좋은지 모른다. 가끔 손주
                     형편이 되면 가입할게요 하고 보내려는데 직원의                들 용돈도 주고, 나도 읍내 나가서 맛있는 것도 사
                     한 마디가 귀에 꽂혔단다.                           먹고, 전기료, 수도료 다 내고도 남아. 걱정하지 말
                                                              아라.”
                     “나중에 자녀분들에게 부담을 주시면 안되잖아요.”
                     자식들을 늘 부족하게 키우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              어머니는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셨다.
                     음이었던 어머니, 그런데 20년, 30년 후에 자식들            일흔을 넘긴 지금, 머리는 하얗게 세고, 주름이 깊
                     에게 생활비 부담을 지울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어졌고, 예전보다 약해지셨지만, 여전히 내가 기댈
                     들었다고 했다. 자식들이 커서 결혼하면 자기들 살              수 있는 안식처다. 어머니의 곱은 손을 붙잡아 드리
                     기도 힘들텐데 거기에 어머니 자신까지 숟가락을                는 것 말고 내가 해드릴 것이 없었다.
                     얹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나중에 아내에게 어머니와 대화했던 내용을 말해
                     서 바로 가입하겠노라 신고서를 작성하셨단다.
                                                              주었다. 아내도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는 눈시울
                     시장 귀퉁이 행상부터, 식당 주방일, 야쿠르트 아줌             이 붉어졌었다. 다시 잘해보자는 아내의 말에 또 용
                     마, 도배 등 온갖 궂은 일을 다 해서 자식들을 키우            기를 얻었다. 고향집에서 실패의 상처를 치유할 수
                     셨던 어머니. 다른 것은 몰라도 육성회비와 수업료,             있었다. 어머니가 한사코 쥐어 주신 적금통장을 몰
                     그리고 참고서 값은 결코 남들보다 늦지 않게 준비              래 어머니 문갑에 놓아두고 돌아오는 차에 올랐다.
                     해주셨던 어머니. 억척스럽게 자식들을 키우면서                어머니는 손주들에게 방학하면 다시 놀러오라 하
                     자식들에게 나중에 짐이 되지 않으시려고 어려운                셨다. 꼬맹이들은 방학이 2주 밖에 안된다며 짧아
                     가운데서도 국민연금을 납부하셨던 것이다. 그리                도 꼭 할머니 보러 올 거라고 약속했다. 어머니는
                     고 지난 몇 년간 드렸던 생활비는 고대로 통장에 모             떠나기 전에 내게 말씀하셨다.
                     아서 갖고 계셨고 국민연금 받은 걸로 생활해 오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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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준 생활비를 내가 어떻게 쓰겠냐? 얼마나 힘
                                                              이 드니까 국민연금이 참 큰 효자다.”
                     들게 번 돈인 줄 아는데. 그 통장 말고 하나 더 있으
                                                              그러겠다고 어머니께 다짐했다. 실패를 거울로 삼
                     니까 새로 도전할 사업이 있으면 종잣돈 해라.”
                                                              아 빨리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도 했
                                                              다. 어머니께 다시 생활비를 보내드리는 날이 빨리
                     불혹을 훌쩍 넘긴 아들이 어머니 앞에서 엉엉 울어              오기를, 그때가 되면 보내드린 생활비를 쓰시고, 국
                     버렸다.                                     민연금 나오는 걸 적금으로 돌리라고 말씀드려야
                     중 3때, 친구와 싸우고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께             겠다. 돌아오는 길은 내려갈 때와 다르게 편안하고
                     크게 혼난 적이 있었다. 친구와 쌈박질이나 하고 다             치유되는 기분이었고, 용기도 났다. 재잘대는 아이
                     니는 자식은 키운 적 없다는 어머니의 매정한 회초              들의 이야기 소리에 환한 웃음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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