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신세계shinsegae cat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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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인간은 어리석고, 대자연은 아름답다
              어쨌든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텐트 칠
                                                                                       2002년 출간된 〈나를 부르는 숲〉은 걷는 여행
 걷는다는 일에 대하여  줄도 알게 되었고, 별빛 아래서 자는                                                     자들의 경전經典과도 같은 책이다. 빌 브라이
              것도 배웠다.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자랑스럽게도 몸이 날렵하고 튼튼해졌다.                                                    슨이 총 길이 3,500km에 달하는 애팔래치아
 문명이 주는 편리함을 내려놓고 자연에 나를 맡기며 걷는 시간,                                                    트레일을 걷고 또 걷는 이야기, 그 걷기의 향
              삼림과 자연 그리고 숲의 온화한 힘에                                                     연 속에서 펼쳐지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장
 놓치고 있던 찰나의 것을 마주하는 그 순간.
              대해 깊은 존경을 느꼈다. … 전에는 있는                                                  관이다. 지도는 중구난방이고, 수시로 흑곰이

              줄 몰랐던 인내심과 용기도 발견했다.                                                     출몰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으며 그는
 writer Jang Dongsuk 〈뉴필로소퍼〉 편집장, 출판평론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유머를 던진다. “나는 딱 한 번만이라도–살아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친구를 얻었다.                                                     남을 수 있다는 서면 보장만 있다면–정면으로
                                                                                       죽음과 대면하고 싶다.” 1,400km를 걸으며 발
                                                                나를 부르는 숲
 〈크리스마스캐럴〉로 유명한 작가 찰스 디킨스  자. 불과 몇 분간 걸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지                                   견한 인간의 어리석음과 대자연에 대한 깊은
                                                            빌 브라이슨/홍은택 옮김/까치
 는 작품에 몰두할 때면 런던의 밤거리를 걷곤   구의 역사가 응축된 사막의 몇 분은 어쩌면 수                                  애정을 드러내는 묘사가 특히 아름답다.
 했다. 그에게 걷기는 ‘창조성을 증폭시키는 기  년의 시간과 같을지도 모른다. 단지 지구의 역
 폭제’였다고 하는데, 〈크리스마스캐럴〉도 한  사를 응축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밤중의 산책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리스  사막은 세상의 시간에서 벗어난 공간이고, 하
                                                                                       연대를 이뤄내는 걷기의 위대함
 토텔레스는 아침 일찍 걷기를 즐겼는데 ‘소요  여 나만의 시간을 되찾는 곳이기에, 그곳에서
 자’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다. 또 매일 오  의 몇 분은 수년의 시간에 다름 아니라고 저자  여행의 경이와 해방과 정화를 얻자면,            많은 사람들이 건강이나 성찰처럼 무언가 목
 후 4시쯤 산책했던 칸트 덕에 동네 사람들은   는 말한다. 실뱅 테송은 이렇게 덧붙인다. “걷  세계를 한 바퀴 돌아도 좋겠지만 한            적을 두고 걷곤 한다. 문화평론가 리베카 솔닛
                                                                                       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걷기의 색다른 효과
 저녁밥 준비를 놓치지 않았다.   는 것은 여행자를 본질에 이르게 한다.”  블록을 걸어갔다 와도 좋다. 걷는다면 먼
                                                                                       하나를 더 언급한다. ‘걸으면서 사유’했던 사
 어쩌면 걷기는 인간이 몸으로 할 수 있는   실뱅 테송은 스스로를 ‘반더러wanderer’,   여행도 좋고 가까운 여행도 좋다. 아니,
                                                                                       람들은 걸으면서 ‘창조’하고, 궁극에는 연대한
 가장 정직한 행위가 아닐까 싶다. 아무런 도구   즉 낭만적 방랑자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는   여행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이라고 해야
 없이 스스로의 몸만으로 움직이는 이 행위는   우리가 꿈에서 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경이                                    다고 솔닛은 말한다. 걷기가 일상적으로 이뤄
              할 것이다. 마음속에서 일이 일어나려면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한 방편이면서 최근에  로운 것이 널려 있다”고 확신했던 셰익스피어                                     지는 “공공장소가 없어진다면 결국은 공공성
              몸의 움직임과 눈의 볼거리가 필요하다.                                                    도 없어진다”고 말한 그는 연대의 공간을 지
 는 철학적 사유의 방식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  의 말마따나, 빠름이 대세가 된 시대에도 우리
              걷는 일이 모호한 일이면서 동시에 무한히                                                   켜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걷는 행위가
 여행의 기쁨  랑받고 있다. 생각해보면 걷기는 여행의 다른   는 “그 어떤 것에도 묶이지 않고, 바깥의 부름
              풍부한 일인 것은 그 때문이다.                                                        여전히 세상의 모든 기득권을 바꾸는 “전복적
 실뱅 테송/문경자 옮김/어크로스  이름이기도 하다. 걷지 않고는 여행할 수 없고,   에 대답”할 수 있다. 반더러는 “저녁이면 어느
                                                                                       행동”이라고 말한다. 걷기의 의미를 새롭게 해
 여행하려면 반드시 걷기를 각오해야만 한다.  곳간에서 잠을 청하게 될지 모르면서도 아침               걷기의 인문학
 에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리베카 솔닛/김정아 옮김/반비           석한 솔닛의 상상력이 충만한 책이다.
 두 발로 여행하는 즐거움  19세기 독일의 반더러는 “걸어서 무사태평하
 〈여행의 기쁨〉의 저자 실뱅 테송은 오직 두 발  게 유럽 대륙을 횡단”하곤 했는데 “아름다운
 여행은 사고가 완전히 자유롭게   로 여행하는 사람이다. 하루면 어디든 도착  전원에 둘러싸여 불어오는 바람에 영혼을 열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할 수 있지만 ‘여행하는 21세기의 헨리 데이  어두고 자신의 움직임을 느끼는 것만으로 만                 걷는 사람 하정우를 만나는 시간

 사유에게 제공되는 일종의   비드 소로’라 불리는 그는 오로지 걷기만으  족”을 누렸다.  나는 사람이 그다지 강한 존재가                  배우 하정우에게는 또 다른 이력이 있다. 바로
 지표면이다. 여행자는 풀잎에서   로 여행지를 찾아 떠난다. 그는 히말라야를   실뱅 테송은 낮에는 걷고, 밤에는 기록하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여러 가지   걷는 사람이다. 흥행 배우이니 멋진 자동차를
 5,000km 이상 걸었고, 중앙아시아 대초원에  며 성찰하는 삶의 원형을 보여준다. 수시로 시  요인으로 불안정해지기 쉬운 동물이다.           탈 만도 한데, 웬만하면 걷는다. 무려 하루 3만
 우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어야
 서는 3,000km 이상을 걷거나 말을 타기도 했  를 암송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기도 한  마치 날씨처럼 매일 다른 사건이 눈앞에           보. 걷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걷기 모임까지
 하고, 머리 위로 지나가는 구름을
 다. 비행기, 기차, 심지어 자동차도 타지 않고   다.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실뱅 테송처럼   펼쳐지는데, 우리 몸과 마음이 아무런          만들었다. 오랫동안 오를 무대가 없었을 때,
 보고 평면 구형도를 상상할 수
 여행하는 그에게 사람들은 왜 사서 고생을 하  반더러가 될 수는 없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그는 걷기를 택했다. 하염없이 걸으며 기분 전
 있어야 한다. 그의 정신이 모래알   영향을 받지 않기는 쉽지 않다. 변화란
 느냐고 묻곤 한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느  모두가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                                 환이 되었고, 어렴풋한 출구도 찾을 수 있었
 하나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작은 물결에
 림이 속도에 가려진 사물의 모습을 드러내 보  가 사는 지구의 진짜 모습은 어떤지, 사람들은                                   다. 천만 관객 영화가 몇 편이지만, 여전히 걷
 사막의 모래언덕에 던져진 그가   배가 휩쓸려 가서는 안 되므로 닻을
 여주기 때문”이다. 그의 목표는 “시간을 따라  그 속에서 어떤 삶을 향유하는지 아주 잠깐의                                   는 이유다. 하정우에게 걷기는 “처한 상황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얼마나   잡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무심해지는 것”이다.  여유로도 들여다볼 수 있다. 거대한 자본에 속  단단히 내릴 필요가 있다.   어떻든,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살아 있는 한
 무한하겠는가!   저자에 따르면 몸의 속도에 맞춰 시간도   한 여행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시작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이
                                                               걷는 사람, 하정우
 느려진다. 황량한 사막을 걷는다고 가정해보  은 걷기에서 비롯된다.                          하정우/문학동네               를 대체하고 있는가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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