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0 - 실업급여 수급자를 위한 취업희망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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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등대 설치 등 이곳에서 시작된 일들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천항이 자리한 인천광역시 중구는 오늘날 인천을 가리키는 이름

        가운데 가장 대표적으로 쓰이는 ‘제물포’의 원조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현재 제물포는 남구 도화동의 경인선 역사 제물포역 주
        변을 가리키는 이름이 돼버렸지만, 원래 제물포는 지금의 인천항 주변

        중앙동, 항동 일대에 있던 자그마한 나루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이
        이름은 조선시대 지금의 자유공원이 있는 응봉산 주변에 있었던 것으

        로 추정되는 군사 진지 제물량(濟物梁)에서 이어진다.

          1883년 인천 개항 이후 중구일대에는 외국인 거류지가 만들어졌
        다. 응봉산을 중심으로 각국공원을 조성하여 공동조계로 설정하고 주

        변에 청국조계·일본조계 및 각국공동조계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근대
        문물이 이식되면서 상당히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게 되었다. 그러나

        1910년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중구일대는 점차 일본인 위주의 사회·

        경제·문화도시로 변화되었고, 1945년까지 인천부 내의 한국인들은 주
        체가 아닌 주변인으로서 생활하였다.

          광복 후인 1949년 8월 지방자치법 시행에 따라 인천부가 경기도 인

        천시가 된데 이어, 1962년 5월 시 조례에 따라 중부출장소가 생겼으
        며, 1968년 동·남·북구와 함께 중구가 탄생했다. 1981년 인천시가 직

        할시로 승격되면서 경기도에서 분리된 뒤, 1989년에는 경기도 옹진군





       88    ●   누들의 본산, 중구 누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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