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유지·강화" 주장하는 출판·문화계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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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유지·강화" 주장하는 출판·문화계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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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출판·문화계 공대위 긴급 현안 토론회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2014년 이후 서점들은 좀비처럼 살고 있습니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상황이에요.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현재 법제가 인간이 되게 만들어주지도 않고, 지금보다 안 좋아진다면 계속 좀비처럼 살겠죠."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조진석 사무국장이 말했다. 그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열린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의 긴급 현안 토론회에 참석했다.

조 사무국장은 올해 도서정가제 개선안 도출을 놓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관련 업계 갈등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도서정가제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저는 2009년부터 책방을 운영했다. 2009년부터 2014년(현행 도서정가제 시행)까지의 이 업계는 정글이었다"며 당시 인터넷 서점에서 행했던 파격적 도서할인을 예로 꼽았다.

2014년부터는 현행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책값의 10% 할인, 5% 적립 등의 제도가 시행됐다. 이때부터는 대형 서점의 파격할인도 불가했다.

조 사무국장은 "어떤 책의 경우 광화문 교보문고에서보다 제 책방에서 많이 팔리는 경우가 있다. 대형 서점에서는 해당 책의 노출 시간이 짧고, 제 책방에서는 지속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요즘에는 예전만큼 꼭 할인을 해야 한다, 무료배송이 돼야 한다는 독자는 적어졌다. 동네서점이 도서 보유부수는 적지만 각자 특색 있는 큐레이션을 하고, 작가와의 만남 추진 등 독자들과의 소통에 노력하기 때문에 그런 요구가 덜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출판·문화계에는 문체부가 도서정가제 개선을 위해 운영한 민관협의체에서 도출된 안을 채택하지 않음으로 인한 우려가 쏟아졌다.

각 업계의 입장이 반영된 것임에도 채택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합의안의 파기이고 도서정가제가 이전으로 퇴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개악'을 막고자 관련 단체들이 모여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도 구성한 것이다.

동네책방을 대표해 참석한 조 사무국장 외에 다른 관계자들도 '도서정가제의 유지 또는 강화'를 요구했다.

한국전자출판협회·한국웹소설협회·한국대중문학작가협회장을 맡고 있는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의 김환철 대표는 도서정가제 필요성을 강조하며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랐던 글에 대해 지적했다.

우선 김 대표는 도서정가제가 작은 서점을 다 망쳐놨다는 주장에 "전국 순수서점 수는 1996년 5378개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 20여년 동안 지속 감소해왔다. 하지만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에는 감소폭이 완화됐다. 2015년 97곳에 불과했던 독립서점은 2020년 650곳으로 증가했다. 개정 도서정가제가 특색 있는 작은 서점들이 경쟁력을 갖고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도서정가제 탓에 독서인구가 감소한 것이 아니라 환경의 변화 때문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유튜브 사용자만 봐도 그렇다. 2016년 일주일에 5일 이상 사용자는 24.1%였는데 2018년에는 38%로 껑충 뛰었다. 책 볼 시간보다 다른 걸 핸드폰으로 할 시간이 더 많아졌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전자책은 도서정가제 적용에서 예외로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본 사례를 들고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이라고 하기 어렵다"며 "일본의 경우 전자책이 서적이 아니라, 콘텐츠로 분류돼 서적에 비해 높은 세금이 부과되고 있다. 이외 일본 출판계는 자율협약을 통해 전자책에도 도서정가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조금 더 자세하고 명확한 수치를 모두 제시할 순 없지만, 이런 자료들은 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라며 "도서정가제에 대한 내용이 왜곡되고 폄하되는 부분은 가능한 빨리 바로 잡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보탰다.

신현수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프랑스 사례를 들었다. 그는'랑법'이라고도 불리는 도서정가제에 대한 프랑스 문화장관 자크 랑의 발언을 인용하며 "우리나라에도 매우 유효하다"고 했다.

'우리(프랑스) 정부는 책을 다른 일반적인 상품과 동일하게 간주하는 것을 거부하고 시장의 메커니즘을 수정해 당장의 이익에 가려서는 안 될 책의 문화적 특성을 보장하고자 한다. 도서정가제는 전국적으로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가격으로 도서를 판매해 국민의 독서 평등권을 확보할 것이며 유통체계에 있어 집중화를 방지하고 특히 어려운 작품들을 창작 출판할 수 있는 출판 다양성을 보장할 것이다.'

실제 프랑스는 책방을 열 때 무이자로 10억원 가량 대출을 해주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2014년 반아마존법을 시행해 오프라인 서점에서만 정가의 5% 이내 할인과 무료배송을 허용하고 온라인 서점에는 일체 할인을 금지하고 배송비도 부과토록하고 있다. 동네책방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인 것이다.

신 사무총장은 "현행 도서정가제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작가, 출판사, 작은 서점 등이 상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도서는 시장경제 대상이 아니고 정신 문화의 모체다. 오히려 도서정가제를 강화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그나마 있는 현행 도서정가제마저 흔들린다면 대한민국에는 결국 미국처럼 거대한 온라인 서점 몇 개, 공룡 출판사 몇 개만 남게 될 것이다. 당연히 문화의 다양성은 소멸할 것이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라는 법령 이름처럼 출판은 문화이기도 하고 산업이기도 하지만 출판은 문화 쪽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박옥균 1인출판협동조합 이사장, 안찬수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사무총장도 참석했다. 이들 역시 현행 도서정가제의 유지 또는 강화를 강조했다.

한기호 소장은 도서정가제 폐지 국민청원을 주도한 인물이 블록체인을 활용해 도서 할인 판매를 하는 자신의 사업 확장을 위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유를 대며 국민청원을 했다고 주장하며 "청원은 완전히 오도된 정보에 근거한 것이므로 문체부가 완전히 무시해도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찬수 사무총장은 현행 도서가격 10% 할인과 5% 적립의 근거가 되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2조 5항의 폐지를 제언하며 완전 도서정가제로 나아가는 방향으로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고 박옥균 이사장은 온·오프라인 통합 공공 플랫폼 구축을 해법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mstal0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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