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출판물과 도서정가제에 대한 잘못된 정보 바로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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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출판물과 도서정가제에 대한 잘못된 정보 바로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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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출판물이 도서정가제 논란의 핵심이었나

지난 해 10월, 정가제 폐지를 주장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으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청원인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였다. ‘완전한’ 정가제에 반대한다는 것과 전자책은 정가제에서 제외하거나 별도 적용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완전한’ 정가제는 검토한 적이 없고, 전자책에 대해서는 면세의 혜택과 정가제 준수의 의무가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정가제와 관련해 납득하기 어려운 파행을 불러일으켰다. 2019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문체부와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도서정가제 보완 및 개선 협의회’(이하 민관협의회)에서 무려 16차례의 회의를 거쳐 도출한 ‘합의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문체부가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국민(소비자) 후생’을 고려하기 위해 의견 수렴을 더 하겠다는 것이었다. 문체부는 ‘국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공개토론회를 개최하였는가 하면, 전자출판업계만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조직하는 등의 행보를 이어나갔다. 이를 ‘합의안’의 파기로 판단한 30여 개의 출판문화단체는 8월 19일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발족하였고, ‘합의안’의 이행을 촉구하는 행동에 나선 상태다.

9월 3일에는 문체부가 공대위에 ‘개선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체부의 ‘개선안’은 정가제의 예외 적용을 확대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종이책의 경우에는 도서전 할인 판매, 장기 재고도서에 대한 할인을 허용하고, 전자책의 경우에도 할인율을 20~30% 더 확대하고, 연재 중인 웹소설·웹툰은 완결 전까지 적용을 ‘유예’하자는 것이다. 문체부의 ‘개선안’이 알려지자,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는 곧장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나섰고, 공대위 역시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편, 9월 7일에는 ‘전자출판물 시장을 위한 도서정가제 개정을 청원합니다“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의 요지는 전자책에 대해 가격 할인을 더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청원인은 지난 해 정가제 폐지 국민청원이 “웹소설, 웹툰, 전자책 독자들의 주도 아래 20만 명을 달성할 수 있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출판독서시장의 모든 하락 지표를 정가제 ‘탓’으로 돌리며 폐지를 주장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전자출판물에 대한 예외 적용이 지난 해 국민청원의 목적이었음을 밝힌 셈이다.

문체부의 ‘개선안’과 두 차례 국민청원의 주장이 일치하는 것은 우연일까. 전자출판물의 특성을 고려해 별도 적용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국민(소비자) 후생’과 ‘독자 주도’라는 소비자 이익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도 닮은꼴이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고 보니, 지난 해 정가제 폐지 국민청원에서부터 문체부의 ‘개선안’에 이르기까지 정가제 논란의 핵심은 전자출판물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쟁점은 전자출판물에 대한 예외 적용을 해달라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자출판물의 예외 적용을 주장들 가운데는 도서정가제의 취지나 성과를 깎아내리거나 잘못된 정보로 소비자들을 호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종이책 시장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에 대해서는 그 동안 여러 매체에서 팩트체크가 된 바 있다. 본고에서는 전자출판물과 정가제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자 한다.

◇ 웹소설·웹툰에도 정가제가 적용되면 ‘무료보기’가 사라진다?

정가제가 적용되면 웹소설·웹툰 ‘무료 보기’가 사라질 것이라는 소문이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 퍼지면서 정가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언론에서도 팩트체크1)

를 하였을 정도로 ‘가짜뉴스’에 가까운 이 소문은 두 가지 잘못된 정보에 기반하고 있다.

첫째는 웹소설·웹툰에 정가제가 새롭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종이책과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 정가제는 서지정보 등록을 하여 국제표준도서번호(ISBN)을 발급 받은 ‘전자출판물’에만 적용된다. 전자출판물은 혜택과 의무에서도 종이책과 동일하다. 부가가치세 10%의 면세 혜택을 받는 만큼 정가제 준수의 의무 또한 부여되는 것이다.

둘째는 웹소설·웹툰 ‘무료보기’는 ‘대여’로 분류되어 애초에 정가제의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자출판물 정가제 시행지침」(2012.7.27.)에 따르면, 정가제는 ‘판매’를 목적으로 한 경우에만 적용되며, ‘대여’를 목적으로 하는 서비스에서 적용되지 않는다.

웹소설·웹툰 ‘무료 보기’는 법적으로는 문제는 없다. 그래도 불편한 진실은 남아 있다. ‘무료 보기’는 자본의 힘이 결합된 서비스다. 무료 콘텐츠 제공 여력이 없는 중소 규모의 플랫폼들은 불공정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고, 콘텐츠 제공업체들은 대형 플랫폼 앞에 줄을 서야만 한다. 또 독자와 소비자에게는 ‘콘텐츠는 무료’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어 장기적으로는 콘텐츠창작생태계를 어지럽힐 수 있기 때문이다.2)

◇ 전자출판물의 특성을 고려해 더 할인해야 한다?

종이책과 전자출판물의 특성은 당연히 다르다. 종이책은 유형물이고, 전자출판물은 무형물이다. 종이책은 ‘배포’되는 것이고, 전자출판물은 ‘전송’되는 것이다. 종이책은 ‘최초 판매의 원칙’(‘권리 소진의 원칙’)이 적용되어 처음 구매한 사람이 소유권을 갖지만, 전자출판물은 무형적 형태로 ‘전송’을 통해 거래되기 때문에 ‘최초 판매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즉, 저작물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최초의 전송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재전송되기 위해서는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다시 받아야 한다.

전자출판물의 경우 판매 이후에도 소유권이 저작권자에게 있는 것은 불법적인 복제·전송으로 초래될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전자책의 판매 개념은 소유권의 이전이 아니라, 접속할 수 있는 권한(라이선스)을 구매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자출판물의 특성 중 하나인 소유권 이전 불가능이 정가제 예외 적용을 주장하는 근거로 동원되고 있다. 플랫폼이 운영을 중지하면 책을 볼 수 없게 되는 등 소유권이 완전히 이전되지 않기 때문에 전자출판물은 종이책보다 더 할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의 손실에 대한 위험 부담을 플랫폼 사업자가 아니라, 저작권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현재 전자책은 종이책의 70% 수준에서 공급하도록 권장되고 있다. 그런데 문체부가 제안한대로 전자출판물의 특성을 고려해 할인율을 20~30% 더 확대한다면, 전자책의 경우는 종이책의 절반 값에, 묶음 판매 시 이미 50% 내외의 할인을 하고 있는 웹소설·웹툰의 경우는 70~8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라는 말과 같다. ‘떨이’에 가까운 수준의 할인율을 제도화한다면, 도서정가제를 도입한 취지가 사실상 없어진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작가와 출판사가 감당해야 한다.

◇ 전자출판물은 구매도 ‘대여’다?

전자출판물의 경우는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기 때문에 ‘구매’도 ‘장기대여’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말은 뒤집어서 ‘장기대여’가 ‘구매’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전자책 플랫폼의 10~50년의 장기대여 서비스는 사실상의 ‘구매’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업계가 자율협약을 통해 3개월 이내로 제한시켰던 것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대여’는 배포의 일종이다. 배포와 마찬가지로 유형물의 이전을 의미한다. 종이책과 CD, DVD, USB와 같은 유형물 형태를 통한 전자출판물은 대여가 가능하지만, 디지털 파일로만 유통되는 순수한 온라인 형태의 전자출판물은 무형물로서 원초적으로 배포나 대여의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3)

우리나라는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저작자에게 ‘대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순수한 온라인 형태의 전자출판물을 ‘대여’하는 서비스는 엄밀히 말해 편법이다. 정가제의 취지에도 어긋나지만, 대여와 구독 등의 서비스로 허용하는 것은 새로운 독자의 발굴 및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여’가 확대될수록 ‘구매’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여가 아무리 활성화되어도 저작권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한 푼도 없다. ‘구매’를 ‘대여’와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여’의 개념을 오해하고 있거나 저작권자의 입장은 고려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 웹소설·웹툰에 대한 정가제 적용은 동네서점 보호 취지와 어긋난다?

위와 같은 주장은 전자책은 동네책방을 위협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즉, 웹소설·웹툰은 동네서점에서 팔 수 없으며, 동네서점의 경쟁사가 아니니 정가제 규제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무엇보다 도서정가제의 취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확산하고 있는 점이 문제다. 도서정가제는 동네서점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는 문화다양성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중요하고도 실질적인 제도로 도입된 것이다. 즉, 도서정가제의 도입 목적은 문화적 자산인 책의 가치와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하고, 대중들이 다양한 도서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게 하며, 이를 위한 토대인 다양한 서점의 생존을 지원하는 것으로 요약된다.4)

정가제는 창작의 다양성, 출판의 다양성, 유통의 다양성, 독서(향유)의 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유통의 다양성만을 놓고 보자면, 도매상도, 대형서점도, 동네서점도, 웹소설·웹툰 대형 플랫폼도, 중소형 플랫폼도 모두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웹툰·웹소설도 ISBN 발급을 통해 면세 혜택을 받고 있는 ‘출판물’이다. 웹소설·웹툰산업도 출판문화산업생태계의 일원이라면, 동네서점의 경쟁사가 아니라는 점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정가제의 예외 적용이 확장되었을 때 전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문체부가 제시한 “연재 중인 웹소설·웹툰은 완결 전까지 적용을 ‘유예’하자”는 안은 웹소설·웹툰에 대한 명백한 특혜이자, 생태계 내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웹툰·웹소설의 연재는 몇 개월에서 수년이 걸릴 수 있고, 종이책으로 묶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 전자출판물에 대한 정가제 예외 적용은 작가 착취를 심화시킬 것

정가제는 할인을 못하도록 규제하는 제도가 아니라, 과다한 할인 경쟁에서 중소형출판사와 중소형서점, 중소형플랫폼이 사라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전자출판물에 대한 예외 적용을 확장하는 문체부의 개선안은 대형플랫폼의 이해는 충족시키겠지만, 중소형플랫폼을 고사시키거나 더 가파르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도록 할 수밖에 없다. 전자출판물에 대한 할인율 확대는 종이책 시장에 가장 먼저 타격을 줄 것이고, 연재 중인 웹소설·웹툰에 대한 정가제 ‘유예’는 신인작가, 무명작가들에 대한 착취를 심화시킬 것이다. 문체부의 제안대로 강행한다면, 대형 플랫폼기업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출판문화산업생태계의 나머지 구성원들이 치러야 할 피해가 너무 크다.

1) 중앙일보, “[팩트체크] 도서정가제 탓에 웹툰 무료보기 사라진다?”, 2019. 11. 2.
2) 한국출판콘텐츠(2018), 『도서정가제 적용 등 전자책 대여 관련 정책개발 연구』, 문화체육관광부, 195쪽 참조.
3) 한국출판콘텐츠(2018), 앞의 책, 39~42쪽.
4) 한국출판인회(2016), 『개정 도서정가제 영향 평가 및 향후 방향』, 5쪽.


* 외부 필자의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원옥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출판독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 news@web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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